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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조지프 콘래드, <어둠의 심연>

조지프 콘래드, 이석우 옮김,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을유문화사, 2008.

 

 소설 전체가 하나의 심연과도 같이 모호했다. 아프리카 내에서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하고 있는 어느 강 유역이라는 것만 유추할 수 있을 뿐 배경이 어디인지도 모호하고--작가의 전기를 통해서만 그곳이 콩고 강임을 알 수 있다--인물들의 행적 또한 마치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이 소설에서 모호하지 않은 것, 확실하고 견고한 것은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만 그 차분한 존재의 무게만으로 결국은 자신을 정복하러 오는 모든 이를 내리누르는 빽빽한 정글뿐이다.

 야생에 둘러싸인 백인들은 열악한 환경과 고독감으로 미쳐가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급기야 원주민들을 꾀어 자신을 숭배하도록 만들고, '반항자'들은 목을 베어 말뚝에 박아넣은 인물 커츠까지 등장한다. 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도덕적으로 칭송 받고 있으며, 성공적인 상아 교역으로 회사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주인공 말로의 여정이 실질적으로 그의 '고귀한' 인격을 몸소 대면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는 사실은 그의 죽기 전 마지막 한 마디처럼 "끔찍하다!"(151)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어둠'은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다. 하나는 아직 소위 문명의 '빛'이 들지 못한, 대신 대자연의 압도적인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야생의 어둠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지식의 빛으로 밝혀지고 계몽됐다는[aufgeklärt, enlightened] 백인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탐욕과 위선의 어둠이다. 커츠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교역소에 나와있는 거의 모든 백인들--무능력한 본부장, 그와 비밀스럽게 협심해 커츠의 명망을 떨어뜨리고 한 자리 차지하려는 벽돌공, 원주민들에게 총을 쏴대는 순례자들--이 그렇다. 예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항해서를 꼼꼼히 연구한 러시아인 정도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또한 커츠의 '진보의 사상'에 심취해있다.

 "어쩌면 그[본부장]의 내부는 텅 비어 있을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한순간 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곳에는 외부의 견제가 없으니까 말일세. 한때 온갖 열대의 질병이 교역소의 모든 '직원'들을 쓰러뜨렸을 때, 그가 이처럼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네. '이곳으로 나오는 사내놈들은 속이 비어 있어야 한다.' 마치 이 말이 그가 지키고 있는 어둠의 심연으로 통하는 문이라도 되는 양, 그는 예의 그 미소로써 얼른 이 발언을 봉인해버렸다고 하네."(49, 강조는 필자)

 

 한낱 광기 어린 목소리에 불과한 정복의 논리, 그에 구역질을 느끼고 원주민들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거리를 두는 주인공. 제국주의 시대를 산 작가 조지프 콘래드는 선구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재현 가운데서 반복되는 원주민들에 대한 타자화로 인해 백인으로서의 우월감이 잔존하는 듯이 읽힌다. 양면적이고 논쟁적인 작품이다. 해설에 실린 치누아 아체베의 비판이 인상적이었다(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