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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신유진, <몽 카페>

신유진, ⟪몽 카페⟫, 2021, 시간의 흐름.

 

 저자가 파리에 머물렀던 시절 다녔던 카페들에 대한 기록이다. 파리의 카페를 지나치게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실감 나고 두근거리는 이야기들을 만나 즐거웠다. 저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란히 창가에 앉아 다른 파리지앵들과 함께 세탁방을 건너다 보며 세탁과 건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야기(정확히 말하면 세탁물을 도난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이야기), 노숙자 크리스틴에게 맥도날드의 커피를 사줬던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함부로 외롭지 않겠다."(122)는 말도 인상 깊었다.

 나도 저자처럼 카페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카페에 가서 30분 이상 앉아있는 것 같다. 웬만하면 프랜차이즈보다 개인 카페를 선호하고, 아늑함보다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모던함을 쫓지만, 사실 카페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거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에 진입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가이다. 마치 미르체아 엘리아데가 ⟪성과 속⟫에서 신전의 문턱이 서로 다른 세계들을 이어준다고 말한 것처럼, 내가 카페에 들어섬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획득하기를 희망한다. 그냥 커피 마시고 나오는 곳에 대한 기대치고는 과도한 것 같다만, 내가 늘 이런걸.

 내가 카페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빈 테이블과 빈 의자, 그곳을 점유할 누군가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음료가 반드시 불러일으킬 일정 시간 동안의 상호작용에서 뻗어나올 수 있는 서사의 가짓수가 무한하다는 사실에 있다. 어떤 대화든지 펼쳐질 수 있고, 어떤 만남이든 불붙을 수 있으며, 당연히 지옥 같은 이별 또한 가능하다.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나는 흡연을 하지 않으니 커피를 주구장창 마시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다. 빈 자리들이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잠재태를 현실화하는 인물들을 말이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만 카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군중 가운데서의 자존을, 고독 가운데서의 소속감을 즐기고 싶은 이상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기 위해서도 커피 값을 지불한다. 그러니 저자의 마지막 문장들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서의 내공이 녹아들어있는 문장들이었다.

 "파리에 사는 내내 혼자이기 싫은 날, 혼자서 카페에 갔다. 운이 좋으면 대화를 말끔하게 이끄는 카페 주인을 만나 부담 없이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같은 작가의 책을 읽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다. 또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를 바라보는 사람을 보면 아, 당신도 외롭구나, 그렇게 동지애를 느꼈다. 무엇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만큼은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세상 속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 정도의 거리가, 그 정도의 삶이 좋은 것 같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이의 온기를 느끼며, 옆 테이블로 넘어가지 않고 내 몫의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삶. /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카페에 가고 싶다."(156, 강조는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