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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현상학

발터 비멜, <위기라는 주제의식의 범위 내에서 독사와 에피스테메의 의미에 관해> 요약

Walter Biemel, "Zur Bedeutung von Doxa und Episteme im Umkreis der Krisis-Thematik" in: Elisabeth Ströker (hrsg.), Lebenswelt und Wissenschaft in der Philosophie Edmund Husserls, Frankfurt am Main : Klostermann, 1979, pp. 10-22, 모든 강조는 필자의 것.


- 에피스테메와 독사의 의미는 고대 이래로 이미 자명하지 않은가? 나아가 엄밀학으로서의 현상학이 독사와 관계하는mit sich abgeben 것이 그것의 근본적인 의도에 위반되지 않는가?

- 그러나 후설은 비엔나 강연에서 유럽의 위기의 원인Ursache을 따지면서, 유럽적 정신[의 형태?]Geisterhaltung와 유럽적 인간 자체의 토대Grundlage*가 무엇인지 해명할 적에 에피스테메와 독사의 의미를 규정한다.

*유럽의 정신적 형태 i.e. "이성의 이념, [그] 무한한 과제에 입각해 오직 그들의 현존과 역사적 삶의 자유로운 형태화 속에서만 살고자 하고 살 수 있는 [...] 인간의 시기 [...] 를 위한 돌파구이자 발달의 시작점"을 가리키는 "내재적 목적론"[을 담지하는 것](Hua VI, 319, s. 10에서 재인용)** ➔ 추후 여러 특수학문으로 나뉘는 "보편적 학문, 세계전체Weltall에 대한, 존재자의 전체통일체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발생을 통해 유럽은 자신의 정신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스의 철학은 유럽적 정신의 근원현상Urphänomen이다.

**★Q. 후설의 언명은 유럽 인류가 인류 전체의 목적 실현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유럽중심적이다. 그의 유럽중심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위기⟫의 문제의식을 바람직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 상술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운데서 에피스테메와 독사가 대조된다kontrastieren. 에피스테메는 이론적 태도를 대변하는 한편, 독사는 일반적normal 또는 자연적 태도를 대변한다.*,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의 세 번째 부분이 연상된다. ⟪방법서설⟫ 3부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준칙들을 일러준다. 데카르트는 관습을 존중할 것, 한 번 정한 것은 의심스럽더라도 마치 확고한 것인 양 끝까지 지킬 것, "운보다는 나를 이기려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들을 바꾸려고 늘 애[쓸] 것"(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방법서설, 정신지도규칙⟫, 문예출판사, 2019, 171), 극단적인 의견을 피할 것 등등을 포함하는 이 준칙들을 "내가 가급적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임시 도덕"이라고 부른다(168).

**★태도 i.e. "그로써 나타나지는 의지의 방향 혹은 관심들 속에서의 습관적으로 견고한 의지삶의 양식"(Hua VI, 326, s. 11에서 재인용) ➔ 자연적 태도=인간으로 하여금 제 자리를 찾게 하고 제 일을 잘 해내게 하는zurechtfinden/zurechtkommen 실천적인praktisch 성격의 태도 ↔︎ 이론적 태도는 자연적 태도로부터의 의지적willentlich 에포케를 거친 후에야 도달 가능하다.

cf. 그런데 후설은 이론적 태도와 자연적 태도 외에도 ★제3의 태도를 제시한다. "이론적 태도로부터 실천적 태도로의 이행 속에서 수행되는[,] 양편의 관심들의 종합"이 이루어지는 태도, 프락시스를 배제한 채 형성되었던 이론이 결국 그리로 향해짐으로써 인류를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봉사하는 태도, 현상학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Hua VI, 329, s. 11에서 재인용). 

- 학문적 진리(무조건적 진리=에피스테메)와 선학문적 삶에서의 진리(상대적relativ 진리=독사)는 서로 구분된다. ★이 구분으로부터 "세계표상실제wirklich 세계 사이의 차이", "전통에 결부된 일상의 진리"와 "전통에 의해 더 이상 현혹되지 않는 동일하고 모두에게 유효한allgütig 진리 자체Wahrheit an sich" 사이의 차이가 자라난다aufkommen(Hua VI, 332, s. 12에서 재인용). 에피스테메는 일상적 경험Alltagsempirie와 전통이 아닌 객관적 진리objektive Wahrheit를 규정한다. 에피스테메=철학을 향한, 곧 '순수하게 이념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학자공동체(="유럽을 특징짓는 초국가적 교육공동체")는 "모든 전통적 소여Vorgegebenheit에 반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s. 12).

