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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알아스와니, <시카고> 알라 알아스와니, 김능우 옮김, ⟪시카고⟫, 을유문화사, 2014. 좋은 소설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시킨다. 숱하게 보아왔던 주제를 한 번뿐인 상황 속에 녹여내 어딘지 친숙하면서도 새롭다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알라 알아스와니는 ⟪야쿠비얀 빌딩⟫에 이어 ⟪시카고⟫에서도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활약한다. 사랑과 애국심, 여성의 억압이라는 보편적 테마가 시카고에 사는 이집트인 유학생들의 삶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용해되어있다. 샤이마와 타리크의 연애는 강박적이며 억압적인 종교의 규율에 얽메여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따스하고, 성공한 이민자 교수인 살라흐 박사의 조국을 위한 용기와 비겁은 비난의 시선을 거두게 될 만큼 안타깝다. 남편의 이기심과 '후진국'의 조직적 부패에 희생당하는 마르와는 돈의 유..
Daniel Dahlstrom, <Heidegger's Concept of Truth> 2장 발췌 Daniel Dahlstrom, Heidegger's Concept of Tru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서론, 1장 […] ’logical prej­udice’ refers to the thesis, as Heidegger puts it, “that the genuine ‘lo­cus’ of truth is the judgment” (SZ 226). (xvi-xvii) The main objective of the following study is to elaborate Heidegger's early conception of truth (formulated in the Marburg lectures and in Being and Time) as it proce..
마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부 요약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67. (별도의 메모가 없는 한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참고: Martin Heidegger, trans. by Joan Stambaugh, Being and Time, SUNY press, 2010. & 박찬국,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그린비, 2014(이하 ⟪강독⟫) 1권. 시간성에 의거한(auf) 현존재 해석과 존재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해설 1부.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vorbereitend) 근본분석[기초분석] 1장.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분석의 과제에 대한 설명(Exposition) §9 현존재 분석학의 주제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 속에서..
Brice R. Wachterhauser(ed.), <Phenomenology and Skepticism> 발췌 Brice R. Wachterhauser(ed.), Phenomenology and Skepticism : Essays in Honor of James M. Edie,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6. 모든 강조는 나의 것. Introduction: The Shipwreck of Apodicticity? Phenomenology's Journey "beyond" Skepticism(Brice R. Wachterhauser) "I would begin by pointing out that Husserl understands the deepest form of skepticism to be the denial of apodicticity or necessary and univ..
석류인간(2022.8) 문청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소설을 쓰는 재미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편안한 마음으로 취향과 논증과 위로를 주고받는 일의 소중함이 더 큰 요즈음이다. 이런 선호 체계 하에서 창작에 대한 내 욕망은 어디쯤 위치 지어져야 할까. 아직 배가 덜 고프고, 목이 덜 마르다. 이 사실에 잘못된 것은 없음을. “영지야, 나와 결혼해 줘. 매주 토요일처럼 매일을 보내고 싶어……” 2012년의 겨울이었다. 그 해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나는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 실망해가던 중이었다. 실망감이 절정에 달했던 12월의 하루, 그 날 저녁의 거리는 폭설이 예고되었었는데도 차로 가득했다. 정말로 폭설이 내리기 전에 빨리 이동하고 싶은 사람들의 무리인 것 같았다. 아니면 직업..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문학동네, 2021. 오늘날의 언어는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에, 즉 개별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졌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게 되었다. 이제 어떤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깔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독일어에 서투른 사람이 독일인뿐인 파티에 간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주위의 환경에 대해서도 정확한 단어를 골라 표현할 수가 없다. 반면 음악은 특수한 언어에 구애되지 않는 매체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사이도 연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악이 지시할 수 있는 의미의 범위는 무한하게 넓다. 따라서 음악에 의한 소통은 언어에 의한 소통과는 정반대의 ..
District of Columbia 4 20220806 워싱턴 D.C.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 안. 지상으로부터 11,277미터나 솟구쳐 있는 데다 언니와도 잠시 헤어진 지금, 눅눅하지만 간이 잘 된 대구 요리를 먹고도 맛에 대해 재잘거릴 사람이 없다. 완벽하게 혼자다. 오직 나의 불안과 나의 기쁨만이 내 곁을 붉고 푸른 정령들처럼 맴돌고 있다. 불현듯 그리운 연구실의 사람들과 그랬던 것처럼 티격태격, 오손도손 하면서. 우선 지금 타고 있는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이스탄불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으리라는 꽤 실질적인 불안. 동시에 두 번째 비행기를 그렇게 놓쳐서 설령 섬머스쿨 첫 날을 결석하게 된다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어찌어찌 언니가 있는 호텔에 도착해 함께 잠들 수 있으리란 믿음에서 ..
District of Columbia 3 D.C.의 미술관들에서 느꼈던 바들을 끼적여본다. 더 어렸을 때는 그림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거나 이론에 대한 영감을 습득하려고 애썼었다. 생산성에 대한 강박을 무겁게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림에 관한 한 거의 확고한 쾌락주의자가 되었다.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그림들이 더 좋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록에 대한 욕망을 느끼는 것을 보면, 무상성의 우위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D.C.의 심장부에 위치해있는 국립미술관. 건물의 외면은 웅장한 것치고 밋밋하지만 내부가 정말 멋지게 꾸며져있었다. 실내의 중앙정원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던 커플이 떠오른다. 부디, 마치 미래만이 있는 양 행복하세요. 국립미술관에서 멀지 않았던 허쉬혼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서는 솔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