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문학과지성사, 2023. 우다영의 세 번째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모두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인간성의 본질, 혹은 (본질주의의 언어가 부담스럽다면) 조건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것은 그 개념상 선험적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한낱 경험적인 변화에 불과한 문명의 발달이나 지구적 사건에 의해 좌우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SF라는 장르는 인간적 삶의 선험적 구조를 극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여기서 '극적으로'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하나를 과감히 삭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에서는 자아의 단일성을, 에서는 한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으로써 규정되는 삶의 유한성을, 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에서는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사유와 멜랑콜리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민애•한우리 옮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2023, pp. 9-250."아니, 이건 좀 다시 생각해 봐야겠는데."(146) 두 번역가 님 중 어느 분께서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해설에 따르면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근대적 인물이었다."(875, 강조는 내 것)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우유부단해졌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동일한 상황에 놓였을 때에 격정적으로, 즉시 행동에 돌입한 레어티즈와 달리, 햄릿은 미친 척 가장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복수가 이루어질 최적의 타이밍을 계산했으며, 친서를 위조하는 등 자기의 이익에 맞게 상황을 조작했다. 그러나 장시간에 걸쳐 숙고된 이 모든 합리적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