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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그르기치,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필리프 그르기치, 박승권 옮김,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전기가오리, 2020. 원숙한 퓌론주의 회의주의자는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지속적인 탐구자이면서 동시에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가? 판단을 유보했다면, 고통의 원인을 이미 모두 제거했음으로써 평정에 이르러 더 이상 탐구를 이어갈 동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르기치는 회의주의자가 판단을 유보한 뒤에도 앎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의주의자에게 고통의 원천은 의견상의 불일치--현상의 상충 때문이든, 본성상 좋거나 나쁜 것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든--에서 온다. 의견상의 불일치가 고통을 야기하는 이유는, 의견들 가운데 한 가지(또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으며, 우리네 인식의 목표가 그러한 진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미하엘 프레데, <회의주의자의 믿음> 미하엘 프레데, 박승권•박준호 옮김, "회의주의자의 믿음", 전기가오리, 2022.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와 같은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1)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가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믿었거나, (2)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하는 삶이 실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은 역사적 오해이며 철학적으로도 문제적이다. 회의주의자는 사물이 그에게 어떻게 현상하는지--판타지아의 평결--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참이라는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이성을 통해 현상 배후의 실재를 알 수 있다는 독단주의에 반대하고, 현상 너머의 실재(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일체 유보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이를테면 실재는 없고) 현상만이 참이다'라고 주장했다는 생각 또한 오해이..
김태희,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 3, 4부 발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알렉산더 슈넬,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의 현상개념과 현상학적 구축> Alexander Schnell, Phänomenbegriff und Phänomenologische Konstruktion bei Husserl und Heidegger, Studies in Contemporary Phenomenology, 2012, Vol.6, p.43-54. 모든 강조는 필자.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의 현상개념과 현상학적 구축[Konstruktion] 슈넬의 본 연구는 현상학의 근본개념인 현상에 대해 탐구한다. 현상학은 후설과 하이데거 모두에게 초월론적 철학의 일종인 초월론적 관념론이다. 이에 세 가지 질문이 잇따른다. "1. 초월론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은 어디에 존립하는가[Worin besteht]? 2. 초월론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과 다른 초월론적 관념론은 어디서 차별화되는가..
이병덕, <현대 인식론> 일부 요약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20220927 끼적끼적 별다른 글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일기를 쓰고 싶은 기분이라 무언가 끼적여 본다. 최승자 시인의 일기들을 읽고 있어서 그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다. 오늘 하루는 반도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를 기록해보겠다. 어제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5시 반이었다. 9시 반에 청강하는 수업이 시작되고, 통학하는 데 넉넉잡아 1시간 반쯤 걸리기 때문에 다시 잠을 청하기가 애매했다. 그대로 영차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요새는 외출 준비가 즐겁다. 러쉬에서 산 샴푸에서 나는 제비꽃 향기가 무척 상쾌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만 않아도 오후까지 상쾌함이 남을 텐데, 연기 한가운데 오래도록 앉아 있다 보니 2시만 되어도 향은 온 데 간 데 없다. 수업을 듣고 P씨와 컵밥을..
에드문트 후설, <타당성구조로서의 존재의 구조> 번역 Edmund Husserl, Zur Phänomenologie der Intersubjektivität. Texte aus dem Nachlass. Dritter Teil: 1929-1935. Hrsg. v. Kern, Iso, 1973(Hua XV) Beilage XLII(1932), s. 590-592. 모든 밑줄과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이다. [590] 타당성구조로서의 존재의 구조(1932) 나의 지향적 삶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타인과 함께이며, 나는 세계지평의 모든 변화[Wandlung], 나를-위해-존재함의 모든 변화 그리고 '존재자'의 의미 자체의 모든 변화 그리고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하는 모나드들의 모든 변화 등을 나 자신으로부터, 나의 삶으로부터 획득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나는 나의 존재를..
예니 에르펜베크,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배수아 옮김, ⟪모든 저녁이 저물 때⟫, 한길사, 2018 가정법이 지배하는 소설이다. 우리가 살 수 있었던 모든 삶들, 바랄 수 있었던 모든 사랑들, 행할 수 있었던 모든 정치들을 현실세계와 가능세계의 교차를 통해 형상화한다. 문학의 형태를 입음으로써 이야기는 현실성과 가능성 사이의 위계를 해체시키고, 둘을 궁극적으로는 분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 모든 가능한/현실적인 실존들의 끝은 공통적으로 죽음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 가능세계는 없다.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냐고 묻는 것은 아주 우스운 일이다. 유대인 혐오, 제1차 세계대전, 볼셰비즘, 독일 통일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기에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한다. 형식적으로 아주 독특하고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