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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용기에 관하여

2024년 2월의 독서


1. Van Hooft, Stan. (2006). Understanding Virtue Ethics, Routledge.

 덕 윤리를 의무론과 스무 가지 정도 되는 기준에 의거해 대비시키는 1장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를 요약한 2장을 읽었다. 학부생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있고 내용도 실하다. 다만 인용이 그다지 철저하지 못해 아쉬웠다.

2. Crisp R. & Slote M. (Ed). (1997). Virtue Ethics, Oxford University Press.

 보석 같은 논문들만 들어간 책이다. Anscombe과 Stocker의 글을 골라 읽었다. 인트로덕션에는 얼마 전 읽은 ⟪선의 군림⟫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칸트적 자유의지관은 외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위상을 과대평가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도덕을 결정할 수 없다'고 메모를 해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독과 헤겔의 윤리학은 상통하는 면이 있다. 'Hegel, Murdoch and the Authority of the World' 같은 가슴 웅장해지는 제목으로 논문을 하나 쓰고 싶다. 결과주의는 경계선적인 사례들(borderline cases)을 취급할 수 없어 결국에는 '깊이를 결여한 관습'을 따르게 될 것이란 Anscombe의 주장, 의무론 등이 추구하는 좋음(goodness)의 추상성 및 비인격성을 지적하며 (좋음을 추구한다는) 동기와 (사랑과 같은) 구체적인 가치 사이의 '도덕적 분열'이라는 관념을 내세운 Stocker의 작업도 물론 흥미로웠다.

3. Husserl, Edmund. (1989). Aufsätze und Vorträge (1922-1937). T. Nenon & H. R. Sepp (Ed.). Springer (Hua XXVII).

 후설 윤리학의 핵심을 구성하는 카이조 아티클들을 읽었다. 워낙 중요한 글이다 보니 관련된 메모들은 따로 정리할 생각이다. 후설리아나 42권의 원고도 몇 개 함께 읽었는데, 후설의 덕 이론의 특징을 ①자기비판적 성격, ②완벽성, ③선의 재귀성으로 규정하고 각 특징에 따르는 한계를 고찰하는 논문을 구상해볼 수 있었다. 쓰고 싶은 글이 많아 두근거린다.

4. Tidd, Ursula. (2004). Simone de Beauvoir, Routledge.

 상황이란 "어느 기획을 추구하는 우리의 자유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의 모든 [다만] 주어[졌을 뿐인] 면모들 사이의 관계"라 주장한 보부아르의 철학에 대한 개론서다(Tidd 2004, 2). 보부아르가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대변하는 자아관에 반해 헤겔의 소위 주노변증법이 대변하는 자아관을 선택함으로써 자기와 타자 사이의 구분선이 애매해졌다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호소하는 자아의 경계 부재 문제가 혹시 이러한 실존적 조건의 특수한 양태일까 싶은 사변에도 잠시 빠졌다. 지도교수님의 성향에 물들어서인지 정신병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빠른 시일 내로 ⟪애매성의 윤리학⟫을 강독할 생각이다. 얼마 전 감사하게도 파티원을 구할 수 있었다.

5. Langer, Monika. (2003). Beauvoir and Merleau-Ponty on Ambiguity.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Simone de Beauvoir (Ed. by Claudia Card), Cambridge, pp. 87-106.

 보부아르의 애매성 개념은 사르트르의 그것보다 오히려 메를로-퐁티의 그것에 훨씬 가깝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다. Langer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즉자존재가 되고자 하는 대자존재로서의 자아의 노력을 '무용한 정열'이라 평하나, 보부아르는 그 자아의 결핍이 오히려 향유와 긍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내 자의적 정리의 산물이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시간성(temporality) 불일치의 연속 의지 실현의 가능조건*
육체성(embodiment) 폭력의 장소(?) 애착의 장소(?)
타자성 갈등 협력: 타인의 자유가 곧 나의 자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의미가--목표 설정, 기획, 헌신이--가능하다는 주장이 감동적이었다.

6. Charlie Kurth. (2018). The Anxious Mind, The MIT Press.

 분석철학적인 글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불안의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편견을 넘어 그것이 행위자성과 덕의 발현 그리고 도덕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따져보는 책이다. 4, 5, 6장을 마저 골라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