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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31124 십일월

⟪선의 군림⟫


 힘겨운 한 달이었다. 매일 같이 내리는 비를 보며 울적함을 넘어 우울했고, 담배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 곤란과 흉통이 느닷없이 찾아와 일상을 괴롭게 만들었다. 어느 밤에는 내게 남아있는 미래의 나날들 가운데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을 것만 같아 엉엉 울기도 했다. 잠을 도피처로 삼아 매일 열두 시간 이상을 잤는데, 그러다 깨어나면 반드시 두통에 시달렸다. 금요일마다 읽는 ⟪선의 군림⟫이 그래도 희망이 되어줬다. 자아의 환상과 도취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의롭고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네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 머독의 주장에 종종 울컥했다. 리딩 그룹 사람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도 나를 불행에서 꺼내준다. 커리 한 그릇에 5유로밖에 받지 않는 태국 음식점에 항상 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매일 인파에 끼어 먹게 된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기분 좋게 정신없는 곳이다. 살짝 습한데 향긋하다는 인상이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쉽게, 그리고 깊이 느끼는 감정을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 철학과 내 실존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만 같아 수업을 듣는 사이 틈틈이 죄책감에 대한 논문을 일곱 편 정도 내리 읽었다. 죄책감에 대한 최근 10년 내 윤리학적 논의는 주로 (1) 탓이 없는(not blameworthy) 행위자들의 죄책감을 적절한(fitting)한 것으로 옹호하려는(vindicate) 논문들과 (2) 탓이 있(거나 심지어는 없)는 행위자가 어떤 방식으로 죄책감을 응분(desert)으로서 가질 수 있는지, 달리 말해 어떤 의미에서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한지 논하는 논문들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 죄책감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고통이 응분에 해당한다는 확신에 찬 입장과 고통이 응분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보는 신중한 입장 사이의 대립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사 논문을 죄책감에 대해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단념했다. 조금 더 밝은 주제를 택하는 편이 내 정신건강을 위해 이롭겠지 싶다. 지금으로서는 도덕적 가치의 소여 과정에 관심이 더 간다. 도덕적 가치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지, 객체로서 실재한다면 주체에게 주어질 때 어떤 변형을 거치는지 (혹은 거치지 않는지), 그리하여 가치의 소여 과정에 주체의 개(별)성이나 자유도가 얼마나 관여하는지 등이 궁금하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강하게 갖고 있는 두 가지 직관들, 도덕은 보편적인 법칙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직관과 개별 행위자의 도덕성 여부는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에 입각해야 한다는 직관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윤리학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만은 그나마 확실하다. 인식론이나 형이상학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서서는 별다른 애착이 없다.


 오늘 하루는 정말 오랜만에 보람찼다. 어제 요가를 다녀온 덕일까. 아침에 일어나 반가운 철학과 동료들을 오랜만에 화상으로 만났고, 용기에 대한 논문 초고를 발표했다. 얼굴들을 보고 서로를 향해 장난스레 투닥거리면서 더없이 기뻤던 것 같다. 발표 후 요리 및 설거지를 한바탕 한 뒤 부지런히 곧바로 빨래방에 갔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플랫화이트를 한 잔 사마시기도 했다. 저녁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L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카레를 만들어 먹은 다음 아주 시답잖은 그러나 재미있기 그지없는 수다를 떨다 왔다. 지금은 논문 초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윤문한 뒤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직후다. 내일은 머독 리딩 그룹에 나갔다가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S를 만나러 슈투트가르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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