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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zehn

석류인간(2022.8)

 문청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소설을 쓰는 재미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편안한 마음으로 취향과 논증과 위로를 주고받는 일의 소중함이 더 큰 요즈음이다. 이런 선호 체계 하에서 창작에 대한 내 욕망은 어디쯤 위치 지어져야 할까. 아직 배가 덜 고프고, 목이 덜 마르다. 이 사실에 잘못된 것은 없음을.

Rosemary Mayer, Snapdragons 1995, Pastel on paper

 “영지야, 나와 결혼해 줘. 매주 토요일처럼 매일을 보내고 싶어……”
 2012년의 겨울이었다. 그 해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나는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 실망해가던 중이었다. 실망감이 절정에 달했던 12월의 하루, 그 날 저녁의 거리는 폭설이 예고되었었는데도 차로 가득했다. 정말로 폭설이 내리기 전에 빨리 이동하고 싶은 사람들의 무리인 것 같았다. 아니면 직업상 날씨가 얄궂든, 말든 거리를 달려야만 하는 사람들이거나. 나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굳이 규정한다면 폭설을 반가워하는 쪽이었다. 매서운 눈발이 아스팔트 위를 점령하기를. 사위가 문자 그대로 하얗게 질려, 수많은 이들의 시야를 단박에 차단시켜버리기를. 차들이 몇십 중의 대형 추돌사고에 휘말리기를. 굉음의 진원지에 내가 타고 있는 이 택시도 얌전히 끼어들어가있기를. 택시가 트럭 따위를 들이받아, 그 순간의 충격만으로 앞 유리창 전체가 깨져버리기를. 와이퍼 같이 연약한 것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보닛은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져 들어올려지기를, 택시 기사는 순간적인 판단력과 운 덕분에 차를 빠져나왔지만, 나는 부주의로 안전벨트조차 매고 있지 않았던 데다, 원래부터 약했던 척추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고, 도망 나갈 힘은커녕 의지까지 상실하기를…… 하지만 택시에서 내린 나는 단지 호텔의 회전문 안으로 휘말려들어갔다. 그 뒤로는 익숙한 동선이었다. 꼭대기 층에 오르자 붉은 등 아래에 바의 메뉴판이 놓여있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자 나를 본 웨이터가 다가와 ‘RESERVED’라 적힌 팻말을 제거했다. 여느 때처럼 고개를 젖혀 천장을 뒤덮은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머리를 말았는데, 어떤 기쁨을 위해 그렇게 했었는지를 반추했다. 그 사이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 미안해, 한 시간 늦을 것 같아. 생각했던 것보다 마무리작업이 복잡하네.
 나는 답장도 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사제락을 주문했다. 예상하기 어려운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기는 정확히 육십 분 뒤 모습을 나타냈다. 마치 저 ‘한 시간’이라는 상투어가 새로운 약속이라도 성립시킨 것처럼 정확했다. 그는 바 안으로 쓰러지듯 입장했는데,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넥타이가 흐트러져 있었고, 아침에 왁스로 정성스럽게 쓸어올렸을 머리카락도 땀에 젖어 축 쳐져있었다. 그는 내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잔을 의식했다.
 “혹시 벌써 취했어?”
 “그건 아니지만, 기다리느라 한 시간을 앉아있었는 걸.”
 “미안해. 그래도 한 주 내내 노력했다구, 오늘을 위해서.”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 하룻밤과 그 다음날의 낮을 통째로 함께 보내는 데이트를 1년째 이어오고 있었다. 데이트의 세부사항은 매번 동일했다. 호텔의 1층 또는 옥상 바에서 술을 마신 뒤, 객실로 올라가 과격한 척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평범한 사랑을 나눴고, 그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내가 두 번째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선기는 가운 차림으로 이미 잠에 들어있었다. 나는 불을 모두 끄고, 리딩 램프만을 켠 다음 책을 조금 읽다가—한트케, 루크레티우스,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졸음이 오면 선기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둘 다 늦게까지 잠을 잤기 때문에, 아침식사는 잠긴 목소리로 룸서비스를 시켜 그는 구운 생선 같은 것을, 나는 버섯이 들어간 오믈렛과 소시지를 먹었다. 선기가 덜 피곤한 주에는 수영을 했고, 피곤한 주에는 객실 안에서 음악을 들었다. 솔로이스트들의 음반을 여럿 전전했지만, 선기는 우리 엄마의 연주를 가장 좋아했다. 밝은 곡을 연주할 때조차 슬픔이 묻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슬픈 곡에는 비장미가 깃들어있다고, 영지의 어머님께서는 현실을 날카롭게 인식하시는 분이야, 라고 선기가 평한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냉소했다. 우리 엄마 같은 낭만주의자가 또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몽상가 기질은 유전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 나에게로 몽땅 물려졌고, 성향들의 함수인 아빠는 나와도 사랑에 빠졌으며, 그 기계적인 과정 하에서 나는 온갖 귀여움이란 귀여움은 다 받으면서 자랐다. 그 다음날 숙박료를 결제하고도 언제나처럼 여섯 시에 미리 체크아웃을 하고 나면, 선기는 일요일 출근을 앞두고 부모님께 효자 노릇을 하러 서울의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그가 보양식을 픽업하거나 바베큐 파티 따위를 준비하러 가는 사이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종로구의 오피스텔로 되돌아갔다.
