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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소설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전체에 대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다. <시간의 궤적>을 좋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사랑이라는 폭력적일 수도, 달콤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여성 인물의 내면을 꼼꼼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인상이다. 주인공 희주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이다. 희주의 욕망은 가족의 테두리를 허물지 않는 선 내로 통제된다. 그녀는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며 그 속에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비큐를 먹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곧 그 선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심지어는 강화하는 허락된--고로 통제된--욕망의 예다. 그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집의 골격만 남은 그 터 위에서 희주는 근육질의 인부를 향해 허락받지 않은 자유로운 성욕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해야만 하는) 가정이라는 경계를 넘어가려는 욕망들을 좌절시키는 체험들의 누적, 곧 "거대한 체념(31)"이 그녀의 삶을 억압하며 지탱해왔음을 깨닫는다. (김금희 작가는 이 깨달음을 삶을 변화시키는 "인식(388)"으로 묘사하는데 그에 매우 공감했다. 어떤 인식은 행위보다도 더욱 거센 삶의 변화를 몰고 온다.)

부분들 분석:

I. 가족 소개,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기

II. 한나의 레스토랑 개업 파티: 한나는 "하고 싶은 일이 언제나 너무 많은 사람(13)"으로 묘사된다. 가정에 전념하는 희주와 달리 그녀는 천진하게 자신은 요리와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대학 시절에는 희주도 한나와 함께 영화관과 클럽을 전전하며 아름다운 것에 대한 취향과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냈었다. 그러나 현재의 희주는 취향이나 욕망이 아닌, 육아라는 이름의 의무 체계에 짓눌려 사는 중이다.

 따라서 한나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들을 대학 시절을 넘어서도 고수하는 인물로서 욕망 대신 의무를 따라 살게 된 희주의 삶의 변화를 부각해준다. 또한 희주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가정의 일과 무관한 욕망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들을 마주치게 해주는 역할이다. 희주가 놓인 욕망과 의무 사이의 대립 상황은 작중 포도주라는 소재를 통해 드러난다. 한나의 레스토랑 개업 파티에서 희주는 포도주를 마시고 싶어 하지만 모유를 수유해야 할 것을 생각해 꽤 오랜 시간 술을 참는다. 그러나 자그마한 말실수라면 말실수인 것을 저지른 젊은 발레리노가 사과하며 건네는 포도주를 결국에는 마시기로 한다. (물론 이러한 일탈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다음날이 되자마자 아이의 건강에 혹시 악영향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근원이 된다.)

III. 부서지기 시작하는 붉은 지붕의 집, 인부와의 첫만남: "한국 최초의, 최연소, 국내 초연(19)" 등의 타이틀을 거머쥔 발레리노의 삶과 대비되어 발레리나로서의 꿈, 회사인으로서의 커리어 모두를 포기하고 자신보다 아이를 우선시하는 희주의 삶이 조명된다. 그녀에게 자신만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지나간 대학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러오던 중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해당 장면에서 희주의 마지막 시선은 "싱싱하게 젊고 군살이 전혀 없는 근육질의(26)" 인부에게로 향한다. 

IV. 허락되지 않은 욕망과의 대면: 붉은 지붕의 집에 살겠다는 희주의 욕망은 엄마로서의 의무와 양립 가능한 욕망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심지어는 의무를 이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만 추구되므로 그 순수함이나 자발성이 의심스럽다. 그 욕망은 가정을 가진 여성에게 사회구조적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반면 남편이 아닌 남자를 향한 성욕은 엄마로서의 의무와 양립하기 불가능한, 나아가 그 의무가 부여되는 관계 구조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욕망으로서, 평소에는 타인(과 타인의 기대를 내면화한 희주 자신)에 의해 억압되는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또는 한나에게는 지금도 접근 가능한 그 욕망이 두 아이의 엄마인 희주에게는 그토록 위험한 것이다. 위험을 동반한 욕망은, 그것을 추구하는 자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순수함 및 자발성을 담보한다(고 알려져있다). 붉은 지붕의 집이 무너진 곳에서, 즉 첫 번째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장소에서 희주는 두 번째 욕망을 품게 된다. 물론 첫 번째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야만 비로소 두 번째 욕망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함의는 서글프다.

V. 더 이상 붉은 지붕의 집에 살지 않아도 상관 없게 된 희주: "둘째 아이의 입에 퓌레를 떠먹이며 그녀가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기쁨이 동시에 그녀 안에 차올랐다. 그 순간, 그들[희주와 남편]의 삶의 각도가 미세하게 어긋났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첫째 아이가 내미는 컵을 받아 쥐었다. 한순간이지만 엄마가 자신을 완벽히 잊을 수 있음을 알아버려 한나절 만에 조숙해진 둘째 아이만이 엄마의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33, 강조는 필자)" 자유와 통제 불가능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성찰한 마지막 문장.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고 작가의 내공이 돋보이는 구절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