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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오밤중의 생각 오밤중의 어지러운 생각. 논문 한 편을 쓰는 데 너무 많은 품이 든다. 석사논문이나 박사논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저널 아티클에 실리는 7000 단어 정도의 글을 쓰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해도 이제는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존의 문헌을 소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가능한 반박들에 대비하고, 세련된 글로 표현해내는 각 과정이 하나 같이 험난하다. 또 직관을 단순히 표현하는 일과 그것을 다수에게 설득력 있게 만드는 일, 그러니까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전혀 다른 수준의 무엇이다. 나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고 힘에 부친다. 이 페이퍼 도대체 완성이나 할 수 있을까? 물론 고작 6월부터 준비했으니 4개월만에 구시렁거린다면 끈기 부족이다... 최근에 쓴 소설의 첫 문단을..
Stefano Micali, Phenomenology of Anxiety Micali, Stefano. (2022). Phenomenology of Anxiety, Springer. '다성학(polyphony)'의 방법론으로써 정신분석과 현상학, 문학 등 다양한 영감의 원천으로부터 불안의 특질(trait)들을 분석하는 책이다. 미래의 자아의 자율성을 주장한 사르트르에 반대해 불안 가운데서 과연 미래의 자아가 그만큼 견고한 것인지 물었던 2장의 비판이 특히 인상 깊었다. 5장에서는 불안에 대한 저자 자신의 현상학적 분석을 심화시키는데, 불안이란 자기의 타자화 가능성에 대한 불안일 수 있다는 통찰이 빛난다. 저자에 따르면 "불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집착을 가리키며 그러므로 [우리가] 급진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우리는 이 (열린) 미래 속..
Douglas N. Walton, Courage, a philosophical investigation Douglas N. Walton, Courage, a philosophical investigation, University of Califoria Press, 1986. Walton (1986)에게 용기에 대한 정의는 ⓐ실천적 추론(practical reasoning)의 기반(matrix)과 ⓑ윤리학적 기반으로 나뉜다. 용기는 행위자 a가 ⓐB를 [결과로] 가져오기 위해(bring about) 행위 A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정당하게 생각하여(consider=justifiably believe), 그러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A를 실천하는 가운데 ⓑB를 가치 있는 것으로 그리고 A를 매우 위험하거나 어려운 것으로 정당하게 생각할 때 발생한다(see p. 86 for a fuller definition). 용기..
20230924 중간점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묶어둔 돈이 계좌에 들어오는 10월 초까지는 긴축재정이다. 장을 보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므로 이미 있는 것으로 야무지게 먹고 살아야 한다. 현재 냉장고 속에 있는 식재료는 다음과 같다. 식당에서 남기고 싸온 마르게리타 세 조각, 파프리카, 양상추, 파, 당근, 버섯, 고추, 양파, 아보카도, 김치 두 통, 베이컨 두 통, 치즈, 오이 반 개, 사과, 포도, 방울토마토, 언 닭고기, 우유, 주스, 달걀 6알 일기를 쓰고 싶은 기분이라 간단히 오늘의 하루를 되짚어본다. 네 시간밖에 자지 못해 죽을 듯이 피곤했던 아침, 언니를 공항까지 배웅해줬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옹하면서 잘 챙겨먹고 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돌아와서는 80년대 일본 음악을 들으며 볶음밥을 만들..
Emanuele Caminada, Beyond intersubjectivism: common mind and the multipolar structure of sociality after Husserl 요약 Emanuele Caminada, Beyond intersubjectivism: common mind and the multipolar structure of sociality after Husserl, Continental Philosophy Review (2023) 56:379-400. "The common mind is the plural substrate of habits that are tracked through the common, persistent habits of the groups members, transmitted in their customs, and inscribed in their objectifications [...]"(398) 사회성을 둘 혹은 다수의 주관 사이의 만남(..
William Ian Miller, The Mystery of Courage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20230914 살림살이, 타자성 새 집에 살림살이를 들이다 감기에 걸렸다. 그래도 하우스홀드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완성되어간다. 잘한 일은 수건과 침대보 따위를 미리 주문해 입주가 가능한 날짜에 곧바로 입주한 것이고, 못한 일은 접시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것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상점에서 무려 82유로어치 도기들을 구매했을 때, 나는 이미 아마존에서 꿀 색 접시 세트를 주문한 상태였다. 대신 외식과 카페 나들이를 하지 않고 있으니, 언젠가는 과지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구청에서 레지던스 퍼밋을 신청했고 같은 날 은행 계좌도 개설했다. 남은 큰 일은 핸드폰을 개통하는 것뿐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한국에서 써두었던 소설을 탈고하고 어딘가에 투고하고 싶다. 그런데 피드백들을 체계적으로 모아뒀음에도 불..
Naples / Pompeii / Ischia / Sorrento / Positano 오랜 여행을 마치고 이제야 유학지에 도달했다. 어제는 커다란 짐 세 개를 끌고 버스를 타랴, 기차를 타랴 고생한 탓에 숙소에 오자마자 누룽지 한 그릇만 후딱 끓여먹고 잠에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지 않은 대신 아낀 돈으로 라멘과 커피를 사먹었다. 숨을 좀 돌리고서는 다시 나가 러닝을 30분 정도 하고 생필품을 샀다. 지금은 애인이 추천해준 offonoff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남은 하루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토마토 스프와 계란을 저녁으로 먹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고,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수강편람을 조금 살펴본 뒤 Miller(2002)와 하이데거를 조금 읽을 생각이다. 바쁘다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