 “고마워, 노력했다니.”
 “알아줘서 고마워. 여기, 다이키리 두 잔이요.”
 그러나 명랑하게 주문을 하던 목소리는 빠르게 힘을 잃었다. 그는 몹시 피곤했던지 자기 몫의 칵테일만으로 뻗어버렸다. 나는 비틀거리는 선기와 함께 로비로 내려가 체크인을 했다. 평소와 똑같이, 섹스에 대한 예감의 무게를 애써 유지하기 위해 아무 말 없이 복도를 주파하고, 받아온 열쇠로 객실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모든 곳에 조명 대신 촛불이 켜져 있었고, 하트 모양으로 뿌려진 꽃잎이 침대 시트 위를 뒤덮고 있었다. 하트의 중심부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점의 케이크와 발렌티노의 가방이 놓여 있었으며, 뒤를 돌아보니 선기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 역시, 때를 맞출 수가 없었을 뿐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달 전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뵀고, 한 달 전에는 모두가 함께인 식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선기의 가족은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중소기업의 자수성가한 CEO라는 우리 부모님의 조합을 무척 만족해 했다. 나 역시 점잖고 유머 감각을 갖춘 교수 커플인 선기네 부모님이 마음에 들었다. 두 부부는 심지어 얼마 전 동일한 오페라에 다녀왔었다. 어머, 저희 왼쪽 4열에 앉아 있었는데. 저희는 중앙 11열이요. 강남 한복판의 완벽한 장소, 완벽한 원테이블 오마카세. 고상한 대화, 완벽하게 일치하는 아비투스. 단 하나의 오점도 없었던 그 화합의 시간은 내게 공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이 네 사람, 선기까지 더해 다섯 사람은 앞으로 내 삶에서 철저한 표백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 분명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백지로 태어나 자기 생에 얼룩이라도 묻혀보지만, 나는 늙으면 늙을수록 깨끗해지기만 하겠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않고, 별다른 좌절도 없이……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가? 잘 나가는 선기와 헤어질 것인가? 묻기도 했었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그럴듯한 대사들로 일관했고, 어느새 나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빛나는 반지가 꼭 맞게 끼워져 있었다.