- 그런데 이제까지의 서술은 전통에 물들어있는 일상적 진리와 그 상대성을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아무리 후설이 이론적 태도의 역사적인 결과Auswirkung을 논한다고 해도 독사는 여전히 평가절하되는abwerten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연의 2부에서 후설은 "에피스테메와 독사에 대한 이와 같은 잘 알려진geläufig 파악의 전복Umsturz"을 행한다(s. 12).

- ⟪위기⟫ 부록 18번은 [단지] 경험을 통해 증명되는bezeugen 것들의 지평인 생활세계에서의 진리와 인식을 주제화한다. 생활세계적 경험은 직관Anschauung으로서 "대상적인 것 자체를 나타내고 형성Zeugen에로 불러낸다."(Hua VI, 464, s. 13에서 재인용) 생활세계는 언제나 그리고 미리im voraus 존재타당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미 조화롭게 경험되거나 조화를 향해 수정 가능한 방식으로 경험된다. 이는 생활세계가 그 안에서 함께 사는 이들과의 관계성 그리고 "지속적인 타당성상대성Geltungsrelativität의 운동 속에서" 역동적으로 실재함을 가리킨다(ibid.). 그런데 이런 생활세계는 독사의 세계이다(cf. ibid.). 이로써 독사의 가치는 새로이 판단되기에 이른다. ➔ Hua VI, 465: 생활세계 내부에서는 독사가 결코 평가절하되지 않으며, 오히려 독사야말로 인간의 전체 목적지향적 관심삶에 가능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독사에 따르면 세계는 자명하게 이해되는 존재자들의 세계이며, 이렇게 표상된 존재자들을 기반으로 해서만 객관적 학문이 비로소 전개될 수 있다. 한갓되게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그 존재타당성이 결코 멈추지 않는 유동 속에 있는 그런 사물들의 진리가 곧 최종적이고 영원한 진리들의 기반Boden이다.* 학문이 설령 도달 불가능한 것일지라 하더라도 주도이념으로서 영원한 진리를 목표로 향해 갈 때에조차 그것은 생활세계적 근거Grund 위에서의 판단들로 이루어져있다.**

★*Q. 독사는 어떤 의미에서 에피스테메의 기반이 되는가? 그와 같은 기반됨은 에피스테메를 위한 독사의 배제와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나아가 독사의 발생적인 근원성이 후설적 관점주의의 탄생을 가리킬 수는 없는가? ➔ ⟪기하학의 기원⟫ 읽어볼 것.

Q. 에피스테메의 발생을 쫓는 작업이 왜 중요하며, 에피스테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활세계가 에피스테메의 기원에 있음을 밝히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wie sehr[no matter how] ihre[Wissenschaft] Theorien in einer historischen Bewegung der Vervollkommnung sind, als in einer eigenen Geltunsrelativität [seiend?], sie sind Urteile auf dem lebensweltlichen Grund [...]"(Hua VI, 465, s. 14에서 재인용)

- 독사에 대한 가치평가를 전환할 근거는 무엇인가? 무슨 탐구를 어떻게 진행하면 독사가 이토록 중요해지는가? ➔ 학문의 이상Ideal이 어떻게[어떤 과정을 거쳐] 그 특정한 의미를 설립하게 되는지, 서로 다른 앎의 방식들Wissensweisen 각각에 어떤 기능이 부여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둘 때(s. 14-15). "생활세계의 선소여된 기반"은 [객관적] 학문을 정초한다fundieren. 달리 말해, 그것은 학문을 위해 필연적으로 전제되며 학문보다 앞서 주어진다. cf. "Fundierung hier verstanden im Sinne der notwendigen Voraussetzung, der Vorgegebenheit."(s. 15)

- 후설은 생활세계의 선소여성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 부록 17번: 생활세계는 그 어떤 특수한 목적보다도 선행하여 타당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주어진다(cf. Hua VI, 461).

-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에 의해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근대에 이르러 이성적 인식과 동일한 것으로 수용된다. 나아가 [에피스테메를 목표로 삼는] 수학적 자연과학이 세계에 대한 모범적이고 궁극적인 인식으로 여겨지게 된다(cf. Hua VI, 420). 그러나 후설에게 수학적 자연과학은 토대와 원리를 부여하는 제1의 학문이 될 수 없다. 제1의 학문은 "객관적 학문의 기반 자체를 주제화하고 의문시"한다(s. 15). 그것은 "주체의 어떤 익명적으로anonym[=암묵적으로, 주제화되지 않은 채] 수행되는 성취들을 통해 이러한 기반이 최초로allererst 형성되는지"를 묻기에 생활세계를 도외시할 수 없다(ibid.). 

