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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브렌타노, ⟪선악에 대한 지식의 기원⟫ Franz Brentano, trans. by Roderick M. Chisholm & Elizabeth H. Schneewind, The Origin of our Knowledge of Right and Wrong, Routledge, 2009 (first published in 1889). 이 글에서 브렌타노는 무엇이 그 자체로 어떤 법과 도덕을 다른 법과 도덕보다 옳은 것으로 만들어주는지 묻는다. 즉 “법과 도덕의 자연적 인가natural sanction”를 현상학적으로 탐구하는 글이다. 사실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옳은 판단과 윤리적으로 옳은 판단 사이의 유비에서 출발해, 본성적으로intrinsically 선하거나 악한 무엇이 있다는 도덕 실재론moral realism이 펼쳐진다. 브렌타노의 윤리학은 ..
막스 셸러, ⟪자기인식의 우상⟫ 요약 Max Scheler, trans. David R. Lachterman, "The Idols of Self-Knowledge" In: Selected Philosophical Essays,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73, pp. 3-97. (Die Idole der Selbsterkenntnis, 1912) 프랜시스 베이컨은 외부세계에 대한 앎을 방해하는 인간의 자연적인/자연스러운 경향성을 우상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 글에서 막스 셸러는 우상의 식별이라는 동일한 작업을 반대로 [내면세계]에 대한 앎과 관련해 수행한다. 셸러에 따르면 인간의 내부를 탐구함에 있어 [제1우상은] 바로 외적 지각과 달리 내적 지각은 기만하지/속이지deceive 않는다는 믿음이다. 달리 말해 ..
피터 게이, ⟪바이마르 문화⟫ 피터 게이, 조한욱 역, ⟪바이마르 문화⟫, 교유서가, 2022."내가 '전체성의 갈망'이라고 부른 감정과 반응의 강박관념은 다시 살펴보면 거대한 두려움, 현대성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태어난 거대한 퇴행으로 보인다. 퇴니스, 호프만슈탈 등의 인물들이 조작했던 민족, 영도자, 유기체, 국가, 결정, 공동사회 등의 추상물은 뿌리와 공동체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격렬하면서도 때로는 사악하게 이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직접적인 행동이나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복종의 촉구가 뒤따랐다. 전체성의 갈망은 증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주요 대표자들의 정치 세계는 적들로 가득차있는 편집증의 세계였고, 때로는 이들 개인의 세계도 그러했다. 그들에게 적들이란 인간성을 말살하는 기계, 자본주의적 물..
12: 먼저 코끼리 코를 돈 자만이 똑바로 걸어갈 수 있다 이인범 감독의 단편 에서는 과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지기 직전까지 간 두 연인, 정수와 상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밤 한 침대에서 잠 들기를 선택하기까지의 하루를 그린다. 그런데 이 하루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둘에게 낯선 이들, 주연이란 이름의 여자 그리고 두 명의 천사와 공유되고 있다. 낯선 이들은 인간됨과 천사됨이라는 존재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심지어는 천사들이 인간 주연에게 일의 성공 비법을 묻는다—그것은 어떤 진심을 전달해 믿게 만들고 믿음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일처럼 보인다. 이들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의견차가 있다. 바로 베테랑 천사는 진심의 전달자로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라 고백하는 반면, 아직 어린 천사는 왜 천사의 업무가 약..
20260915 육회, 논산 딸기, 소곱창, 곤드레밥 대륙을 덮친 폭염이 가신 뒤의 사진들. 이사일지. 여름에는 남 몰래 감정 일체를 제거하고자 했고 실제로도 무엇이든 깊이 느끼는 일로부터 멀어져있었던 것 같다. 극장에 가서 무표정으로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한 달 안에 다섯 개인가 봤고 머리를 잘랐다. 그러는 사이 놀라울 정도로 아픔에 둔해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며칠 갑자기 계속 울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좀 나을 것 같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독일어 더빙으로 틀어놓고 짐을 쌌다. 어색한 발음으로 불리는 그 이름, '쉰지 이콰리'. 어째 처음 본 5년 전보다 슬프고 재미있다. 분명히 사진을 지우려고 7월부터 틈틈이 갤러리를 뒤지는데 즐겨찾기에 새로 추가하는 사진만 늘어난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인형 뽑기, 해수욕, 오이도 네온사인, 모닥불에..
발표: 죄책(감)의 현상학(2026.11.6 예정) 블로그에 방문해주시는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수지 퍼라렐로 교수가 현재 주관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현상학 그룹(California Phenomenology Circle)에서 ‘후설과 발덴펠스의 관점에서 조명한 병리적 죄책 현상Phenomenology of Pathological Guilt with Husserl and Waldenfels’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하게 돼 홍보합니다. 죄책(감)의 현상은 흔히 분리되어온 심리적인 것, 윤리적인 것, 그리고 실존적인 것의 권역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죄책(감)의 병리화, 즉 행위에 비례하지 않는 과도한 자기비난 및 그것이 일상에 급성적으로 침투하는 체험은 저 교차가 단순히 부차적인 우연이 아니라 인간성의 본질적 지평임을 드러냅니다. 이를 ..
Wallonie, mai 2026 DinantNamur 왈롱 지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고중세 미술 박물관을 방문했다. 공예 기법에 대한 해설이 풍부했다.Liège 칠레인 C의 생일 파티를 위해 놀러갔다. 선물을 준답시고 서투르게나마 꽃꽂이도 해보고, 독일 철학 테마로 'Dixit' 보드게임을 즐겼다. 기차를 타러 중앙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문득 왈로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시내의 많은 곳이 공실임을 알아차렸다. 석탄 자원이 고갈되고 철강 산업도 국제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왈롱 지역 전체가 경제적으로 쇠락했다고 한다. 반면 무역과 관광을 중심으로 전후 경제를 재건한 플랜더스 지역은 상대적으로 승승장구.
Bruxelles II 서른이 다 가기 전 어느 하루의 잡다. 환기를 위해 발코니 문을 열어두었더니 모기떼가 쳐들어왔다. 잠 자기 직전 방의 곳곳을 반복적으로 누비며 여섯 마리를 죽였다. 미처 죽이지 못한 한 마리가 밤 사이 내내 윙윙거렸다. 이불 밖으로 윗얼굴만 겨우 내놓은 채 잠을 청해야 했고 그마저도 설쳤다. 아침, 아니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이마에 세 방, 왼쪽 눈 바로 아래에 한 방씩 물려있었다. 하루를 불쾌하게 시작했다. 착실히 도서관에 가기에는 어차피 늦은 것 같아 차라리 브뤼셀로 떠났다. 땅콩이 들어간 중국 냉면을 저녁으로 먹었고, 처음으로 버스에서 승차권 불시검문을 당했다. 허름한 맛이 있어 특히 좋아하는 공원에서 셸러를 읽었다. 외적 지각과 마찬가지로 내적 지각도 감각을 통해 그 감각을 초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