*

 나의 존재를 하나의 사물로 은유한다면 석류였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단단한 껍질 속에 불규칙적으로, 따라서 자유롭게 웅크리고 있는 한 무리의 사념들이 있었다. 사념들은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고, 내것인 그만큼 아름답지만, 껍질에 막혀 세계에로 발사되지 못했다.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질감의 막에 의해 지나칠 정도로 보호되어있다는 감각. 그 속에서 모든 게 너무나 잘 돼 간다는 불안. 그 불안으로부터 나는 놓여있었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성공과 평화에 제약되어 있었고, 일탈의 끝에도 내 침대 위에 누워있게 되었다.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었는지, 일탈이라고 해봤자 납득하기 쉬운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 내 잘못도 컸다. 이를테면 대학시절 왼쪽 날개뼈 아래에 가시가 달린 장미와 단도 문신을 새겼던 정도. 올드스쿨 스타일로 테두리선이 굵고, 곧게 세워진 단도가 장미를 뚫고 지나가는 도안이었다. 바늘이 살갗을 파고들면서, 참을 만하다고는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닌 고통이 반항의 기쁨을 불러일으켰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푹신한 베개 위에 엎드린 채, 깨끗하게 소독된 기구를 통해, 겉보기에도 예쁘장한 표식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몸 한 구석에 낙천주의와 전투의 상징을 새겼지만, 내 삶 속에서는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낙천주의도 필요하지 않았다. 선기가 처음 내 알몸을 보았을 때, 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곱게 자란 그가 태투 때문에 내게 반감을 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지금처럼 태투가 흔하지 않았고, 편견도 심했기 때문에 정말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선기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나에게 더 깊이 반하고 말았다. 그 역시 자신의 빈곤한 상상력을 동원해, 명문 대학에서 미학 강의를 듣지만, 윗단추를 두 개나 푼 폴로 셔츠 속에 칼과 가시를 숨기고 있는 여자를 이상화해버린 것이다. 세상은 별것 없었다. 무사히 졸업한 나는 취업문마저 뚫어버렸다. 자격요건만 몇 개 갖추면 갓 졸업한 대학생이란 웬만하면 서로 대체가 가능했다. 취직은 행운의 문제로 환원됐으며, 불운하게도 나는 불운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월급은 초봉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동시에 초봉이기 때문에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는 엘리트 코스라고 부를 법한 길 위를 마치 무빙워크인 양 편안하게 걷고 있었다. ‘엘리트 코스’라는 단어는 그 발음에서부터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건 오물이 아니라 지나치게 진한 향수 냄새에서 유발되는 구역질에 가까웠다. 브라이덜 샤워 격으로 열렸던 모임에서 고등학교의 독일어과 동기들이 풍겼던 냄새. 결혼식 날 신부대기실에서마저 가십을 하려든, 무능하고 의존적이면서 자존심만 셌던 사수가 풍겼던 냄새. 무엇보다 신혼여행 도중 나도 아니고, 선기가 떼를 써서 들른 칼리닌그라드의 호텔 비누 냄새. 그는 굳이 생화를 사다가 칸트의 무덤 앞에 다발째로 두었었다. 칼리닌그라드에는 전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욕실 같았고, 죽은 철학자의 비석조차 스폰지처럼 눅눅했다. 그 앞에서 칸트의 후손인 양 경건했던 선기의 옆모습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편에게 잘생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기는 측면만 잘생긴 남자였다. 옆에서 보면 우뚝한 콧대와, 날렵하게 생긴 얇은 입술이 먼저 눈에 들어와 얼른 얼굴을 돌려 키스를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마주보게 되면 듬성듬성한 눈썹과 유난히 작은 눈 때문에 심심한 인상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와 키스하면서 눈을 떠본 적이 없었는데, 로맨틱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단지 이 남자로군, 내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남자가. 이 심심하고 재미없는 남자로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적 습관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니 선기는 데이트 시절부터 부모님과의 정기적인 식사를 제하면 남는 모든 시간을 나를 만나는 데만 쏟고 있었다. 동창생도, 동료도, 친구도 없었다. 일, 서영지, 부모님. 또 일, 서영지, 부모님.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일정에도 질색하는 일이 없었고, 미친 업무량 때문에 지친 채로도 밝은 태도를 유지했으며, 슬픔은 내가 선별해주는 첼로 소리에서나 찾았다. 그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강인함은 딸 소리가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옥처럼 꾸며진 산후조리원의 1인실에 머무는 동안, 선기는 단 하루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입사한 이후로 그가 처음 써본 휴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라주는 부의 한가운데서 자라난 소리는 영아 시절, 선기처럼 크기가 애매한 이목구비에 인상이 멍했지만 나이가 들고 눈빛이라는 것을 갖추게 되면서부터는 나를 닮아갔다. 행동 면에서도 선기보다는 나와 비슷했다. 