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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민음사, 2013 윤고은 작가의 소설은 두 번째로 읽는다. 먼저 읽은 소설은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이라는 단편이었다. 그 소설 또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생태계에서 생존하고자 분투하는 개인들의 욕망과 그것을 동력 삼아 없는 길도 개척해 나아가는 자본주의 사이의 역학을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밤의 여행자들⟫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심화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의 모험심과 연민을 자극하는 재난지역 패키지 여행을 주선하는 회사 '정글'에 다니는 주인공 고요나는 '무이'라는 베트남의 섬마을에 낙오된다. 무이는 한때 그곳의 땅을 두고 경쟁했던 두 부족 간의 싸움 때문에,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사막의 ..
에드문트 후설, <수동적 종합> 요약 에드문트 후설, 이종훈 옮김, ⟪수동적 종합(Analysen zur passiven Synthesis, Hua XI)⟫, 한길사, 2018. 1918년부터 1926년까지 이루어진 강의와 연구원고를 수동적 지향성에 해당하는 촉발[Affektion] 및 연상[Assoziation]을 통한 대상, 시간의식, 자아, 궁극적으로 객관적 세계의 구성이라는 주제 하에 엮어낸 책이다. 이 책에서 후설은 지향성의 층위를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또는 자발적인 것과 수용적인 것)으로 나누고, 주로 지각에서 성립하는 후자의 근원적인 지향성을 통해서야 비로소 판단과 같은 보다 고차원적인 전자의 지향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수동적 지향성을 통한 대상의 종합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수동적 차원에서의 기대라고 말할 수..
세바스찬 가드너,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입문> ~pp.212 세바스찬 가드너, 강경덕 옮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입문⟫, 서광사, 2019. ⟪존재와 무⟫는 인간 의식의 존재양식으로서의 '무'와 대상의 존재양식으로서의 '존재'를 구분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확보하는 동시에 사물의 외부적 실재를 긍정한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그 유명한, 결여로서의 대자존재와 있음 자체로서의 즉자존재의 구분을 통해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존재론을 위해 전유하는 데 성공한다. 이 구분은 인간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규정할 뿐 아니라 타자, 감정, 신체 등에 대한 사르트르의 고유한 분석을 위해서도 일관적인 설명의 토대를 마련한다. 세바스찬 가드너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입문⟫은 사르트르의 논증들을 매우 치밀하게 소개함으로써 입문서답지 않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한편으로는 깊이있는 ..
제지기오름(2021.8) 제지기오름 바닷소리의 데시벨에 맞서 해발 구십 미터 남짓의 작은 오름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사실 그럴 나이는 훨씬 지나서 그저 일직선으로 성질 급한 아빠와 허리 아픈 엄마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든 조절해보며 오른다 바닥엔 세잎클로버 무리와 이름 모를 풀, 목재 계단 투박하게 이따금 새똥 짓궂게 그리고 나팔 악대처럼 모여있는 취나물 사이에서 올 여름 첫 모기들을 만난다 허벅지 위 융기한 붉은 오름 정상에서의 파노라마 땀에 젖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다리 한두 번 긁적여본 뒤 두리번거리면 나무에 걸린 책갈피 독실한 누가 남기고 갔는지 신이 죽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준단다 고개를 떨궈 솔방울로 축구를 한다 제지기오름의 어원이라던 어느 젊었을 절지기와 함께 그러나 산 사람의 패스는 차마 죽은 자에게 닿지 못하고 애꿎..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문학동네, 1996. 배수아-유니버스의 첫 번째 장편소설. 제목대로 두 세대에 걸쳐진 부주의한 사랑들을 다루는데, 다만 장소가 시골에서 도시로 바뀔 뿐이다. 물론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어느 편에서 불어오거나 아니면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낳는다거나 지나간 일들이 꿈속에서 보이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112). (도시적 삶에 대한 문제적 시선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2003)⟫에서 발전된다.) ⟪뱀과 물(2018)⟫에 실린 단편소설 '1972'에서 어린시절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은 망상일 뿐이라고 단언했던 배수아였기에 소설의 전반부가 아기의 시선에서 언니 연연, 사촌들의 어린시절과 엄마 모..
장 폴 사르트르, <자아의 초월성> 요약 장 폴 사르트르, 현대유럽사상연구회 옮김, ⟪자아의 초월성(La transcendance de l'Ego)⟫, 민음사, 2017 "자아[ego]는 의식[conscience]의 소유주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의 대상이다(121)." ⟪자아의 초월성⟫은 사르트르가 최초로 완성한 철학적 저술이라고 알려져있다. 후설의 현상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쓰였다는 사실은 더 유명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현상학적 환원을 더 철저하게 수행할 경우, 후설이 모든 작용의 '나'-극[Ich-pol]로 설정한 '초월론적 자아(transzendentales Ego)'는 환원 후에 발견되는 현상학적 잔여물이 아니라 오히려 환원으로써 배제의 대상이 되는 초월자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후설은 순수의식의 영역으로부터 제외시켜야 할 것..
20210729 께스끄 라 리떼라뜌? 사회학과 학부 동기인 S와 전화로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대해 주구장창 수다를 떨었다. 개별 작품들에 대해서 감탄하거나 비판하는 이야기가 주로 오갔지만 결국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채로운 변죽을 친 것 같다. 어째서 어떤 작품으로부터는 '문학성'이 느껴지고 어떤 작품으로부터는 느껴지지 않는가? 재미있기는 한데 '좋은 문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작품은 어째서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는가? 똑같은 메시지를 담아도 어째서 어떤 작품은 '좋은 문학' 같고 어떤 작품은 심지어는 '비문학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가? 잠정적인 대답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물음들이었기에, 우리끼리 주고받았던 답변들을 간소하게나마 정리해두고자 한다. 1. 문학을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것 ..
박이문, <현상학과 분석철학>에 대한 비판적 단상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