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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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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 발췌 하인리히 뵐, 임홍배 옮김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 2019. 전쟁 직후 독일의 폐허를 응시하는 책. 주옥 같은 구절들이 많은데, 손목이 슬슬 아파서 두 부분만 옮긴다. 차례대로 사랑을 집어삼키는 피로를 다루는 93쪽, 1948년의 독일의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듯한 144-5쪽. "나와 함께 있어줘."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키스를 하자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그녀를 놓아주자 그녀가 말했다. "아냐, 이러지 마. 날 놓아줘. 너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배도 고파, 너무너무 배고파."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가 말했다. "당신도 날 사랑해?" "그런 것 같..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최애리 옮김, ⟪행복한 왕자⟫, 열린책들, 2021. 오스카 와일드의 짧은 소설 네 편이 실린 책이다. 가장 유명한 는 뭉클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사랑에 실패한 뒤 실속 있는 형이상학 공부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젊은 학생의 독백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분석형이상학도 분께 보내드렸더니 "그게 실속이 있다고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내보이셨다. 도 그저 그랬지만 만큼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은 인어에게 반한 어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제거하면서 시작된다. 영혼은 계속해서 어부에게 자신을 다시 받아들여달라고 유혹하지만, 지혜에 대한 약속도, 부에 대한 약속도 어부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부는 끝내 춤추는 여자의 맨발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에 넘..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워크룸프레스, 2021. "그것은, 속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에도, 가계도를, 갖지 않는다, 여기저기에, 있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물의, 안에, 흙의, 위에, 안에, 밑에, 공중에, 그것은, 늘, 홀로 지냄, 이주민, 외톨이, 그것은, 그러한 사람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이가 없다, 그 정도로, 변덕맞다, 자만, 특이한 버릇, 제멋대로, 그 사람의, 바리케이드 없는, 순응하지 않음, 사회적으로 보아, 무가치, 그것이, 결국, 지독한 냄새가 난다, 말 그대로, 그것은, 흑사병으로 물든다, 모든 것을, 독한, 냄새로, 확실한 비공식, 기록, ⟪황금전설⟫에, 글자 그대로, 꾸미지 않고, 그렇게 쓰여 있다, 그에 더해, 도울 수도 없는, 그, 흐트러진, 몸, 이..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강초롱 옮김, ⟪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문화사, 2021.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던 셈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이 일을 각기 혼자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엄마는 회복기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임종에 이르는 과정에 해당했던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144) 보부아르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관찰하고 느꼈던 바를 기록한,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글이다. 이 글에서는 보부아르가 ①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②어머니가 과거에 자신을 불편하게 했던 사실과 화해하는 과정과 서로 중첩되어 있다. 이로써 보부아르는 죽음..
제임스 조이스,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이강훈 옮김, ⟪죽은 사람들⟫, 열린 책들, 2021.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19, ) 이 책에 실린 조이스의 단편소설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가 되기를 지향하기보다 하나의 인상 또는 감정을 최대한 깊게 파고들면서 단지 핍진하게 전하기를 목표로 삼는 것 같다. 는 사랑에 빠진 소년의 기대가 고조되었다가 돌연 실망에 부딪히는 순간을 조명하고는 끝난다. 소년이 그래서 소녀와 어떻게 되었는지 알리는 것은 작가의 의무가 아니다. 완결되지 않았다는 느낌 역시 결함이 아니다. 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의 애인에 대한 제임스 더피 씨의 양가감정, 그녀의 나약함에 대한 경멸과 그녀를 떠..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 스위밍꿀, 2021. 올해의 작가상을 탔었던 책이고, 왜 수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가 버거웠다. 긴 말을 보태지 않고, 그저 이 책을 읽었던 이틀이 나에게 존재했다는 점만 기록해두고 싶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백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옮김, ⟪백야⟫, 열린 책들, 2021. '서정적인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모순처럼 들린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죽어야 할 것 같고, 음흉해야 할 것 같고, 경기를 일으켜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야⟫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라는 간질거리는 문제를 다루는 러브 스토리다. 그런 동시에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표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진부한 서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앙된 목소리, 과장된 자세, 불안이 반영된 장황한 말들을 통해 신성한 사랑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키스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나스쩬까를 원망하기..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 열린 책들, 1995. 번역이 무척 매끄럽다. "난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아니,] 바로 그러니까. 타락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왕이며 이 세상을 정당화해 주는 사람들이다."(313, '노트와 구상' 중) 카뮈는 자신의 삶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던 이 자전적 소설을 쓰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운명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완결된 의의라는 사탑에 봉인하는 영광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는 불시의 사고사로써 부조리의 철학을 증명했으며, 설령 운명의 일격을 피하는 데 성공해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마 같은 증명에 성공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문학이 헌정될 예정이었던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