애답지 않게 떼쓰는 일이 없었으므로 키우기는 편했지만, 속내를 알기가 어려웠다. 선기는 소리가 조숙하다고 말했지만, 내가 봤을 때 그 애는 영악한 데 가까웠다. 하루는 유치원의 담임 선생님께서 오전에 아이들끼리 싸움이 있었다면서 긴급히 상담을 요청해 오셨는데, 예상과 달리 불려온 부모는 나뿐이었고, 소리는 싸움의 당사자가 아닌 싸움의 관조자였다. 어머니, 소리가 연수랑 희윤이가 코앞에서 싸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어요. 친구들이 싸우는 게 무섭다거나, 성격이 소심해서가 아니었어요. 소리는 팔짱을 끼고, 책꽂이에 등을 기대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연수랑 희윤이가 언성 높이면서 하는 말들을 입모양으로만, 조용히 따라하면서 히죽거리고 있었어요. 나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해프닝을 원하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는 것은 싫다니. 그런 마음은 김선기에게서는 징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서영지 표 권태와 불성실의 결합이었다. 물론 담임 선생님께서는 웃음을 되돌려주지 않으셨다. 눈썹을 여덟 팔 자로 구부린 채 어머니, 저는 소리가 걱정이 되어요, 라고 마치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처럼 목소리를 떨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면서 진지한 척은. 나는 당황해서 순간 웃음이 잘못 나왔다고 둘러대고는, 울상을 지어보이며 유치원을 나섰다. 소리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땀이 많이 났다. 날이 더워서인 것 같아 에스프레소 바에 들렀다. 커피와 얼음을 넣고 갈아 만든 그라니따를 마셨고, 소리에게도 같은 것을 한 잔 시켜줬다. 집의 문턱을 넘어서서는 티브이에 연결된 스피커로 스크랴빈을 틀었다. 볼륨을 조정하는 사이 소리는 쪼르르 방 안으로 들어갔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선기가 퇴근할 때까지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줬다. 스크랴빈의 피아노 콘체르토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음악은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소리의 일을 잊게 해줬다. 나는 내 속의 붉은 종자들을 촉촉한 영감으로 부풀리는 데만 집중했다.

*

 내가 실제로 소리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어느덧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부터였다. 우리는, 그러니까 사랑이 알처럼 배긴 시부모님의 모성애를 향한 열정에 못 이겨 안 그래도 지겨웠던 직장을 진작에 그만 둔 나와, 이번에도 역시 남을 위해 휴가를 쓴 선기는 소리에게 하늘색 트위드 원피스를 입히고, 풍선을 쥐어준 다음 광화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입학식이 끝난 것을 기념해 룸이 큼직한 중국음식점에서 단란한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도착한 뒤 나는 중국 냉면을, 선기는 짜장면 곱배기를 시키면서 작은 몸의 소리는 선기와 음식을 나눠 먹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소리가 내내 메뉴판을 쥐고 놓지 않더니 웨이터가 오자 다짜고짜 메뉴를 추가해버렸다.
 “……나 짬뽕.”
 웨이트리스는 여덟살배기에게 반말을 듣고도 미소를 띤 얼굴로 물러났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리 몫의 짬뽕을 들고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검버섯처럼 혐오스러운 꼴의 동근 기름이 시뻘건 국물 위로 띄워져 있었고, 신기하게도 연근이 두 개 얹어진 짬뽕이었다. 홍합 껍질들이 죄다 조금의 틈도 없이 굳게 닫혀 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소리는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우악스러운 얼굴을 하고 홍합으로 손을 뻗고는 껍질을 벌려보려 했다. 선기는 자기 몫의 짜장면이 나온 것도 잊고 소리를 도왔다. 그러나 선기가 있는 힘을 다해 껍질을 열어주는 속도보다 소리가 홍합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아버지의 느린 주황색 손끝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던 소리는, 홍합을 해치우는 일을 미뤄두고 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짬뽕의 면을 푹푹 떠서 입 안 가득, 문자 그대로 쑤셔넣었고, 몇 번 씹지도 않은 채 삼켰으며, 삼키자마자 스스로에게 숨 돌릴 새도 주지 않고 젓가락을 다시 손에 쥐었다. 아직 젓가락질이 서툴렀기 때문에 면의 가닥이 여러 차례 하얀 식탁보 위로 떨어져 미운 자국을 남겼다. 입가는 식탁보보다도 더 지저분했다. 하지만 선기는 여전히 홍합을 열고 있었고, 나는 소리를 멀찍이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소리의 입을 닦아주지 않았다. 어느덧 소리가 먹는 소리가 식당의 음악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면이 입술에 닿은 뒤 미끄러져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 이빨로 짓이겨지는 소리, 국물이 잇몸에 스며드는 듯한 가물거리는 소리, 새까만 식도로 모든 것이 하강하는 소리, 젓가락이 다시금 가지런히 모아지는 소리…… 모든 것이 특수 마이크 따위로 신호가 증폭된 것처럼 세세히 들려왔다. 어느새 새로운 그릇을 시키는 소리를, 그리고 그 장면을 웃으면서 용인하는 선기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 불현듯 우스꽝스러웠다. 단지 속으로 우스꽝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나의 그릇을 비우기 시작한 뒤로도 쭉 소리를 의식했다. 적당히 싱거울 것을 기대한 냉면은 너무 짰다.

