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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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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어느 날엔가 도교 사원과 불교 사원에 연달아 들러 똑같은 기도를 드렸다. 어제를 견디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꿈꾸게 해주세요. 한갓된 욕망과 나다움을, 진정성을 구분할 지혜를 주세요, 예수 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마지막 부분은 어린 시절 잠깐 교회를 다닌 후로 나도 모르는 새 습관에 밴 것이었다. 노자에게도 부처에게도 예수에게도 미움을 사버렸다.
Batam 다시 문학적인 류의 글을 쓰기에는 내적 제약이 너무 많다. 하지만 카프카의 일기 같은 것을 읽다 보면 아, 쓰기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구나. 쓰는 일은 무엇에도 불구하고--이 '무엇'에는 아무 것이나 해당될 수 있다--좋은 것이구나 싶어진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잃어야 한다.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을 잃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름답게 쓰는 내가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을 잃어야 한다. 예전에 E는 내 일기를 읽고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났다는 과찬을 해주었다. 평소 칭찬을 비롯해 따뜻한 말 일반에 박한 사람이라 그때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그는 늘 내가 겹겹이 무엇인가로(명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싸여있어서 통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불평해왔는데, 그의 말이 맞다면, 그리..
Aachen 날씨 좋은 2월의 마지막 날, 아헨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죽고, 트럼프 카드로 한국식 우노를 함께 했는데, 시간이 너무 잘 가서 국경을 지난 줄도 몰랐다. 미유키와 함께 있으면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게 되고, 가슴이 경쾌함으로 차오른다. 다음에는 함께 하셀트의 일본 정원에 가보고 싶다.
Bruxelles 한 나라의 수도에는 외국인, 그중에서도 도시의 말을 할 줄 몰라 늘 낯선 이의 자비에 의탁해야 하는 외국인, 미화의 속도를 늘 따돌리는 쓰레기, 그리고 소도시에서는 고용되지 않는 마트의 경비직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세련미, 부자나 노숙자나 같은 거리를 공유하는 평등성, 거리 한가운데 느닷없이 돌출되어있는 고중세의 유산,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개수의 서점들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정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제 그 어떤 관계도 마음 먹었을 때 떠나지 못할 관계는 없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둘의 외연이 설령 다르다 해도 똑같이 기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곧 어른됨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Nha Trang 누리면서 견디고, 견디면서 누렸던 겨울의 남국 여행. 그래도 오랜만에 영어로 소설을 읽었고, 바람이 부는 날 해수욕을 했고, 엄마와 언니의 미소를 필름 카메라로 담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을지로에 들러 사진을 인화했는데, 참 수고롭다는 생각과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우스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유학지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셀린 송의 ‘매터리얼리스트’를 봤고, 주변에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서 반신반의하며 처음 삼십 분을 통과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십 분에 한 번씩 엉엉 울었다. 사랑의 마력은 위대하고 무시무시하다. 내가 완연한 삼십대 여자가 된 걸까. 가시 많은 주제를 정면에서 포옹하는 영화였다. 덕분에 코가 헐고, 아직까지도 두통이 있지만. 모든 곳이 애인의 빈자리인 유학지..
Preyssac 2025년 6월 초의 기록. 어쩌다 보니 미유키네 할머니 데데의 집에 와서 지내게 됐다. 파리에서 인파에 떠밀려 모나리자의 정수리를 본 것이나, 꺄시의 유명한 만들을 구경한 것이나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데데 할머니네 집은 내 마음대로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정원과 1층, 2층, 그리고 다락으로 이루어진 이 집은 1806년에 누런 돌로 지어졌다. 모든 창문은 하늘과 똑같은 파랑 색으로 최근에 다시 칠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초록색이었다고 들었다. 정원에서는 야생 딸기가 하찮은 크기로 한껏 자라나 그 자리에서 바로 따먹을 수 있다. 도시에서는 알려고 해봐야 알 수가 없는 시큼함, 약간의 텁텁함이 느껴지지만 삼킨 뒤에도 입안에 불순한 단내가 남는다. 체리와 자두, 배, 포도 등도 ..
Antwerp 루프트 교수님과의 면담, 그로만 교수님 수업에서의 발표를 모두 마치고 가뿐해진 마음으로 떠났다. 스스로에게 보상을 준다는 생각을 정말 오랜만에 했는데, 자기연민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무척 즐거운 1박 2일이었다. 혼자였지만 많이 웃었고, 어쩌면 혼자였기 때문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타지살이를 하면서 놀라운 점은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고, 지금도 조금은 쓸쓸하게 느끼지만 그런 것치고는 혼자서 상당히 잘 논다는 사실이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며칠을 보낸 뒤, 새삼스럽게 오, 며칠동안 입을 안 열고도 그냥저냥 지냈네, 레벨업,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게 된다. 기차를 타고 산 하나 없는 플랑드르의 평원을 지나는 중, 바로 앞에 앉은 장발의 남자가 너무 험악하게 생겨서 쫄았다. 그렇게 움츠린..
Leipzig 에드문트 후설은 자아에 의한 구성* 이전의 비자아적 존재자를 근원질료(Urhyle)라 일컬었다. 구성에 논리적으로 앞서기에 'Ur'가 붙고, 구성에 의해 형상(morphē)이 그처럼 아직 부여되지 않았기에 질료라 불린다. 후설에 따르면 세계가 우리에게 현재 경험되는 이 모습으로 경험되는 이유는 자아가 저 구성적 성취를(Leistung, accomplishment) 통해 근원질료에 질서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국역에서는 종종 '작업수행'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성취'라는 표현이 무척 중요하다. 세계가 저 홀로, 레디메이드로서, 원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의 성취를 통해 비로소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주관 없이는 세계가 아예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잘 아는 방식대로 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