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307)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 현대문학, 2020 "그쪽으로는 아예 발길도 마라(140)." "그러게. 내가 남일동에 가지 말라고 했잖니. 그 동네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남일동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동네야(169)."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 홍이('나')의 내면을 따라가는 데 더 집중하는 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남일동의 풍경이 내 마음의 눈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남일동은 재개발 계획이 몇 차례나 무산되고, 산사태가 산 아래 집들을 덮치기도 하며, 바로 옆동네인 중앙동 사람들의 무시의 대상이 되는 허름한 동네다. 남일동의 주민들은 서로에게 정을 기대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온기가 있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지만, 다른 주민을 대함에 있어 세간의 편견이나 억측을 넘어설 만큼의 사랑은 품고 있..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모놀로기온>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박승찬 옮김,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아카넷, 2012 신앙의 (이성적) 근거에 대한 명상의 한 예 1. 안셀무스의 집필 환경은 연구실이 아니라 수도원(베네딕트 수도원)이었다.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은 작정하고 책을 뒤져가며 연구한 결과물이 아니라, 수도원 생활의 일환으로 또는 수사로서 신에 대해 명상하던 가운데 동료들의 권유를 받아 기록한 것이다. 수련으로서의 철학, 철학으로서의 수련. 2. 이 글은 성서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한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을 (예컨대 이슬람교 신도여서 설령 믿지 않더라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의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셀무스는 아무런 전제나 믿음 없이 논증하지 않는다. 그 경우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고백록』, 경세원, 2016 (번역이 충격적으로 매끄럽다!!!) 『고백록』은 돌아온 탕아의 신에 대한 찬가이자 그 앞에서의 겸손에 대한 찬가다. 1권부터 9권까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스스로의 생을 되돌아보며 불변하는 최고선인 하나님을 저버리고 열등한 선들—이교도 문학, 수사학, 공동의 악행을 통한 유대감, 마니교, 성적 욕망, 허영심 등—에 탐닉했음을 고백하며, 참된 행복에 대해 모르던 그와 같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교로 회심하게 되었는지를 회고의 형식으로 기술한다. 10권부터 13권까지는 인간적 욕망, 시간,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만의 독창적인 철학이 전개된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느끼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10권부터 13권까지는 간단하게 요약/논평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 2019, 민음사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테지만, 악이 없다면 아무런 인간적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극적인 통찰이 빛나는 책이다. 아래는 감상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위대한 책에 대한 어느 잡념꾸러미. 1. 신앙이 제거된 이성을 독주시킨 끝에 둘째 아들 이반 카라마조프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가공할 명제를 발견하지만, 본인은 7000년 인류의 습관인 양심을 버리지 못해 자신의 발견을 체득하지 못한다. 그의 말로는 섬망증 환자의 길이다. 그러나 이반의 발견을 온몸으로 수용한 스메르쟈코프 역시 스스로 파멸한다. 인간은 파멸하지 않으려면 신을, 적어도 신적인 것을 믿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하지만 신의 섭리는 평생을 선에 봉사한 조시마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요약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옮김, , 도서출판 길, 2017 들으려던 수업이 있어 숙제로 요약을 해뒀지만, 부득이 빠지게 되어 여기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1권 모든 공동체는 어떤 좋음을 위해서 구성된다. 그렇다면 공동체들의 공동체인 폴리스, 또는 폴리스적 삶을 형성하는 공동체는 모든 좋음들 중에서 최고의 것(유다이모니아)을 목표로 한다. 폴리스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단위들 내에서 정치가, 왕, 가정경영인, 그리고 노예들의 주인들에게는 서로 다른 지배의 방식이 적합하다. 폴리스 역시 복합체로서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에서부터 탐구되어야 하므로, 각각의 단위들을 살펴보는 작업이 요구된다. 폴리스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짝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플라톤, <파이돈> 플라톤, 박종현 역, , 서광사, 2003 죽음 앞에서 차분한, 심지어는 들떠 보이는 소크라테스가 제 의연함의 근거들을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죽음의 수련, 또는 예행연습이기에(feat. 피에르 아도) 진정한 철학자가 제 수련의 궁극목적이었던 죽음을 두려워 함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이란 혼과 몸의 분리(chorismos)에 지나지 않는데, 철학자는 “몸에 관련된 [...] 보살핌(289)”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탐구에 있어서 몸을 동반자로 대동(291)”하는 감각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몸으로부터 혼을 말하자면 탈출하게 해주는 죽음은 그녀에게 기쁜 소식이다. ‘몸과 관련된 고통이나 즐거움’과 ‘몸을 통한 감각적 지각(aisthesis)’은 엄연히 상이한 것이지만, 모두 진실로 가는 유일한 길인 혼..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이병애 옮김, 『피아노 치는 여자』, 문학동네, 2009 내가 읽은 그 어떤 소설의 여성인물보다도 비참한 인생을 산 피아노 선생, 에리카 코후트의 이야기다. 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로 충만함을 미리 알린다. 에리카는 평생 어머니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과 집착 아래서 자랐다. 그 반작용으로 그녀는 타인을 지배하겠다는 권력욕을 품는 동시에,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일, 즉 복종으로의 강력한 회귀본능을 지니고 있다. 문하생 발터 클레머에게 마조히스트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면서도 - 굴종하는 쪽이 오히려 주도권을 쥐는 종류의 섹스라는 점에서 그녀와 어울리고,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지배당해 본 적 없는 남성 클레머의 빈틈을 파고들어 그를 당황시킨다 -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형태의 소위 ‘부드러운’ ..
자크 데리다, <후설 철학에서 발생의 문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