*

 동창생 명조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은 소리가 첫 번째 방학을 맞았을 무렵이었다. 소리는 입학식 날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폭식을 하더니, 방학을 맞아서는 거의 매일 같이 내가 준비해주는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해치워대고 있었다. 명조를 만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은 것도 소리에게 떡볶이를 3인분이나 배달시켜준 다음이었다. 오랜만에 옷장을 열었더니 온통 원피스, 개중에는 짧아봤자 엉덩이를 덮는 상의뿐이었다. 한여름에도 내 단도와 장미는 옷 속에 숨기를 좋아한 것이다. 나는 약간은 치파오를 닮은 검정색 원피스를 골랐다. 명조와 나는 따로 저녁을 먹고, 여름 해가 다 진 다음에 만나 포트와인을 한 잔 하기로 했다. 15년이나 지나서 만난 명조는 그대로인 동시에 그대로가 아니었다. 나른한 눈매에 반해 산처럼 중간이 솟구쳐 있는 눈썹, 콧대가 날렵하지만 끝이 둥글어 어딘가 부처 같아 보이는 코, 립스틱으로 덮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르튼 입술은 고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셔츠와 슬랙스를 차려입고, 명품일 리 없지만 견고해 보이는 가죽 가방을 메고 나타난 명조에게는 오랫동안 고독하게 공부를 한 사람만의 아우라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명조는 고등학교 때도 매일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일 외에는 하지 않았었다. 한 반이었던 3년 내내 그랬는데,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에도 눈빛이 또렷했고, 독일어 문법 시간에조차 꼿꼿이 등을 펴고 앉아있었다. 피할 수 없는 졸음이 찾아오면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어 손수건으로 한두 번 문지를 뿐이었다. 모두가 명조는 앞으로도 단조롭고, 바로 그 이유로 성공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 타고난 성실함으로 한국 사회의 대들보 따위가 되어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명조의 성실함은 세론이 아닌 그녀 자신의 욕망에 대한 것이었다. 명조와 같은 대학에 진학한 동기들의 수다에 따르면,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자퇴를 하고 소르본의 학사과정에 재입학했다. 이유는 낯간지럽게도 ‘프랑스 문학에 대한 열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 때문이었다. 차라리 독일로 갔다면 이해하기에 약간이라도 더 쉬운 선택이 되었겠지만, 명조는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파리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눈 친구는 입학 허가가 난 동시에 부모님의 지원이 끊긴 것 때문에 명조가 곤란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외로운 유학 생활 끝에 학위를 얻어 귀국한 명조가 눈앞에서 수척한 얼굴로 와인을 시키고 있었다.
 “영지 너랑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서,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꼭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녀의 첫 마디는 꽤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미안하지만 난 네가 선택형 수업을 들으러 간 사이 몰래 네 필기를 훔친 적이 있는 인간이야, 그것도 여러 번, 이라는 고백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원래 말수가 적은 척 눈썹만을 치켜올렸다.
 “자습 시간에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복도 끝의 비상구 문을 열었는데, 네가 혼자 mp3 플레이어로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있었지. 슬픈 눈을 하고 있었고. 기억 나? 내가 어떻게 화면도 안 뜨는 기계로 음악을 듣냐고 물었었잖아.”
 “아, 그 분홍색 미키 마우스 모양.”
 “그때 네 대답이 잊히질 않아. 어차피 여기에는 한 곡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다른 음악은 다른 플레이어에 있고…… ‘라흐마니노프의 하나뿐인 첼로 소나타를 다른 곡과 섞을 수 없다’였나.”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네가 모든 일에 시큰둥해 보여서, 쟤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음흉해 보인다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그 이후로 네가 그저 내면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그것도 나랑 비슷한.”
 ‘내면’이란 말에 나는 고무처럼 끈덕진 과육 속에 갇혀 있는 나의 석류알들을 생각했다. 명조가 그것들을 꿰뚫어 보았었다니, 조금은 감동적이었다. 내 사춘기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은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그녀와 대화를 해볼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명조 너는 어떻게 지냈어?”