- 부록 14번에 나타난 물리학 비판: [새로운] 물리학은 선학문적 생활세계로부터 수행되는 이념화Idealisierung 과정과 "정밀한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숙고들"에 대해 묻지 않게 만드는 전통화Traditionalisierung이 자신의 선행조건임을 간과한다überspringen(Hua VI, 447f, s. 16에서 재인용). [➔★물리학적 지식은 그 자체로 완성된 채 존재하며 그리하여 단지 수용되어야 할 독단적 진리가 아니라 주체의 이념화를 통해 구성되는 무엇이다(cf. 김영필 1993).] cf. "학문은 마치 공허한 공간 속에서처럼 생활세계 위에, 한갓되게 감성적인 소박성들의 세계 위에 부유하지만, 삶을 위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필증적으로 유효해야gelten 한다."(Hua VI, 448, s. 16에서 재인용)

- 비엔나 강연에서는 수학적 자연과학의 합리성이 상대적이라고 단언한다("Was aber die Rationalität ihrer Methoden und Theorien anlangt, so ist sie eine durchaus relative"). 그것이 전제하는 근본적 출발점Grundlagenansatz은 도리어 "현실적[실제적]wirklich 합리성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순전히 주관적인 것"인 "직관적 주변세계"로, 학문으로부터 그리고 작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주체들로부터도 잊혀져 있다(Hua VI, 343, s. 16에서 재인용). 아인슈타인의 법칙들마저 사실은 우리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법칙들 일반, 수학적 객관화 일반이 어떻게 삶의 하부토대 그리고 직관적 주변세계 위에서 의미를 부여받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며, 그렇게so 아인슈타인은 그 속에서 우리의 생동하는 삶이 전개되는 시간과 공간을 개혁하지 않는다."(ibid.) 

cf. ⟪위기⟫의 갈릴레이론은 생활세계가 어떻게 수학적 자연이 되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 이제 후설은 놀랍게도 경험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할당한다. 경험주의는 오직 경험 가능한 것으로부터 출발해 마음의 작동들operations of mind을 탐구하고 그것이 학문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생활세계를 주제화하는 셈이다(cf. Hua VI, 449). ➔ 부록 12번의 흄론 & 칸트 비판(cf. Hua VI, 452) & 데카르트 비판(cf. Hua VI, 436)

★독사: 선소여된 것, 전제된 것, 근원적인 것(cf. Hua VI, 434). 독사의 세계 없이는 그 어떤 고차적인 의미설립도 불가능하다. ➔ ⟪경험과 판단⟫ §10에서 논리학을 정초하는 선술어적 생활세계: 생활세계적 경험은 이념의 옷을 입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념화의 필연적 정초토대이다. 이때 생활세계적 경험을 주제화한다는 것은 생활세계의 대상들을 주어지는 그대로 당연시 여기는 작업이 아니라 대상에 침전되어있는niedergeschlagen 역사를 그 원천에까지 추적하는 작업이다. 이 역사에 힘입어 비로소 근원적 경험과 직관의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해당 작업은 정밀성을 기준으로 가지는 논리학자들과 달리 독사(="궁극적으로 근원적인, 아직 정밀하고 수학적-물리적으로 이념화되지 않은 명증의 권역")를 정당화한다. 정밀한 방법론은 한갓된 방법론이지, "즉자ein An-sich를 [무매개적으로] 전달해주는vermitteln 인식의 길"이 아니다(s. 19에서 재인용). 

★과학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즉자로서의 세계는 일차적 세계가 아니며, 독사의 세계에서 이념화된 세계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자체로 "새로운 에피스테메"이다(s. 20). ➔ 이러한 발견은 근대 문명의 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생활세계는 역사적인 세계이다. "학문적 세계의 결과들은 생활세계 속에 [...] 그것의 침전물을 가진다."(s. 20) 직관적 세계는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논리화된다logifizieren. [철학은 현상학이 됨으로써 그러한 역사성을 포착해야 한다.]"

★신종의 엄밀성 "Wohl hat sich seine[Husserl] eigene Deutung der Philosophie gewandelt, aber nicht um die wissenschaftliche Strenge aufzugeben, sondern um zu einer Strenge zu gelangen, die im Bereich der Wissenschaftlichkeit nicht erreicht werden kann."(s.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