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86)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현대문학, 2018. "조용하고 안전한 나만의 세계"(16)에 대한 갈망과, 그 세계를 이루는 사물들과의 친연성이 돋보이는 짧은 시집이었다. 여러 시들에서 화자는 마치 "없는 생활"(31)과도 비슷한, 다만 "하루도 빼먹지 않고 모든 게 거기[여기] 있"(18)는 평온한 고립을 꿈꾼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시어인 '외투'는 파괴의 위험이 없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세계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기표이다. 화자는 외투를 입었다가 다시 벗고, 내부로 재진입하면서, "더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32)는 선택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데서 실존적 위안을 얻는다. 불변하는 평온의 경계 내에서 화자는 사람보다도 사물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가 일어나려면 먼저..
레오 페루츠, <심판의 날의 거장> 레오 페루츠, 신동화 옮김, ⟪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 책들, 2021. 가벼운 언어로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깊이 파고드는 추리소설이다. 단순히 연쇄적인 자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로만 읽힐 수도 있지만, 그 표피 아래에는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 또는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과욕이 묘사되어있다. 창조적 상상력에 대한 갈망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일련의 의례를 거쳐--이 이상 스포일하고 싶지 않다--'심판의 날'을 맞이함으로써 모든 것이 새로운 이세계, 말하자면 완벽하게 타자적인 것을 만나 영감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의 날에 만나게 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 그것도 자기 영혼의 핵을 이루는 가장 내밀한 공포일 뿐이다. 이 ..
신유진, <몽 카페> 신유진, ⟪몽 카페⟫, 2021, 시간의 흐름. 저자가 파리에 머물렀던 시절 다녔던 카페들에 대한 기록이다. 파리의 카페를 지나치게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실감 나고 두근거리는 이야기들을 만나 즐거웠다. 저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란히 창가에 앉아 다른 파리지앵들과 함께 세탁방을 건너다 보며 세탁과 건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야기(정확히 말하면 세탁물을 도난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이야기), 노숙자 크리스틴에게 맥도날드의 커피를 사줬던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함부로 외롭지 않겠다."(122)는 말도 인상 깊었다. 나도 저자처럼 카페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카페에 가서 30분 이상 앉아있는 것 같다. 웬만하면 프랜차이즈보다 개인 카페를 선호하고, 아늑함보다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토마스 베른하르트, <몰락하는 자>와 니체의 생리학 토마스 베른하르트, 박인원 옮김, ⟪몰락하는 자⟫, 문학동네, 2011. 어쩌다 보니 이 한 소설만 네 번을 읽었다. 구매한 날짜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2018년 6월 20일 북페어에서 구매해 처음 읽었고, 책을 덮자마자 공허해진 마음에 다시 읽었고, 2019년에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을 쓰면서 또 꺼내봤고, 이번엔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강독하는 수업에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재독했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운 점들이 돋보이는 책이다. 베른하르트의 문학적인 역량에 오늘도 감탄한다. 글의 작은 일부는 내가 기존에 니체의 저서들을 요약하면서 썼던 문구들을 옮겨온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지만 데드라인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9학점..
조지프 콘래드, <어둠의 심연> 조지프 콘래드, 이석우 옮김,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을유문화사, 2008. 소설 전체가 하나의 심연과도 같이 모호했다. 아프리카 내에서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하고 있는 어느 강 유역이라는 것만 유추할 수 있을 뿐 배경이 어디인지도 모호하고--작가의 전기를 통해서만 그곳이 콩고 강임을 알 수 있다--인물들의 행적 또한 마치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이 소설에서 모호하지 않은 것, 확실하고 견고한 것은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만 그 차분한 존재의 무게만으로 결국은 자신을 정복하러 오는 모든 이를 내리누르는 빽빽한 정글뿐이다. 야생에 둘러싸인 백인들은 열악한 환경과 고독감으로 미쳐가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급기야 ..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알라 알아스와니, 김능우 옮김,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2011 한참 소설가 김영하의 팟캐스트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그가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정확한 워드 초이스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좋은 소설에는 오히려 밑줄을 칠 곳이 없고 밑줄을 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쳐야 하게 된다'는 것이 골자였다. 표현이 아름다운 탓 또는 충격적인 탓으로 두드러져서 흐름을 끊는 부분들이 산재해있기보다, 그리하여 밑줄을 통해 해당 부분을 전체 흐름으로부터 절단시킬 수 있기보다 이야기 자체가 통째로 하나의 유기체로서 온전한 소설이 곧 좋은 소설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얀 빌딩⟫이 내게는 바로 그런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화려한 비유도, 일상을 뒤집는 매혹적인 환상도 ..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아글라야 페터라니, 배수아 옮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Warum das Kind in der Polenta Kocht)⟫, 워크룸프레스, 2021.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1인칭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이는 많은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많은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무덤덤한 듯 굴다가도 문득 생의 고통을 어른보다도 예민하게 느껴버린다. 가족을 증오하는 동시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섹스를 모르지만 또 알고 만다. 아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 모르지만 아는 것, 알지만 모르는 것을 자연스러운 언어 속에 녹여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인위적인 공을 들인다고 해서 밀도와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경험이 필요하다. 어린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