 “아, 천국과 지옥을 오갔지……”
 명조에 따르면 처음에 그녀는 어눌한 프랑스어 실력 때문에 제대로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캐쉬 잡을 전전하거나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다행히 주말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여행사 가이드 일을 정기적으로 맡게 되었고, 부족하게나마 평일의 공부 시간을 확보하면서 생활은 천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 한 명과 살림을 차리고 결혼 직전까지 갔지만, 술만 마시면 괴팍해지는 성격을 견디지 못해 헤어졌다고 했다. 나는 내 주량의 반도 소화하지 못하는 데다, 술을 마시면 조금 치근덕거리다 얌전하게 잠에 들고 마는 선기를 생각했고 기분이 좋아졌다. 명조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새벽부터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공부만 했어, 하지만 어렵게 작성한 논문 프로포잘은 거절 당하기 일쑤였고, 겨우 계획을 승인받고 작업을 밀고 나갔건만 식중독에 걸려 후유증으로 몇 달을 좀비처럼 지낸 적도 있어, 뭔가 잘못 먹은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과로 같은 게 아니었을까? 명조가 말했다. 그래도 건강이 회복되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 논문에만 마음을 쏟을 수 있었어, 목과 허리가 아작이 났고, 너무 외로워서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겨버리기는 했지만. 지금도 정말 오랜만에 사람이랑 말을 하는 거야, 너도 아는지 모르겠는데, 가족들이랑은 왕래가 없거든…… 하지만 명조는 내뱉는 말의 내용과 달리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명조가 자기의 궤적을 드러내 보인 뒤로는 꼼짝없이 내 차례였다. 나는 내 생의 골자를 최대한 건조하게 요약해 보였다. 졸업을 하고, 일을 좀 하다가 컨설턴트를 만나 결혼했다. 지금은 딱히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아이를 보고 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써볼까 생각한다. 러시아 음악만의 분위기와 혁명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러고 나서 나는 한동안 러시아 음악만의 분위기와 혁명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떠들었다. 구상만 해놓고 조사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꿈을 꾸듯이 말했다.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거기서 무언가를 더 말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남에게 내 속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모습을 나타내보이는 것은 흥분되는 동시에 긴장되는 일이었다. 낯선 마음이었다. 하지만 취기가 오른 데다, 명조가 쏟아낸 정보에 비해 내가 하는 말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두께를 결여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혁명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오히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숨긴 주제를 꺼냈다. 요즘 딸애가 폭식을 한다, 종종 그러는데, 남편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지만, 나는 조금 두렵다……라고. 사실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지만, 무심하게 구는 것은 어머니의 가면에 걸맞지 않았으므로 일부러 걱정하는 척을 했다. 살가운 눈빛으로 경청하던 명조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힘들어서 어떡해.”
 힘들어서 어떡…… 나는 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명조의 말을 반사해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일단 남편이랑 얘기를 좀 해봐. 아내가 걱정을 하면 이해하려고 해봐야지.”
 “그렇지.”
 그런 뒤로는, 초를 세 보지는 않았지만 1분 가량의 침묵이 돌았다. 명조는 내가 말을 몇 마디 더 꺼내보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소리 이야기를 한 것을 어느새 후회하고 있었다. 약점을 잡히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해.”
 “그래.”
 “소아정신과는 가봤어?”
 명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거짓 없이 나를 위하는 투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위로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는 해도, 이 이상 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표를 내면서 대화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서로 사이에 벽을 세운 뒤로는 시답잖은 잡담과 빈말로 한 시간 정도를 채웠다. 우리는 더더욱 시답잖아지기 위해 빠른 속도로 와인을 들이켰다. 술을 마신 명조는 말이 정말 많아졌다. 결국 얼굴이 벌게지고 만 불문학 박사를 버스 정거장에 두고 나는 택시를 탔다. 창문 밖으로 그녀가 혼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마치 꿈틀거리는 생물을 들여다보듯이 응시했다.

 “정신과?”
 “그래, 정신과.”
