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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미셸 우엘벡, <소립자>

미셸 우엘벡, <소립자>, 열린 책들, 2003

 인류는 자신의 발전의 최정점에 이르러 가장 동물적이 된다는 통찰이 담긴 책이다. 우엘벡은 분자생물학자 미셸과 불문학 교사 브뤼노 형제의 인생사를 통해 "서구 사회의 마지막 신화인 섹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179)"에 대한 전사회적 집착이 낳는 개인의 고립 양상을 기술한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누구든 원하는 방식대로의 섹스가 가능한 클럽이나 자연주의 공동체를 빙자한 섹스 테마파크(적어도 우엘벡의 시선에서는 이렇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가 이 기술을 솔직하다 못해 즉물적으로 만든다. 그 즉물성은 68혁명을 비롯한 여러 투쟁을 통해 얻어진 '성적 해방'과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가 가지는 귀결들에 대한 우엘벡의 비판적인, 정치적으로는 우파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낸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사는 서구 사회는 성적인 매력을 가능케 하는--한다고 여겨지는--젊음과 육체미에 대한 강박적 숭배, 그리고 그 이면으로 노화와 질병에 대한 강박적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다. 죽음이라고 하는 철학적이고 고전적인 공포의 대상은 노화와 질병이라는 물질적인 과정에 대한 현대적인 공포로 대체된다. 자신의 여생에 남은 쾌락보다 남은 고통이 더 많을 것임을 깨달은 뒤 긴 망설임 없이 자살을 택한 브뤼노의 애인 크리스티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의 오랜 성적인 욕구 불만을 해소시켜줬던 크리스티안이 죽자 브뤼노는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는 성욕을 누그러뜨리는 약물을 복용하면서 간식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만족하며 늙어간다.

 사실 브뤼노와 크리스티안의 사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오직 섹스를 매개로 전개된다. 지적 호기심으로 맺어진, 미셸과 그의 상사 데플레슈앵 사이의 관계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소위 진정한 인간관계를 추구한다는 아나벨도 미셸과의 섹스를 통해 어린 시절의 순수를 되찾고자 한다. 그러나 섹스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들의 고독은 강해져만 간다. 섹스에서 오는 쾌감을 '음핵과 귀두를 덮고 있는 크라우제 소체의 작용'으로 계속해서 자연화하는 우엘벡의 냉정한 서술은 섹스가 고독의 해결책이 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를 역설한다. 고독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나벨이 어린 시절에 미셸을 향해 일방적으로 품었던 것과 같은 사랑이 상호적이 된 상태, 즉 진짜배기 사랑뿐이다. 이런 사랑과 섹스는 우연히 공존할 수야 있겠지만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오늘날의 서구사회에서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엘벡의 진단이다. 이때 우엘벡은 서구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문제로 취급해, 미셸의 연구가 신인류를 창조해냄으로써 인류가 자발적인 자멸을 맞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는 풍자적인 결말을 내놓는다. 이 신인류는 DNA가 모두에게 동일해 브뤼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고 욕구 불만의 상태로 몰아넣었던 외모상의 차이가 없다. 나아가 온몸이 크라우제 소체로 뒤덮이게 됐으며, 죽지 않기에 노화하지도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고민하게 된 지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서구 사회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문제로 취급할 수 있는가? 예컨대 우리 사회가 섹스에 대해 가지는 견해는 프랑스인들의 견해와 다르며, 사회 전반적인 서구화의 진전 속에서도 한국적 특수성을 유지할 것이다. 이 차이는 어느 견해가 더 윤리적이냐와는 무관한 사실의 문제이다. 따라서 인류 전체가 미셸의 연구에 서구인들과 똑같이 호응하리라는 우엘벡의 전제는--아무리 유머라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서구중심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둘째, 어느 사회에든 존재하는--그러므로 문학적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될 수 있는--일부 남성의 폭력적인 성욕은 어떻게 재현되어야 하는가? 브뤼노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인기를 얻지 못하고, 상급생들의 괴롭힘을 당해 용기나 자기애마저 잃는다. 우엘벡에 따르면 그는 남성들의 성적, 권력적 경쟁에서 밀려난 <오메가 수컷>이다. 이런 일련의 이유들로 해소되지 않는 성욕을 풀기 위해 브뤼노는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를 향해 자위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학생 앞에서까지 제 성기를 꺼낸다. 이것들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성폭력이고, 남성들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쥐지 못한 이가 그 한 같은 것을 여성을 상대로 푸는 전형적인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피해자가 브뤼노를 문제 삼지 않자 그는 그것을 '너그러움'으로 치하하며, 이 이야기를 들은 크리스티안은 브뤼노를 사랑해줌으로써 그를 용서한다. 물론 우엘벡까지 브뤼노를 용서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서사의 전개는 나에게 불만족스럽다.

 셋째, 이 소설 속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섹스의 문제를 남성 인물의 입장에서 풀어낸 책이므로 불가피하다거나, 또는 마찬가지로 빈번하게 여성 역시 성적인 주체로 묘사되므로 용인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남성 인물이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문학적인 풍토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열한 고민을 거쳐 어떤 윤리적인 체에는 걸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체에 난 구멍들이 촘촘한 정도를 언어로 명시적으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이런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내게 갈 길이 얼마나 먼 지 깨닫게 되고 조금은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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