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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심스, <해석의 영혼 폴 리쾨르> 칼 심스, 김창환 옮김, ⟪해석의 영혼 폴 리쾨르⟫, 앨피, 2009. 과장을 보태지 않고 성인이 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악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 악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지, 왜 그렇게 연약한지. 반성은 어느 정도까지 악을 만회할 수 있게 해주는지. 같은 잘못을 한 번 더 저지른다면 기존의 반성은 무의미해지는지. 죄인은 자신을 사랑해도 괜찮은지. 마땅한 죄의식의 양은 어떻게 측정되는지. 그런가 하면 악에 대한 복수는 어디까지 윤리적인지. 국가의 공적 복수인 형벌은 죄수의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 빼앗아야 하고, 죄수의 인권을 어떤 방식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무지 때문에, 생계 때문에, 정신장애 때문에,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저질러진 죄들은 얼마나 동정 받아야 마땅한지. 아니면 그저..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현대문학, 2018. "조용하고 안전한 나만의 세계"(16)에 대한 갈망과, 그 세계를 이루는 사물들과의 친연성이 돋보이는 짧은 시집이었다. 여러 시들에서 화자는 마치 "없는 생활"(31)과도 비슷한, 다만 "하루도 빼먹지 않고 모든 게 거기[여기] 있"(18)는 평온한 고립을 꿈꾼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시어인 '외투'는 파괴의 위험이 없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세계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기표이다. 화자는 외투를 입었다가 다시 벗고, 내부로 재진입하면서, "더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32)는 선택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데서 실존적 위안을 얻는다. 불변하는 평온의 경계 내에서 화자는 사람보다도 사물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가 일어나려면 먼저..
에드문트 후설,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권 (Hua III/1)> 3, 4부 요약[개선 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에드문트 후설,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권 (Hua III/1)> 1, 2부 요약 [개선 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티머시 클라크, <마르틴 하이데거 너무나 근본적인> 티머시 클라크, 김동규 옮김, ⟪마르틴 하이데거 너무나 근본적인⟫, 앨피, 2008. 문학 연구자가 쓴,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에 대한 입문서이다. 보통 후기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건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는 뒷말이 꼭 붙기 마련이다. 이 말은 다음의 두 가지 뉘앙스 중 하나를 품은 채 말해지곤 했다. 하나는 하이데거가 일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들로 이루어진 논증 대신 그 뜻들이 모호한 비유적 표현을 남발하고,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그 어떤 주장도, 현상학적 기술도 아닌 (사태를 표현하는) 단어의 어원을 끌어들이는 기행을 펼치는 등 아무런 철학적 테제도 명료하게 개진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다. 철학은 사태를 명석판명하게 설명할 의무를 이행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후기 하이데거의 경..
레오 페루츠, <심판의 날의 거장> 레오 페루츠, 신동화 옮김, ⟪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 책들, 2021. 가벼운 언어로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깊이 파고드는 추리소설이다. 단순히 연쇄적인 자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로만 읽힐 수도 있지만, 그 표피 아래에는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 또는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과욕이 묘사되어있다. 창조적 상상력에 대한 갈망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일련의 의례를 거쳐--이 이상 스포일하고 싶지 않다--'심판의 날'을 맞이함으로써 모든 것이 새로운 이세계, 말하자면 완벽하게 타자적인 것을 만나 영감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의 날에 만나게 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 그것도 자기 영혼의 핵을 이루는 가장 내밀한 공포일 뿐이다. 이 ..
울리히 하세•윌리엄 라지,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울리히 하세•윌리엄 라지, 최영석 옮김,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앨피, 2008. Routledge 출판사에서 나온 입문서 시리즈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기에 세 권을 우선 사봤다. 하이데거와 리쾨르에 대한 책은 전공과 관련이 깊어 구매했지만 블랑쇼의 경우 순수한 흥미에 이끌린 결과였다. "철학을 한 문학가"(19)라는 수식이 내가 가진 꿈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랑쇼는 단순히 투잡을 뛰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문학을 통해 철학을 수행하고자 했다. 마치 니체가 세계의 근저가 아름다움이라 보았듯이, 블랑쇼 역시--세계의 형이상학적 근원까지는 아니더라도--언어와 윤리, 정치 등의 굵직굵직한 주제들을 '문학' 또는 '문학적인 것(=중성적인 것=익명적인 것=탈-주체적인 것=죽어가는 ..
G.W.F. 헤겔, <정신현상학>, §486-536(서문 및 A. 자기소외된 정신의 세계) 요약 G.W.F.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 지식산업사, 1988. 발제를 위해 작성했으며, 사진은 한길사에서 2005년에 나온 판본으로 찍었다. 자기소외된 정신 - 서문, A. 자기소외된 정신의 세계 의식의 추상적 형태들을 논했던 이전의 장들과 달리 ‘정신’ 장은 구체적인 역사를 사는 개별 자기의식적 주체들의 운동을 그려내고, 이 과정에서 세계 자체의 주체성 또는 자기의식을 주제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헤겔이 실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양상을 그리려 한다고 독해할 수 있다. ‘정신’ 장은 ①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 제국에서 각각 구현되고 상실됐던 ‘참다운 정신’, ②봉건주의에서 출발해 절대군주제, 자본주의의 도래 및 프랑스 혁명기까지를 느슨하게나마 반영한 ‘자기소외된 정신’, ③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