 선기에게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봤을 때, 소리의 첫 번째 방학은 광기의 여운을 남긴 채로 끝이 난 상태였다. 나는 출근을 준비하는 선기의 뒷모습을 실내용 로브 차림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실의 창으로부터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고, 드립커피는 유난히 맛있게 내려졌다. 잔을 다 비운 후에도 향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지만, 우리 둘 사이의 기류는 따스한 분위기 속에 스며들지 못했다.
 “애기들도 그런 데 가나?”
 “소아정신과 있잖아.”
 “다 큰 어른도 웬만하면 안 가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속에서 그를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다. 너 같이 완벽하게 사회에 적응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거쳐갔거나 주변에 남은 수많은 사람들은 고민한 적이 있거나,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걸, 너는 그냥 작은 사회일 뿐이니까 모르지, 단 한 번도 어긋나본 적이 없고, 어그러진 적이 없고, 너를 어그러뜨릴 무언가를 원한 적도 없으니까, 너는 욕망마저 궤도 위에 있었으니까, 궤도가 궤도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
 “얘 상태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나 해?”
 “애기가 먹으면 뭘 얼마나 먹는다고……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지 않잖아.”
 “그걸 지금 대답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선기에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알지, 그 시시한 일을 어떻게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지, 연애할 때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지. 대화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웃음기를 띠고 있던 선기의 표정이 확 굳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내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기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고, 나는 기싸움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속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이내 소파에 앉아, 정말 내가 과민한 것인지, 혹시라도 선기의 말이 맞는지 고민했다. 실제로 소리의 폭식에는 정도차가 있었다. 선기가 있을 때엔 그 정도가 덜했고, 그저 잘 먹는 여자애가 먹을 법한 수준, 그런 대로 봐줄 만한 수준에 그쳤다. 어젯밤만 해도 소리는 선기와 내가 먹고 있었던 족발을 탐하지 않았었고, 그렇게 치면 선기가 소리를 나만큼 걱정하지 않는 것은 내가 봤을 때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나는 결국 소리를 좀 더 내버려둬 보기로 했는데, 괜히 병원에 갔다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무섭기도 했던 차였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소리는 내가 구워두었던 토스트 두 장을 순식간에 입 속으로 구겨넣었다. 그리고 나서는 까치발을 들어 토스트기의 코드를 다시 꼽으려 했다. 내가 뒤에서 그녀를 안으면서 아니야 김소리, 두 장으로 충분해, 하고 부드럽게 제지하려 하자, 그녀는 내 귀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정확히 내 귀에 대고 그렇게 했다. 순간 머릿속이 불순물이 들어간 듯이 아찔했고, 물리적인 고통이 있었다. 내가 잠시 물러난 사이, 새 토스트들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기가 찼다. 소리가 또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를까 봐 기계를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소리가 무려 열 장의 토스트를 해치운 뒤 등교하기 위해 혼자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찍찍이 구두를 신는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녀는 선기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지나치게 씩씩하게 떠나는 뒷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오히려 나를 의식하는 것도 같았다. 그날 정오에 나는 처음으로 소리의 담임 선생님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봤다. 이십 대 후반인 그녀는 한눈에 봐도 나이에 맞지 않는 학부모 상대용 프로필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리가 오늘 급식을 잘 먹었느냐, 평소에는 어느 정도로 먹느냐는 물음에 십 분 내로 건조한 답장이 왔다. ‘소리는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급식을 늘 절반 정도 남기는 편입니다. 그래도 힘이 넘치는 것을 보면 그냥 먹는 양이 적은 것 같습니다.’ 하교한 소리는 손을 씻기도 전에 냉장고부터 열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나에게 들릴 듯 말 듯한, 그러나 명확하게 분절되어 발화되고 있는 거짓말, 혹은 진심. 나는 비굴한 몸짓으로 얼마 전 사두었던 용과를 소리에게 깎아주었다. 무시무시한 외양과 달리, 용과의 껍질은 점박이 속살로부터 아주 쉽게 분리되었다. 소리는 용과의 속살을 삼켜넘긴 뒤,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가시가 돋힌 심홍색 껍질을 다시 꺼내, 혀를 내밀어서는 껍질에 남아있는 과즙을 마저 핥았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을 봤는지를 확인했다.

