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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논리연구 2> 제5논리연구 요약 [개선 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3권> pp.50-91(후썰 시간론 분석) 요약 및 논평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IV421 요약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 아카넷, 2014 꽤 오랫동안 칸트의 윤리학이 지나치게 강박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떠들어왔던 것 같은데, 다시 살펴보니 그 수다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아니면 적어도 깊은 성찰을 결여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향성이나 주변 상황의 영역이 아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에 도덕이 놓여있으며, 오직 그 경우에만 도덕법칙에 요구되는 필연성이 충족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을 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위안을 내어준다. 나의 의지가 윤리적 명령에 따르는 한, 그 의지로부터 나온 행위의 결과와 독립적으로 내 의지와 행위의 선함이 확보되고 보장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자기위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같은 것이..
20200912 희망과 불안에 대해서 희망으로 가득찰 땐 미래라는 자유를 사랑하게 되지만 불안이 엄습해오면 미래로부터의 자유를 사랑하게 된다. 슬픔은 희망보다 불안이 우리의 삶에 훨씬 흔하고 잦다는 데 자리한다. 희망은 삶의 순간들과 단지 우연히 병존하지만 불안은 모든 순간들이 그에 속박되는 삶 그 자체에 깃들어있다--라고 써놓고는 과연 확실한 말인지를 곱씹는다. 그 반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거의 비슷한 확실성을 내세우면서, 불안이야말로 삶의 우연이고, 희망이 필연의 육화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삶의 운명 같은 것은 정해질 수 없으며, 정해진다 한들 무한히 해석돼버릴 수 있고, 그 수많은 해석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 본래 지녀야 하고 지닐 수밖에 없는 내용 같은 것은 희석되다 못해 자취를 감춘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희망을 가질지..
에드문트 후설, <제일철학 2권> 요약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에드문트 후설, <사물과 공간> 요약 에드문트 후설, 김태희 옮김, , 아카넷, 2018 도입부 "세계는 과학에게 나타나기에 앞서 우선은 자연스러운 파악에게 현시된다. [...] 과학의 세계 파악에게 사물들을 내어주는 것은 단순한 경험, 직접적 지각, 기억 등이며, 과학의 세계 파악은 다만 일상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 사물들을 이론적으로 규정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과학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모든 간접적[매개적] 정당화는 바로 직접적[무매개적] 소여 위에 놓여 있다. 실재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체험들은 지각과 기억이고 (어떤 직접성을 지닌) 예상 및 예상과 비슷한 작용들이다. [...] 이러한 원천에서 나오는 모든 직접적 소여를 착각이라고 선언함은 명백한 무의미(nonsens)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거나 그렇..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에드문트 후설, 박지영 옮김, ⟪현상학의 이념⟫, 필로소픽, 2020 후썰 자신이 현상학의 기획과 목표, 방법론을 개괄한 강의록이다. 그에 따르면 현상학은 일종의 인식비판으로서, 인식의 본질과 서로 다른 인식의 형식들을 탐구함으로써 회의주의를 논파하고 객관적 학문의 가능성, 나아가 존재론(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을 정초하고자 한다. 자연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식의 가능성을 문제 삼지 않고, 인식하는 주관에게 인식 대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여긴다. 이 태도 하에서는 주관이 대상에 대한 명증적 앎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들과 달리, 철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식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인식은 의식의 테두리 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와 어떻게 부합..
찰스 테일러, <헤겔> 1부(pp.13~23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