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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울(2018.5) 가장 아끼는 소설들 중 하나. '나는 나의 작품의 피조물이다'라는 유치하고도 진지한 필명으로 내놓았던 독립출판물에 실려있다. https://smartstore.naver.com/gaga77page/products/4465350296 [2차 입고] 나작피,정수지 - 불 : gaga77page [gaga77page] 독립책방카페 gaga77page [ 입고문의 | gaga77page@naver.com ] smartstore.naver.com 정류장 가까이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들이 나뒹군다. 냄새가 고약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셔츠 소매로 코를 막으려던 순간, 비둘기 한 마리가 시야의 구석에 등장한다. 비둘기는 뒤뚱거리면서 주황색 봉지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어서지 못하는 오뚝..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요약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 연암서가, 2020 ⟪도덕의 계보학⟫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도덕 또는 선악의 기원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주제이자 발생의 문제다. 니체는 이 문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정사실화되는 선 즉 이타심, 동정, 희생, 인내, 겸허, 용서 등등의 가치 자체를 의문시한다. 결론적으로 니체는 선악의 기원을 ①고귀함, 능동성 및 긍지와 ②비천함, 반동성 및 원한 사이의 대립--그리고 전자에 대한 후자의 정신적인 복수--에서 찾는다. 나아가 진리를 (힘에의) 의지와 소망, 심지어는 취향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대범한 시도를..
진리의 짧은 자서전(2017.2) 처음 습작을 시작했던 시절에 끄적였던 글들 중 그나마 완성도가 높았던 아이다.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부족한 대로 약간의 수정만 거쳐 아카이빙해둔다. 2017년 2월이라니 4년도 더 전인데, 글재주는 부족했어도 열정만큼은 무모할 정도로 컸었어서 오히려 그리운 느낌도 있다. 나는 글재주의 기준에선 얼마나 발전했을까. 열정의 기준에서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스물넷에서 스물일곱이 되는 사이, 무엇을 잃고, 대신 무엇을 소화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중간에 내가 소설 쓰기를 진심으로 포기했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을 대단한 과거형으로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유년기 스스로 돌이켜본 나의 어린 시절은 토막나 있다. 7살 이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는 말도 부적절할 정도로 무에 가깝다. 그래서 나란 역사의 초창기는 ..
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열린책들, 2011 '사디즘'이란 말의 원류가 된 사드 후작의 소설들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왔고, 마침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번역된 판본이 있기에 구매했다. ⟪미덕의 불운⟫은 온갖 술수로 백작부인이 된 언니 쥘리에뜨와 달리 정직함과 자상함,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 타인을 해치지 않고자 하는 마음, 은혜 입은 사람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등 거의 모든 미덕을 갖춘 동생 쥐스띤느가 미덕을 발휘할 때마다 바로 그 미덕을 이유로 매번 새롭고 보다 잔인해지는 불운들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쥐스띤느가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언니 쥘리에뜨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20210506 기도와 작약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문득 너무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내 머릿속은 온갖 비관적인 시나리오들과 잠재적 갈등들로 가득 차올랐다.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테라스로 나가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꽤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우선 저의 모든 비관을 멈춰주시고, 어떤 경로로든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매 순간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선함과 희망을 달라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부탁을 드렸다. 눈을 뜨니 나뭇잎들이 단박에 내 좁은 시야를 메웠다. 벌써 단풍이 돋은 나무가 있었고, 앞으로도 청록빛을 간직할 소나무도 보였으며, 초여름을 맞이하는 푸르른 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흔..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열린 책들, 2011. 1952년, 가난한 중년 부부의 하룻밤. 독일의. 흔히 사랑은 명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도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감정으로서 꿈꾸어진다. 그러나 사랑이 가난과 만나면 도리어 절망의 근원이 된다. 프레드 보그너와 캐테 보그너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들은 단칸방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하자 별거를 감행한다.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노동에 지쳐 집에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때리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려 그들이 우..
김구, <백범일지> 상편 김구 지음, 이윤갑 주해, ⟪백범일지⟫ 상편,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0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아서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김구--왠지 그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지만--의 ⟪백범일지⟫ 상편은 1928년에서 1929년까지, 그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있을 때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두 아들들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유서를 대하는 기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서전인지라 요약 같은 것을 하기도 부적절하고, 다만 내가 느꼈던 바들을 짤막하고 자유롭게 끄적이련다. 1. 김구는 어린시절부터 대범하고 의로운 성격을 품었으며 그것을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