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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설, <아날로그 블루> 하설, ⟪아날로그 블루⟫, 별닻, 2021(독립출판) "그렇기에 소망한다. 몇천 년의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나를 보아 주면 좋겠다고. 평생을 괴로워하다 간신히 남은 내 뼛조각을, 혹은 내 공간을 보고 욕을 해도 좋고 비난해도 좋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좋으니. 그저 오랜 시간이 지나 작은 공간으로 남을 내 부피를 보고, 내 삶이 지고 갔던 몸집 큰 괴로움을 상상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112, '고백의 형상') 실제로 만나보기도 전에, 서로가 소설을 쓰고 싶어 하고 쓰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았던 우리. 2016년에 처음 인사를 해서 햇수로 7년째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네. 그동안 정말 많은 글을 쓰고 고치고, 버리고 응모하고, 어리숙하게나마 책으로 엮기도 해보았다. 이마를 맞대고 합평..
에드문트 후설, <상호주관성> 2권 부록 42번 번역 E. Husserl (Hrsg. von I. Kern), Zur Phänomenologische der Intersubjektivität Zweiter Teil(1921-1928), Martinus Nijhoff, 1973(Hua XIV), s. 477-478. 모든 강조는 필자. [477] 허구적(fiktiv) 발생의 문제로서 그리고 정적 현상학의 문제로서 타인경험의 문제(아마 1927년 2월의 시작) 타인경험의 문제는 어느(einer) 허구적 발생의 문제로서 정식화되어야 할 것이다. 원본적(original) 환경이 낯선[타자적] 주체들 없이, 또는 그[환경] 속에 등장하는(auftreten) 낯선 신체들이 구성됨 없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환경] 속에는 오직 나의 신체와 외부사물들(Aussen..
오이겐 핑크,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과 동시대의 비평> 요약 오이겐 핑크(Eugen Fink), R. O. Elveton 역,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과 동시대의 비평(The Phenomenological Philosophy of Edmund Husserl and Contemporary Criticism), 노에시스 프레스, 2000 중. 후설을 공부한다면, 절대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그런 글. 에드문트 후설의 서문(1933. 6) 후설은 자신의 구성적 또는 초월론적 현상학에 대한 (피상적이지 않은) 진지한 비판에 응수하는 작업을 제자 오이겐 핑크에게 맡긴다. 후설에 따르면 이 글은 "내가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거나 내 신념으로서 공공연하게 인정할 수 없는 문장은 하나도 담고 있지 않다."(71) 본문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은 크게 독단적 직..
신종원, <전자시대의 아리아> 신종원, ⟪전자시대의 아리아⟫, 문학과지성사,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k32dMyHTnUE 음악은 특정한 규칙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 파동이다. 파동에 불과하다. 따라서 음악은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비음악적 소음, 이를테면 이명 같은 것과 질적으로 구분될 이유가 없다. 심지어는 인간의 존재함 자체가 필연적으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음악의 일종이다. 비음악인 줄 알았던 우리가 음악일 수밖에 없다. 음악으로 살고 음악으로 파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음악인 한에서, 우리는 모두 녹음기이거나 스피커인 기계-인간이며 단조이거나 장조이거나 무조일 뿐 인격도 성별도 사실 무차별하다. 보르헤스를 연상시키는 섬세하고 무시무시한 개성의 탄생. 세련된 문체가..
화실 0장(2018.11) 유치하지만 진지했던 스물 네 살 가을의 추억.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성했던 장편소설. 총 15장까지 있었고, 안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기억이다. 0. 혼자 공책을 펴는 시간, 그때만큼은 테이블 위의 스탠드 불이 태양보다도 강력하다.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자연으로부터의 빛이 차단된 방 안에서, 안나는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를 두 어절쯤 적어보았다. 그 사이 전구의 둥근 몸뚱어리가 눈꺼풀을 향해 인공의 열기를 쏘는 것이 느껴졌다. Je suis 알파벳들은 적히자마자 안나의 머릿속에서 제 음가를 연주했다. 그녀는 그 발음을 생각하면서 문득, 이 말들이 혹시 ‘Jesus’의 오타는 아닐까 하는 농담 같은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을 꾸며보다가 그만 두었다. 안나의 프..
<현상학적 정신병리학> 옥스포드 핸드북 일부 요약 G. Stanghellini, M. R. Broome, A. V. Fernandez, P. Fusar-Poli, A. Raballo, R. Rosfort (ed.), The Oxford Handbook of Phenomenological Psychopath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12장 현상학에 대한 비평과 받아들임 - 데리다, 푸코, 들뢰즈(Federico Leoni) 데리다, 푸코, 들뢰즈는 공통적으로 순수 주관의 불가능성, 곧 "초월론적인 것의 불순성"을 내세워 후설을 비판한 바 있다(88). 우선 데리다는 후설의 현상학을 가능케 하는 인간적 경험의 생동하는 현전도, 그에 대한 직접적(first-hand), 즉각적 기술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생동하는 ..
루돌프 베르넷, <현상학적 환원과 주체의 이중적 삶> 요약 T. Kiesel & J. van Buren (ed.), Reading Heidegger from the Start - Essays in His Earliest Thought,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4, pp.245-267 14장 현상학적 환원과 주체의 이중적 삶 (Rudolf Bernet, Trans. by François Renaud) '현상학적 환원은 대체 무엇을 드러내주는가?'라는 질문에 현상학자들은 상이한 반응을 보여왔다(245). 후설은 초월론적 주관과 세계 사이의 구성적 상관관계를, 하이데거는 [인간적] 현존재의 실존에서 마주치는 존재를(e.g. 도구존재), 장-뤽 마리옹은 어떤 호소, 요구, 부름의 소여(givenness[donation])를..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정명희 옮김, ⟪댈러웨이 부인⟫, 솔, 2019. "런던은 스미스라 불리는 수백만의 젊은 청년들을 삼켜버렸다. 부모가 그들을 특색 있게 하려고 생각해냈던 셉티머스 같은 별난 그리스도 교도다운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스톤 거리에서 떨어진 곳에서 하숙하면서 핑크색의 순진한 타원형 얼굴이 마르고 찌푸린 적개심에 가득 찬 얼굴로 변하는 것 같은 경험들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가장 빈틈없는 친구라도 정원사가 아침에 온실 문을 열고 화초에 새로 핀 꽃을 발견하고는 하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꽃이 피었어. 허영, 야심, 이상주의, 열정, 외로움, 용기, 게으름 따위의 평범한 씨앗들에서 꽃이 피었단 말이야.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유스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