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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이뽈리뜨, <헤겔의 정신현상학 II> '자기확신적 정신' 발췌 및 메모 장 이뽈리뜨, 이종철 역, ⟪헤겔의 정신현상학 II⟫, 문예출판사, 2014 6월에는 헤겔의 용서 개념을 탐구해보고 싶다. 이폴리트의 표현들 중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발췌 및 필사하면서 탐구를 개시하련다. 지금 헤겔을 가르쳐주시는 교수님께서는 이폴리트의 헤겔 해석을 거의 신성시하시는데--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솔직히 입문자 입장에서는 독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홀게이트의 쉬운 대신 간략한 해설서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복잡한 논의들까지 포괄하고 있어서, 가장 어려운 원문을 보기 전에 뇌를 고뇌에 적응시켜주는 기능이 있다. 1. 양심 일반 "정신은 더 이상 실체가 아니고 오히려 전적으로 자기 자신 속으로 복귀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은 총체적인 견지에서 주체가 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프리드리히 니체, 이상엽 옮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6. 니체가 자신의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며 쓴, 역자의 표현을 따르면 "철학적 자서전"(190)이다. 이제까지의 저서들이 담았던 사상들의 요점이 '가치의 전도'를 중심으로 정리되어있으며, 각 저서가 쓰였던 맥락을 작가의 입으로 듣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인 'Ecce Homo'는 "본래 기독교 ⟪신약성서⟫에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가 가시관을 쓴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라고 한다(191). 이로써 독자들은 어째서 니체가 이 책을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라는 이항대립으로 끝맺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189, 강조는 원저자). 그는 오랜 세월 유럽인의..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아글라야 페터라니, 배수아 옮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Warum das Kind in der Polenta Kocht)⟫, 워크룸프레스, 2021.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1인칭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이는 많은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많은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무덤덤한 듯 굴다가도 문득 생의 고통을 어른보다도 예민하게 느껴버린다. 가족을 증오하는 동시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섹스를 모르지만 또 알고 만다. 아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 모르지만 아는 것, 알지만 모르는 것을 자연스러운 언어 속에 녹여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인위적인 공을 들인다고 해서 밀도와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경험이 필요하다. 어린시절..
허연, <불온한 검은 피> 허연, ⟪불온한 검은 피⟫, 민음사, 2014. 마치 여러 편의 느와르 영화들을 연속으로 시청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남자들이, 언젠가는 서로 끌어안았음에 분명한데도 미친 듯이 싸우면서 피를 흘림으로써만, 죽어감으로써만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자신의 애인을 사랑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녀들에게 소홀하기도 하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사랑에 자신의 전부를 바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맞닥뜨리고는 욕설을 뱉으며 사라진다. 이별의 아픔은 시간이 흘러 그것을 홀로 곱씹을 때 비로소 생생하게 느껴진다. "합성 인간의 그것처럼 내 사랑은 내 입맛은 어젯밤에 죽도록 사랑하고 오늘 아침엔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것 살기 같은 것 팔 하나 다리 하나 없이 지겹도록 솟구치는 것 // 불온..
20210520 다채로운 5호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빠르지만 환승을 해야 하는 공항철도를 탈지, 환승이 없는 대신 느릿느릿한 5호선을 탈지 고민했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제주도에 가져간 책을 모두 읽고 싶었는데 허연의 시집을 절반 정도 남겨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호선 플랫폼에 도착해 노선도를 확인하자마자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김포공항역과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역 사이에 무려 스물 네댓 번 남짓의 정차가 예정되어있었다. 그래도 시집은 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회한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시집을 다 읽은 것 외에도 색색의 보석 같은 체험들을 몇 개 더 통과한 것 같아, 이렇게 무언가를 끼적여본다. 첫 번째는 철저히 시각적인 체험이었다. 5호선의 상징색이 보라색인 줄은 알고 있..
자크 데리다, <용서하다> 요약 자크 데리다, 배지선 옮김, ⟪용서하다(pardonner)⟫, 이숲, 2019 홀로코스트를 결코 속죄할 수 없는 사태, 따라서 용서할 수 없는 사태로 규정하는 장 켈레비치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용서의 본질을 파고드는 강의록이다. 개인적으로 데리다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아티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먼저 Lawlor가 작성한 데리다에 관한 SEP 아티클을 인용 및 요약해 그의 사상 일반의 윤곽을 그려본 뒤, 그 토대 위에서 용서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을 요약하고자 한다. I. 데리다 사상의 윤곽 Lawlor, Leonard, "Jacques Derrida",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
임성순, <우로보로스> 그리고 포스트휴머니즘 임성순, ⟪우로보로스⟫, 민음사, 2018 기계-인간과 인간-기계 사이 “지도야말로 지배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O, 126).” 1. 들어가며 임성순의 장편소설 『우로보로스(2018, 민음사)』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인간의 삶 속 깊숙이 침투해있는 시대를 그린다. 작중에서 이 시대는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특이점’ 이후의 세상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또한 인간이 만물의 운명을 좌우하는 인류세(anthropocene)로부터 벗어난 그 이후의 세계이기도 하다. 더 구체적으로 서사를 이끄는 주요 행위자들이 인간이 아니거나, 자신의 인간됨을 부끄러워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휴머니즘 담론으로는 이 탈-인류세(post-anthropocene)의 세계를 읽어낼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 문자 그대로..
작은 바울(2018.5) 가장 아끼는 소설들 중 하나. '나는 나의 작품의 피조물이다'라는 유치하고도 진지한 필명으로 내놓았던 독립출판물에 실려있다. https://smartstore.naver.com/gaga77page/products/4465350296 [2차 입고] 나작피,정수지 - 불 : gaga77page [gaga77page] 독립책방카페 gaga77page [ 입고문의 | gaga77page@naver.com ] smartstore.naver.com 정류장 가까이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들이 나뒹군다. 냄새가 고약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셔츠 소매로 코를 막으려던 순간, 비둘기 한 마리가 시야의 구석에 등장한다. 비둘기는 뒤뚱거리면서 주황색 봉지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어서지 못하는 오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