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80)
에마뉘엘 레비나스, <탈출에 관해서> 요약 및 비판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동규 옮김, ⟪탈출에 관해서⟫,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모든 강조는 필자. 이 책에서 레비나스는 존재의 외부를 사유하는 데 무능했던 서양철학을 비판하면서 존재로부터의 '탈출(évasion)'이란 개념의 가능성을 탐사한다. 존재의 외부를 가리키는 탈출 개념의 근거로 그는 '말레즈(malaise, 불안감)'가 자아를 존재로부터의 탈출로 초대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레비나스에게 말레즈란, 자아로 하여금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만들지만 무엇이 그러한 벗어남을 가능하게 해줄지에 대한 앎이 없는 그런 감정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떤 목표에 봉사하는지 잘 아는 이런저런 대상들을 통해) 욕구를 충족해도,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근원적인 말레즈--는 데 대한 절대적인 불만--는 해소되지 않는다..
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 발췌 하인리히 뵐, 임홍배 옮김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 2019. 전쟁 직후 독일의 폐허를 응시하는 책. 주옥 같은 구절들이 많은데, 손목이 슬슬 아파서 두 부분만 옮긴다. 차례대로 사랑을 집어삼키는 피로를 다루는 93쪽, 1948년의 독일의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듯한 144-5쪽. "나와 함께 있어줘."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키스를 하자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그녀를 놓아주자 그녀가 말했다. "아냐, 이러지 마. 날 놓아줘. 너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배도 고파, 너무너무 배고파."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가 말했다. "당신도 날 사랑해?" "그런 것 같..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최애리 옮김, ⟪행복한 왕자⟫, 열린책들, 2021. 오스카 와일드의 짧은 소설 네 편이 실린 책이다. 가장 유명한 는 뭉클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사랑에 실패한 뒤 실속 있는 형이상학 공부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젊은 학생의 독백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분석형이상학도 분께 보내드렸더니 "그게 실속이 있다고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내보이셨다. 도 그저 그랬지만 만큼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은 인어에게 반한 어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제거하면서 시작된다. 영혼은 계속해서 어부에게 자신을 다시 받아들여달라고 유혹하지만, 지혜에 대한 약속도, 부에 대한 약속도 어부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부는 끝내 춤추는 여자의 맨발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에 넘..
에마뉘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필립 네모와의 대화> 발췌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동규 옮김∙해설, ⟪윤리와 무한: 필립 네모와의 대화(Éthique et Infini: Dialogues avec Philippe Nemo)⟫, 도서출판100, 2020. 모든 강조는 나의 것. "나는 모두를 대신할 수 있지만,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115)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그 자신의 친절한 인트로덕션. 겸허하지만 그만큼 강박적이고, 숭고하지만 그만큼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체완결적이며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임에는 틀림 없다. 1. 성서와 철학 "아마도 사유는 분리, 폭력 장면, 단조로운 시간 가운데 갑자기 생긴 의식처럼, 어떻게 언어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트라우마나 암중모색(tâtonnements[더듬기, 시행착오])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서론, §1-8 요약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67. (별도의 메모가 없는 한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참고: Martin Heidegger, trans. by Joan Stambaugh, Being and Time, SUNY press, 2010. & 박찬국,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그린비, 2014(이하 ⟪강독⟫) 서론: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해설[Exposition] ⟪존재와 시간⟫의 목적은 존재의 의미를 밝히고, 시간을 존재의미 이해의 지평으로서 해석해내는 것[Interpretation]이다. 1장: 존재물음[Seinsfrage]의 필연성, 구조 그리고 우위[Vorrang] §1 존재에 대한 물음을 명시적으로..
에드문트 후설, <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6장 일부 발췌 번역 E. Husserl (Hrsg. von P. Janssen),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Versuch einer Kritik der logischen Vernunft, Martinus Nijhoff: den Haag, 1974(Hua XVII)의 6. Kapitel. 모든 강조는 필자 6장. 초월론적 현상학과 지향적 심리학. 초월론적 심리학주의의 문제 "가장 먼저 그리고 모든 생각 가능한 것보다 앞에 내가 존재한다. 이러한 '나는 존재한다'는 [...] 내 세계를 위한 지향적 근원근거[Urgrund]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객관적' 세계, 나에게 이러한 의미에서 타당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한 세계'조차 '나의' 세계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Hua XVI..
Alex Broadbent, <Philosophy for Graduate Students> 일부 번역 Alex Broadbent, Philosophy for Graduate Students, Routledge, 2016, 모든 강조는 필자.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가적인 감정을 품어 왔다. 한편으로, 결론의 논리적인 설득력과 일의적인 독해 가능성을 지향하는 서술상의 명쾌함이 철학함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모든 철학자가 좋은 철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꼭 '분석적'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저 말이 오늘날 정확히 어떤 지적 경향을 의미하게 되었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첫째,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과 참된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아서, 설령 근거가 빈약하거나 모순이 발견되는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깔끔한 논..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워크룸프레스, 2021. "그것은, 속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에도, 가계도를, 갖지 않는다, 여기저기에, 있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물의, 안에, 흙의, 위에, 안에, 밑에, 공중에, 그것은, 늘, 홀로 지냄, 이주민, 외톨이, 그것은, 그러한 사람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이가 없다, 그 정도로, 변덕맞다, 자만, 특이한 버릇, 제멋대로, 그 사람의, 바리케이드 없는, 순응하지 않음, 사회적으로 보아, 무가치, 그것이, 결국, 지독한 냄새가 난다, 말 그대로, 그것은, 흑사병으로 물든다, 모든 것을, 독한, 냄새로, 확실한 비공식, 기록, ⟪황금전설⟫에, 글자 그대로, 꾸미지 않고, 그렇게 쓰여 있다, 그에 더해, 도울 수도 없는, 그, 흐트러진, 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