*

 이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생각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이제는 지옥의 입구와 같이 부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현악기의 군단과 솔로 피아노가 서로 전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았고, 관악기조차 상황에 맞지 않는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자정이 다 됐는데도 연신 배고프다고 울부짖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하고 있었다. 소리가 하교한 이후로 하루종일 그 상태였다. 그러던 중 현관문의 도어락이 열렸다. 우리 소리 좋아하는 짬뽕 사왔지, 라는 말이 들려왔고, 딸이 방방 뛰며 퇴근한 아버지를 맞는 소리, 비닐봉지 따위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참다 못해 안방의 문을 열어젖힌 나는, 해맑게 이건 쟁반짬뽕이라는 거야 소리야, 라고 말하면서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기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당신 지금 김소리한테 뭘 사다준 거야?”
 “왜 그래, 소리 짬뽕 좋아하는 거 알면서.”
 어느덧 소리가 선기의 다리 옆에 착 달라붙었다. 
 “그게 문제인 거잖아, 내가 얘 허구한 날 먹기만 하는 거 무섭다고 했잖아, 그리고 짬뽕 먹던 날 시작된 것 같다고까지 말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내 눈앞에서 애한테 짬뽕을 먹여?”
 “여보, 내가 봤을 때 소리, 절대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
 “그건 당신 앞에서만이고. 쟤가 오늘 아침에 토스트를 몇 장을 먹고 나갔는 줄 알아?”
 선기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무릎을 굽혀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소리, 아침에 토스트를 얼마나 먹었길래 엄마가 화가 났을까? 소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머리를 긁는 등 연극적인 몸짓으로, 전날 저녁을 너무 조금 먹어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너무 배가 고파서, 좀 많이 먹긴 했어요, 라고 답했다.
 “좀 많이? 너, 오늘 토스트를 열 장이나 먹었어.”
 “전날 저녁부터 굶었다잖아. 열 장 정도면 뭐……”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 오늘만이 아니야, 이건.”
 “얼마 전 토요일에 달팽이 먹으러 갔을 때. 소리 음식 거의 남겼던 거 기억 안 나?”
 “그건 음식이 맛이 안 맞아서…… 아니면 밖이어서…… 당신이 아무 것도 몰라서 그래, 사무실 책상 앞에만 앉아있으니까. 집안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내가 쟤 때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당신은 맨날 똑같이 일만 하니까, 세상 사는 게 다 지한테처럼 쉬운 줄……”
 선기의 몸이 돌연 부르르 떨렸다. 그는 처음으로 내게 화를 쏟아냈다.
 “모르는 소리하지 마, 매번 다른 클라이언트, 다른 프로젝트에 숨이 막혀 죽어버릴 지경이라고. 그런데도 당신이랑 소리 잘 키우려고 버티고 있잖아. 오늘 아침부터 왜 그래? 당신 말이야, 한 번만 더 내 일에 대해 그딴 소리 지껄여 봐.”
 소리는 내내 우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다가, 선기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 포장된 쟁반짬뽕의 랩을 벗겨 손으로 면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자그마한 손이 붉게 더럽혀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선기에게 토스트가 아니라 용과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후회했다. 그랬더라면 그가 소리에게 속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나는 안방 문을 닫고, 벽에 기대 집 주변의 병원들을 검색해보았다. 다솜소아정신과, 빛나라소아정신과, 미소천사소아정신과, 행복소아정신과…… 어느새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귀에 고였다.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이 밤에 대체 누가 나에게 연락을 해온단 말인가? 얼굴을 들이밀어 화면의 잠금장치를 제거했다. '영지야, 아이가 소아정신과에 다닌다며? 술자리에서 들었어. 어쩌면 좋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시샘 많은 고등학교의 동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쟁반짬뽕에 질린 소리가 안방의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배고파, 퉁. 배고파, 퉁. 배고파, 퉁. 벽에 기대 서있던 나는 그 진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도 모든 게 느껴졌다. 소리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는 그저 세계의 전령이며, 소리가 아니었어도 무언가는 언젠가 나를 해치기 위해, 무너뜨리고 부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었던 게 아닌지.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다.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익숙한 두려움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자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우리가 늘 옷을 입고 있지만, 옷의 안감을 감각하고 있지는 못한 것처럼. 하지만 주의하기 시작하면 그 안감이 너무나 보들보들하게, 생각보다도 더 견고하게 나를 감싸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몸과 세계를 가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벽에서 침대 쪽으로 고꾸라졌다. 발 끝의 피가 모두 머리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영혼의 빨간 파편들이 알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을 막아줄 껍질은 온 데 간 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