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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1 석사논문 쓰기 시작하는 일기 쉬엄쉬엄 ⟪위기⟫를 읽는 사이 9월이 다 갔다. 중간에 연휴와 생일이 겹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낸 시간도 있었고, 공부를 마치고 쉴 때는 거의 무조건 영화를 봤다. 미술을 전공하는 동생 둘과 네다섯 번의 세미나에 걸쳐 독일어 단어를 2000개 외운 것도 나름 큰 일이었다. 왕뿌듯!!! 하지만 이제는 10월이 되었으니 석사논문을 우선순위 1순위에 두고 시간을 운용해야 한다. 오늘은 나의 석사논문 프로포잘에 대해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나눴다. 내가 제출한 프로포잘은 생활세계를 통한 환원과 데카르트적 환원 사이의 관계성을 후자의 한계 그리고 전자의 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를 관통하는 연속성을 중심으로 주제화한 것이었다. 이에 교수님께서는 그 주제에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분법을 도입해서 논..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2021 경장편소설이 현실적인 목표로서 삼을 수 있는 모든 최선들의 육화.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고, 무한자와 유한자가 마주치며, 철학과 서사가 조화되어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한국어 표현들에 길을 잃을 뻔도 하지만, 고요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플롯이 나른해진 독자를 다시 일으켜세운다. 구두를 짓는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치밀한--소설가적 양심에 따라 상당한 연구와 취재가 이루어졌음에 분명한--묘사가 자극하는 이미지적 상상력이 고갈될 즈음에는,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은 말로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존재론적 성찰이 전개된다.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쓰고 싶었던 소설이 이런 소설이었던 것 같다. 줄거리를 줄줄 읊는 식의 독후감은 이 책의 품위에 ..
장이지, <레몬옐로> 장이지, ⟪레몬옐로⟫, 문학동네, 2018. 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여유'를 부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당분간 문학을 손에 쥐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능률이 더 오른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공허해진 마음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억눌려있던 무엇인가를 분출하듯, 굳이 가던 길을 틀어 역내 서점의 문학 코너를 뒤졌다. 밝고 맑은 이미지를 주는 표제어에 이끌려 이 시집을 집어들자마자 왠지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느꼈다. 문학은 마치 저녁밥처럼, 내가 생업으로 가장 바쁠 때조차 시간을 내서 향유해야 하는 일종의 생필품이 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본다. 나에게 철학은 노동이고, 문학은 노동의 이유 같다. 블로그에서 시집에 대한 독후감을 쓸 때마다 앵무새처럼 덧붙이지만, 나는 시를 잘 모른다. 전..
에드문트 후설,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3부 A 요약 Edmund Husserl, trans. by David Carr, The Crisis of European Sciences and Transcendental Phenomenology,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70(원문은 Walter Biemel이 편집한 Hua VI). 3부 초월론적 문제들의 해명과 그와 연관된 심리학의 기능 A. 미리 주어진 생활세계에서 출발해 되돌아가 묻는 가운데서의[in der Rückfrage von der vorgegebenen Lebenswelt aus] 현상학적 초월론적 철학으로의 길 §28 칸트의 말해지지 않은[unausgesprochen] "전제": 자명하게 타당한[geltend] 생활주변세계[Lebensumwelt] 칸트는 자신이 기..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2021.7) https://knower2020.com/forum/view/564861에서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 7월의 비엔나는 마음이 부풀은 관광객들에게조차 역겨울 정도로 더웠다. 그들은 미술사 박물관 앞에서 한 마리의 굵은 ... knower2020.com 7월의 비엔나는 마음이 부풀은 관광객들에게조차 역겨울 정도로 더웠다. 그들은 미술사 박물관 앞에서 한 마리의 굵은 뱀이 되어 줄을 서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노랑이나 갈색, 올리브색의 상의를 입고 있었으므로 그냥 뱀도 아닌 구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의 비늘은 폭염을 견딜 만큼 두껍지 않았고 그늘 또한 구시가지의 악명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햇빛이 잔인할 정도로 공평하게, 박물관 앞의 가..
에드문트 후설,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1, 2부 요약 Edmund Husserl, trans. by David Carr, The Crisis of European Sciences and Transcendental Phenomenology,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70(원문은 Walter Biemel이 편집한 Hua VI). 1부 유럽 인류(Humanity[Menschentum])의 급진적 삶의 위기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위기 §1 그것의 계속되는 성공을 생각했을 때, 정말 학문에 위기가 있는가? 본 강의의 제목에 따라서 만일 학문 일반에 정말로 위기가 찾아왔다면, 그것은 학문의 성격 자체, 전개의 방식 및 방법론 자체가 의문스러워졌음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회의주의, 비합리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에 굴복한 철학 또는..
즉흥 글 1 (2021.9) 20210904 16:12~18:09 누가 보면 내 일상은 휴가 같아 보일 수 있다. 나는 이르면 열두 시, 늦으면 두 시에 하루의 첫 눈을 뜬다. 이른 아침 해가 뜰듯 말듯 하는 모습을 못 본 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언제나 태양이 가장 강렬할 때에, 커튼이 쳐진 방 안으로까지 침투해오는 그 존재감을 온몸으로 애달프게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뭉친 어깨를 주무르면서 부엌으로 나가면 전날 밤 썰어둔 계절 과일이 락앤락 속에 담겨있다. 나는 체리나 사과를 집어먹거나 복숭아 따위가 썰린 것을 한 입 베어물고 씹을 때마다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과일을 삼킬 때즈음 나는 샤워 부스 안에 서 있다. 샴푸에서는 제비꽃 냄새가, 바디워시에서는 라벤더 냄새가 난다. 아닌가, 라벤더가 아니라 라일..
에드문트 후설, <데카르트적 성찰> 요약 Edmund Husserl, trans. by Dorion Cairns, Cartesian Meditations, Martinus Nijhoff Publishers, The Hague, 1960. 서론(§1-2) 철학을 필두로 모든 학문들을 절대적인 기초 위에 정초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의 성찰은 철학사적으로 주체로의 전회를 추동했다. 기존 학문들의 타당성을 의문시하고, 에고 코기토를 토대로 모든 것을 다시 세우고자 한 그의 시도는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려는 모든 철학자들의 귀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는 최초로 객관주의가 아닌 초월론적 주관주의(transcendental subjectivism)로서의 철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후설 당대]에는 수없이 많은 철학적 작업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