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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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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머독, <도덕 속 시선과 선택> 요약 Iris Murdoch, 'Vision and Choice in Morality' in Existentialists and Mystics: Writings on Philosophy and Literature (ed. by Peter Conradi), London: Chatto & Windus, 1997, pp. 76-98."대강 무어(G. E. Moore) 이후로, 우리가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서로 구별할 수 있다고 가정되어왔다. [바로] '내가 따를 도덕(my morality)은 무엇인가?'와 '도덕 그 자체(morality as such)란 무엇인가?' [사이의 구별이다. 윤리학과 메타윤리학 사이] 이 구별에 대한 최초의 열광의 시기가 지난 후, 윤리학은 서서히 그것을 덜 자명한(simple) ..
2025년 4-5월의 독서 1. 에밀리 카스파, ⟪명령에 따랐을 뿐!?⟫, 동아시아, 2025. 카스파에 따르면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행위를 규정할 수 있는 경우에 비해) x 또는 y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령이 내려질 경우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둔화돼 행위자성이 생물학적으로 약화된다. 대중서이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깊이와 명료도 모두를 갖춰 담고 있다. 다만 제노사이드의 가해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자료로 활용하고 있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읽기가 힘에 부친다. 그들을 이해하기만 하고 정당화는 결코 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고군분투를 읽어낼 수 있는데, 아주 깨끗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 죽이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정권 하에서* 인간의 양심이 과연 어디까지 살아있기..
버나드 윌리엄스, <윤리학과 철학의 한계> 요약 Bernard Williams, Ethics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3rd impression with amendments), London: Fontana, 1993 (originally published in 1985). 모든 '[]'는 나의 해석.1장: 소크라테스의 질문 철학은 “일반적(general)이고 추상적이며, 합리적으로 반성적인” 탐구의 형태를 취한다(1). 구체적으로 말해 “반성적 일반성과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다고 자청하는(claim) 논증의 양식”을 특징으로 가지는 학문이다(2). 그런 철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one should live)’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가? 한편으로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긍정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
2025년 2-3월의 독서 1. Henning Tegtmeyer, 'Schuld und Sünde'. In: Handbuch Religionsphilosophie (Hrsg. von H. Schulz et al.), Springer 2025, 413-424. 오랜만에 대도서관에 가서 읽었는데, 집중력이 흐려질 때마다 체스보드 무늬 스테인드글라스를 쳐다보면서 마음을 다시 다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술술 읽힌다는 인상 반, 그래도 독일어 독해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려 난처하다는 인상 반. 보통은 세속적인 맥락에서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데서 따르는 잘못(Schuld, 책임)과 명백하게 종교적인 맥락에서 성립하는* 죄(Sünde) 개념을 각각 정의하고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개념적인 중첩을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글이었다. *= (인격을 ..
2025년 1월의 독서 1. Nikhil Krishnan, A Terribly Serious Adventure: Philosophy and War at Oxford 1900-60, Random House, 2023.   오늘날 '분석철학'이라 불리는 전통을 개시하고 탄탄하게 정비한 철학자들--Moore, Wittgenstein, Ayer, Ryle, Austin, Anscombe, (arguably) Murdoch, Williams, Strawson etc.--이 몸담았던 옥스포드 대학에서 20세기 전반에 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개괄하는 역사서이다. 저자 자신이 전공자여서 그런지 철학적인 내용도 상당히 깊이 있고, 무엇보다 끝장나게 재미있다. 헤겔 식 관념론과 불가해한 형이상학에 맞서, 각 철학적 개념이 도대체 무엇을 의..
2024년 늦가을과 초겨울의 독서 힘 나는 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가장 필요한 것 하나조차 얻지 못한 계절이었다. 적이 없는 생활의 불행을 자유로 뒤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다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여전히 공부가 즐겁냐고 묻는다면 단적으로는 즐거운 게 맞지만, 즐거움이란 생각보다 복잡하며 불순하기 쉬운 현상이라 덧붙이고 싶다. 연구를 통해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 그간의 체계적인 노력에 대한 승인(인정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레퓨테이션과 미래의 임용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자신감 등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때에 공부의 순수한 즐거움이란 불안과 자기비하로 얼룩지기 쉽다. 수요 없는 인문학 공부를 하는 주제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지금 가진 것은 거의 논리적인 가능성에 가까운 희망 정도인데, 그것이라도 미역 불리듯..
버나드 윌리엄스, <가치의 충돌(Conflicts of Values)> 요약 Bernard Williams, ‘Conflict of Values’ in Moral Luck: Philosophical Papers 1973-1980,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 pp. 71-82. 가치들이 [문자상에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다수(plural)인 데다 서로에게로 환원이 불가능해(irreducible) 갈등하는 상황에 대해 성찰한 글이다. 문제시되는 여러 가치들 중 어떤 하나의 (또는 그 이상의) 가치는 반드시 상실할[=희생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가치들 사이의 갈등은 병리적인 것, 그리하여 이론이나 역사적 과정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 같은 견해에 반해 윌리엄스는 가치 간 충돌을 필연적일[불가피할] 뿐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적 삶..
2024년 8-9월의 독서 유학지에 되돌아왔다. 아직 10월이지만 패딩 점퍼와 코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껏 몸을 싸맨 이곳 사람들은 정작 우산은 챙기지 않은 채 비를 뚫고 자전거를 탄다. 슬슬 우울해지기 쉬운 계절이라, 비타민D 보충제를 부엌 테이블에 꺼내놨다. 아무래도 햇수로 2년차다 보니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 외롭거나 고민이 있을 때 마음 편히 부를 수 있는 이곳 친구들을 사귀었고,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한국인 언니들이 있다. 집안일도 감을 익혔고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레시피도 다양화해보고 있다. 무사히 연구석사 과정을 졸업했고, 박사논문 프로포잘은 2안 정도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생활은 그다지 정리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권태나 절망의 고통은 아니다. 권태를 느낀다기에는 박사 입학 여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