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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40307 Ce n'est pas des sushis

양심적으로 이걸 초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든 일은 아니어도 많은 일이 잘 풀려간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한다는 감각을 매일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행복을 자랑하는 일은 쑥스럽지만,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생각으로 끼적인다.

 2월 중순에 본 프랑스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평균보다 30점 높았음을 생각하면 유럽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잘 본 셈이다. 무엇보다 공부를 충분히 해두고 나니 강의를 따라가기가 수월해져서, 프랑스어 수업 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그래도 역시 재미의 핵심은 리디아 그리고 훌리안과 소곤소곤 수다 떠는 데 있다. 오늘은 'Je vais acheter du pain'을 고통 사러 간다고 번역하면서 낄낄거렸다. 리디아와는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메시지의 대부분이 헛소리와 드립인데, 덕분에 소소하게 웃을 일이 많다. 훌리안은 오늘 내게서 골든 리트리버 바이브가 난다고 말해줬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집에 돌아와 강형욱의 설명 영상을 찾아봤는데, 감개무량했다.

 스토아주의 수업을 위한 첫 팀플도 잘 마무리됐다. 리디아가 훌리안과 장난 삼아 엮어주려고 하던 또 다른 칠레 친구가 나와 우연히 같은 조에 편성이 된 순간부터 이미 나는 즐거웠다. 그 친구는 온라인 미팅 중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서 담배 한 대를 아주 맛나게 피운 멋진 친구였다. 스토아주의 존재론에서는 존재자를 네 종으로 구분하는데, 그 중 세 번째 종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해당 종이 덕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해 벌어졌던 스토아주의의 내부 논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토의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는 게 과제였다. 미팅을 하기 전 내 생각을 미리 글로 적어서 조원들과 공유했는데, 처음엔 내가 너무 오버했나 싶어 걱정했지만 걱정을 한 게 오히려 오버리액션이었다. 조원들이 내 글을 좋아해줘서 결국에는 그 글을 그냥 함께 손 봐 과제로 제출했다.

 더 기뻤던 일은 전문적인 내용을 영어로 토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 스스로도 말하면서 막힘이 적은 것이 느껴졌고, 조원들의 돌발 질문에도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6개월 간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실력이 는 모양이다. 글을 쓸 때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속 편하다. 번역어를 정하기에도 용이하고, 1인칭 주어를 써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견해를 피력하기가 쉽다. 또 한국어로 철학적인 글을 쓸 때에는 한자어 사용이 잦아 심미적인 리듬을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영어를 쓸 때는 그런 근심이 없다. 논문에서 본 근사한 라틴어 표현들을 삽입할 때의 쾌감도 짜릿하다. 

 마지막으로 나르시시즘을 다루는 수업에서 정신분석학자 케른베르그의 텍스트에 근거해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가 느끼는 공허감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준비를 많이 하기도 했고, 애초에 내가 성격상 포디엄에 섰을 때 긴장하기보다 즐거움과 효능감을 더 많이 느끼는 듯하다. 발표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토비아스가 찾아와서 너무 잘 들었다고 엄지를 날려주고 갔고, 수업 끝나고 마주친 필리포와 두샨, 주라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찰리도 따로 칭찬해주었다. 그날은 기분이 정말 날아가는 줄 알았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척 유능한 교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수업 바깥에서는 용기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면서 덕 윤리를 공부했다. 논문의 1안을 엎고 2안의 서론을 지도교수님께 보내놓은 채 피드백을 기다리는 중이다. 박사논문 프로포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도 뒤적였다. 1월 내내 놀고 오랜만에 공부를 하니 골치 아프면서도 가슴이 뛰고 스스로가 살아있는 듯이 느껴진다.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용기와 후설의 쇄신 개념을 연결하는 나의 새 시도에 설득이 안 되었다고 호되게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당신의 비판을 이해한다, 그 비판을 충분히 소화하는 방향으로 3안을 써보겠다, 그 3안에도 설득되지 않으신다면 주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S 언니가 이야기를 듣고는 교수님께 지지 않고 기존의 기획을 고집한 나야말로 용감한 것 같다고 말해줬다. 물론 마음 한 켠으로는 교수님께선 에둘러 리젝을 하신 건데 눈치 없는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더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나는 내 논지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면담을 마친 직후 후설리아나 27권의 리딩 그룹에 참여했다. 그룹을 이끌어주시는 포닥 선생님께 내 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여쭈었고, 감사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잘 반영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3안도 깨진다면 용기라는 주제를 (비겁하지만) 일시적으로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버리고 싶지 않은데 지도교수님과의 소통 건과 논문의 성적, 졸업 시기라는 문제가 걸려있어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용기에 대한 글은 졸업논문이 아니라 개인 작업으로 완성해 투고해도 무리가 없다. 써내는 것이 중요하지, 졸업논문으로서 써내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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