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306)
20220215 Glücksmomenten 삶은 감정들의 바다이고, 나는 이성이라는 부표라도 끌어안고 있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하지만 파도가 세면 내 왜소한 몸은 집어삼켜지고, 익사를 두려워하고, 끝내 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 살아남는다 해도 물 맛은 지독하다. 다음 파도를 예감하며 느끼는 불안도 지독하다. 그럴 때는 지독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곱씹으면서 자위하는 수밖에 없다.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과거에 내가 미소 지었던 순간들이 있었으므로, 미래에도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앎에 대한 욕망과, 선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나가기만 한다면. 나 간신히 살아가고 있거든요. 쉽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에드문트 후설, <생활세계> 25번 유고 ''세계'라는 존재토대의 필증적 확실성의 일부로서의 내 인간적-신체적 존재의 필증적 확실성. 데카르트적 회의-시도로의 소급지시' 번역 E. Husserl (Hrsg. von R. Sowa), Die Lebenswelt: Auslegungen der vorgegebenen Welt und ihrer Konstitution. Texte aus dem Nachlass 1916-1937, Springer, 2008 (Hua XXXIX), s. 251-258, 모든 강조는 필자. 초월론적인 탐구를 처음 개시했을 무렵 후설은 데카르트의 성찰들을 따라 세계 존재의 비필증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랬던 그가 후기에 와서는 여러 유고들에서 세계의 존재가 경험의 끊임없는 수정 가운데서도 얼마나 확고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전제되는지를 반복적으로 피력한다.* 자연적 태도에서의 인식이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 정당화를 결여하고 있는지로부터, 동일한 인식이..
에드문트 후설, <위기 보충판> 22번 유고 4절 '세계의 초월론적 발생으로서의 초월론적 자기숙고' 번역 E. Husserl (Hrsg. von R. N. Smid),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3 (Hua XXIX), s. 266-271, 모든 강조는 필자. 후설이 (이전엔 잘 쓰지 않았던) '표상'이라는 표현을 유독 많이 쓰는 것이 돋보이는 유고다. 국가에 대한 언급들이 흥미롭다. 결론부에 이르러 별다른 근거도 없이 평화를 이성적 존재의 이념이라고 상정한 것은 조금 나이브하다. 하지만 후설이 이 유고를 썼을 당시 처해있었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가 자신의 시대를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표상했는지, 어째서 이 유고들의 결산이 '위기'란..
에드문트 후설, <위기 보충판> 7번 유고 '흘러들어옴(Einströmen)' 번역 E. Husserl (Hrsg. von R. N. Smid),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3 (Hua XXIX), s. 77-83, 모든 강조는 필자. 후설은 작가로서 정말 끔찍하다. 문학으로는 절대 봐줄 수 없다. 질적인 정제에 대한 미적 욕망이 없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양적인 통제에 대한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고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의 장황함과 무절제함은 현상학 전공자인 나조차 변호해줄 수가 없다. 다만 이 글은 출간용 원고도 강의록도 아닌 유고이기 때문에 그 이유로 자비를 베풀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박문재 옮김, 명상록, 현대지성, 2018. ⟪명상록⟫이 철학서인 이유는 이 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위로의 말들이 그 심리적 효용 때문에, 또는 귀납적 추론의 결론으로서 채택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우주론의 연역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존재자들은 전 시간을 지배하는 촘촘한 인과의 사슬로 다 함께 단단히 묶여있다. 사슬의 마디로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이기 이전에 더없이 친숙한 일들이며, 그 일들뿐만 아니라 그 일을 작용시키는 자도 그 작용을 당하는 자도 모두 가장 기본적인 원소들로 해체되어 소멸한다. 이토록 뻑뻑하고 고리타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우리를 새롭게 흥분시키고 좌절시킨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이 세계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도도는 도도도도 / 비평가들(2022.1) (1) 회사에서 도도의 별명은 ‘도도는 도도도도’였다. 도도에게 일을 시키면 도도가 도도도도, 눈알을 잽싸게 굴리고 빠르게 타자를 쳐서 도도도도 프린터로 달려가 다시 도도도도, 서류가 필요했던 사람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또는 도도가 도도도도, 전화를 걸거나 외근을 나가 볼일을 보고 잠시 커피를 마시는 요령도 없이 도도도도, 회사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도도는 후배도 없는 유일한 말단사원에 불과했고, 입사 후 3년이 지나도 그 점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능력 있고 성실한 데 있어서는 그녀의 상사들보다 배로 나았다.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해도 도도 없이는 회사 전체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게을렀으며, 일은 자꾸만 위에서 아래로 끝내는 뿌리의 밑동인 도도에게로 내려왔다. 도도는 혼나지도 않았다. 도..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적 환원> 34번 유고 '나의-존재함(Ich-bin)의 필증성이 가지는 의미' 번역 E. Husserl (Hrsg. von S. Luft), Zur Phänomenologischen Reduktion: Texte aus dem Nachlass (1926-1935), Kluwer Academic Publishers, 2002 (Hua XXXIV), s. 467-469, 모든 강조는 필자. 나의-존재함(Ich-bin)의 필증성이 가지는 의미(1934년 봄) 필증적으로 나의 코기타툼인 세계. 나를 위한 세계의 필증성, 나의 존재함의 필증성 1) 나에 의해 현실적으로 또는 가능하게 경험된 것으로서의 세계의 존재론적 본질. 이 본질에는 하나의 유일한, 모든 변주들을 관통해 개별적으로 불변하는 것으로 남는 실재적인 것, 구체적으로 말해 '인간'이라는 본질형식, 말하자면 나, 이 인간이, 나의 모든..
20220123 진자운동 네게 무슨 일이 생기든 네 곁에 있을게. 너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게(이제는 다 괜찮아). 너의 미래도, 그것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든지 간에, 있게 되는 그대로 긍정할게(다 괜찮을 거야.) 네가 해왔고, 하고 있는 행동을 그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평가하려들지 않을게. 네 글의 독자가 되어줄게. 네 글의 팬이 되어줄게. 네가 무서워 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같이 싸워줄게. 너의 겁에 공감하지만, 같이 휘말리지는 않을게. 어쩌다 온 세상이 네 적이 된다면, 나도 온 세상의 적이 될게. 온 세상이 네 적이 되는 밤. 그 밤에 네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줄게. 그 다음날. 낮이 되면 커피를 끓여줄게. 결국에는 네가 옳았다고, 너는 옳다고 생각해줄게. 내가 사랑으로부터 기대하는 말들이지만, 사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