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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연대기> 한유주, , 문학과 지성사, 2018 어떤 것이, 누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우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란 서글픈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투명한 인간이 아닌 이상 존재는 존재만으로 쉽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증명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유주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그 당연한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며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실을 애도하려고도 한다. "나는 있다. 내가 있다(, 157)" 또는 "네가 있다[또는, 있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이 소..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2> 일부 요약(~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 아카넷, 2006 (추후 재검토할 것!) 초월 논리학 제2부 초월적 변증학 서론 I. 초월적 가상에 대하여 "초월적 가상은 우리를 전적으로 범주들의 경험적 사용 너머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순수 지성의 확장이라는 환영으로 희망을 갖게 한다.(A295=B352, 강조는 원저자)" II. 초월적 가상의 자리인 순수 이성에 대하여 A. 이성 일반에 대하여 이성은 인식의 원천은 아니지만 최상의 인식 능력으로, 지성이 창출해낸 선험적 종합명제들인 원리들을 다루는 능력에 해당한다. "보편에서 개념을 통해 특수를 인식(A300=B357)"하는 능력이 곧 이성이다. 예컨대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에서 매개념을 거쳐 결론을 내는 추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성을 규칙들에 의거해 현상들을 통..
미셸 우엘벡, <소립자> 미셸 우엘벡, , 열린 책들, 2003 인류는 자신의 발전의 최정점에 이르러 가장 동물적이 된다는 통찰이 담긴 책이다. 우엘벡은 분자생물학자 미셸과 불문학 교사 브뤼노 형제의 인생사를 통해 "서구 사회의 마지막 신화인 섹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179)"에 대한 전사회적 집착이 낳는 개인의 고립 양상을 기술한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누구든 원하는 방식대로의 섹스가 가능한 클럽이나 자연주의 공동체를 빙자한 섹스 테마파크(적어도 우엘벡의 시선에서는 이렇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가 이 기술을 솔직하다 못해 즉물적으로 만든다. 그 즉물성은 68혁명을 비롯한 여러 투쟁을 통해 얻어진 '성적 해방'과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가 가지는 귀결들에 대한 우엘벡의 비판적인, 정..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전체에 대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다. 을 좋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사랑이라는 폭력적일 수도, 달콤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여성 인물의 내면을 꼼꼼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인상이다. 주인공 희주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이다. 희주의 욕망은 가족의 테두리를 허물지 않는 선 내로 통제된다. 그녀는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며 그 속에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비큐를 먹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곧 그 선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심지어는 강화하는 허락된--고로 통제된--욕망의 예다. 그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집의 골격만 남은 그 터 위에서 희주는 근육질의 인부를 향해 허락받지 않은 자유로..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2014 2018년 여름에 를 우연히 읽은 이후 1년에 1번씩은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찾게 된다. 작년엔 빈을 여행하면서 일부러 을 가져갔고(여행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예술가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찬 책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올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배수아가 옮긴 를 종강하자마자 읽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들은 분위기나 문제의식, 문체 면에서 서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사태의 어둠만을 보는 극단적으로 절망적인 관점이 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실존하는 인물 또는 집단에 대해 어떻게 이런 깡이 있을 수 있지 싶은 수준으로 그 정신적 타락을 비판하고, 문단의 구분도 서사도 없이 사건의 발생 순서를 왔다갔다 하며 당당하게 헤매는 듯..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박승찬 옮김,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아카넷, 2012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1. *10세기 들어 서방 라틴 세계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 면에서는 물적인 자원이 충분히 확보됨에 따라 자신들의 문명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자신감은 인간이 자신의 지성을 통해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낙관론과 일종의 선택친화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 낙관론이 전제한 주지주의는 서방 라틴 세계의 심적 지주였던 그리스도교의 주의주의적 전통과 마찰을 빚었다. 안셀무스가 태어났을 때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는 과연 이교--희랍--철학의 논리학이나 문법, 즉 '순수하게' 이성적인 도구들을 신을 이해하는 데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논..
프란츠 카프카, <소송>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2010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관여해서 뭔가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함께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공 요제프 K에게 공감할 수 있다. 만일 그토록 마음을 쓰는 동시에, 사실은 해당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아서 자신의 노력이 의미에 투자되고 있는지, 아니면 무의미를 위해 탕진되고 있는지 헷갈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무의미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생을 망가뜨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므로, 나는 이 작품을 비극으로 읽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상대로 무의미하며 ..
아리스토텔레스, <명제론(De Interpretatione)> 요약 및 분석 생활세계의 논리학 I. 서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제론(De Interpretatione)》에서 오늘날의 형식논리학이 수행하지 않을 법한 작업에 몰두하거나 거부할 만한 결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어떤 주제가 논리학적 탐구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지, 나아가 논리학적 탐구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내건 기대가 오늘날과 다름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크게 세 대목에서 돌출된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본격적으로 명제apophansis를 탐구하기에 앞서 아직 진리치조차 가지지 않는 명제의 구성요소들부터 탐구한다. 둘째, 그는 현대의 모순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 개념 상 결코 존재할 수 없을, 모순쌍 법칙의 예외들—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서술되지 않는 경우, 한 개의 명제가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