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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40215 희망 반 절망 반

새해 파티

 프랑스어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부해야 할 범위가 넓다 보니 어차피 모든 것을 마스터하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여유롭다.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거나 결과를 걱정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잘 보면 잘 보는 대로,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괜찮을 것 같다. 어떻게 되든 공부하는 동안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됐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행위는 내 자의가 끼어들 수 없는, 나에게 순수하게 외부적인 권위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머독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히 철학 공부와 다르게 외국어 공부는 창의성보다는 끈기를 요구한다. 법칙이 보이지 않더라도, 예외가 난무하더라도 인내심과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문법이든 어휘든 끈덕지게 암기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처음엔 끝이 없어 보여도 외우고 또 외우다 보면 어느새 처음 보는 문장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언젠가는 내 불어 공부의 목표인 카뮈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희망 반, 절망 반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더 이상 자기표현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성숙해진 것이고, 다르게 보면 연약한 부분을 감추기 시작한 셈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한다. 

 어쨌거나 행복은 주의력의 문제다. 희망 반, 절망 반이 아닌 인간의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실존의 명암이 뚜렷하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증거일 뿐, 불안의 필연적인 원천이 아니다. 삶의 명부에 주의를 기울이고 충분한 감사를 느끼는 한편, 암부에 대해서는 무시하지 않되 그에 몰두하지도 말고 묵묵히 받아들이고 싶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덕목이 용기라면, 내가 생각하는 용기는 무언가 나서서 대단한 일을 능동적으로 꾸미기보다 말하자면 <덕스럽게 수동적이 되는 것>과 관계되어있다. 이런 관점 하에서 용기는 관철보다는 수용, 강인함보다는 섬세함의 문제에 가깝다. 반대로 비겁이란 삶의 암부에 지나친 주의를 기울이다 겁에 질려 명부를 이루는 사랑과 보람의 가치를 절하하고 마는 것일 테다.

 사랑과 보람. 타인의 잠재력을, 그의 최선을 끌어올려주는 일과, 스스로의 잠재력을 최선으로 끌어올리는 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또는 특수하게 가능한 것으로 주어져 있는 바들을 현실로 나타내보이는 것. 의외로 나는 인간 본성이나 운명 같은 것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최근 아일랜드식 축구 클럽에 가입했다. 동양인이 나뿐이라 괜히 수줍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공도 잘 못차서--못 차는 정도가 아니라 공이 나에게 오면 일단 무서운 마음부터 든다--민망하지만 그래도 벌써 두 번이나 연습에 참여했다. 앞으로도 계속 나가볼 생각이다. 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감탄하는 일,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만은 그래도 혹시 언젠가 나에게 공이 올지 모르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이 모두 재미있다. 근육통마저 짜릿하다. 클럽을 추천해주고는 밀라노로 훌쩍 떠난 안토니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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