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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충분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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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독서는 육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지적인 이해를 넘어 신체적인 전율을 가져다주는 책들이 있다. 부자조차 마르크스를 읽는다면 두 볼이 상기되고, 천사조차 니체를 읽는다면 허공에라도 주먹질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는 가만히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인데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시간들이 있다. 철학적 행위는 가장 정적인 순간에 최대한의 역동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고요한 카페가 새로운 매니페스토, 혹은 복음서가 야유와 함께 울려퍼지는 광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카페가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는 보다 우렁차게 대립한다. 스물두 살 무렵의 어느 일요일 오후,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던 와중 성경 읽기 모임을 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온 신자 무리와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도 무신론자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팔랑크스 속의 스파르타인 보병처럼, 전쟁터 한가운데서 방패 아래로 온몸을 웅숭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그의 피아노 소곡들은 세련되게 말하면 점성이 있고 편하게 말하면 느끼하다.


 보부아르에게 인간: 살고 있지만 죽어가는, 자연에 속하지만 이성적이기도 한, 의식이지만 세계의 일부인, 독립적 내면이지만 외부에 의해 더없이 침범을 당하는, 시간을 뛰어넘는 무언가와 교감하면서도, 그 무엇보다도 시간에 의해 구애되는,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이지만, 무리 중 일개 일원일 뿐인 존재자.

"'우리네 삶의 끝나지 않는 작업은 죽음을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그는 라틴 시인들을 인용한다: Prima, quae vitam dédit, hora carpsit. 그리고 또: Nascentes morimur. 동물과 식물은 단지 겪기만 하는 [삶과 죽음의] 이 비극적인 양가성을 인간은 알고 있고 [또]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로써 인간의 운명 속에로 새로운 패러독스가 들어선다. '이성적 동물', '생각하는 갈대'[로서] 그는 자신의 자연적 조건으로부터 도망치지만, 그로부터 해방되지는 않는다. 세계에 대하여 [그와 동떨어진] 의식으로 존재하지만, 또한 세계의 일부를 이룬다. 스스로를 그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도 장악되지 못할 순수한 내부성으로서 내세우는데, 동시에 스스로를 마치 다른 것들의 아리송한 무게에 의하여 으스러진 것으로서 체험한다. 각각의 순간에 그는 제 실존의 비시간적 진리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사이, 그가 그 속에서 실존하는 당장의 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객체들의 우주 가운데 주권을 갖고 유일무이한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그만이 보유하는 이 특권을 그는 [다른] 모든 인간과 나누어갖는다. 다시금 타자에 대한 객체로서, 그가 그에 의존하는 집단 속에서 그는 한 명의 개인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강조는 나의 것)

"“⟪Le continuel ouvrage de notre vie, c’est bastir la mort⟫, dit Montaigne. Il cite les poètes latins: Prima, quae vitam dédit, hora corpsit. Et encore: Nascentes morimur. Cette tragique ambivalence que l’animal et la plante subissent seulement, l’homme la connaît, il la pense. Par là un nouveau paradoxe s’introduit dans son destin. ⟪Animal raisonnable⟫⟪Roseau pensant⟫, il s’évade de sa condition naturelle sans cependant s’en affranchir; ce monde dont il est conscience, il en fait encore partie; il s’affirme comme pure intériorité, contre laquelle aucune puissance extérieure ne saurait avoir de prise, et il s’éprouve aussi comme une chose écrasée par le poids obscur des autres choses. A chaque instant il peut saisir la vérité intemporelle de son existence; mais entre le passé qui n’est plus, l’avenir qui n’est pas encore, cet instant où il existe n’est rien. Ce privilège qu’il est seul à détenir: d’être un sujet souverain et unique au milieu d’un univers d’objets, voilà qu’il le partage avec tous ses semblables; à son tour objet pour les autres, il n’est dans la collectivité dont il dépend rien de plus qu’un individu." (Simone de Beauvoir. (2003). Pour une morale de l’ambiguïté, Gallimard, 여는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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