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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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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프리드리히 니체, 이상엽 옮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6. 니체가 자신의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며 쓴, 역자의 표현을 따르면 "철학적 자서전"(190)이다. 이제까지의 저서들이 담았던 사상들의 요점이 '가치의 전도'를 중심으로 정리되어있으며, 각 저서가 쓰였던 맥락을 작가의 입으로 듣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인 'Ecce Homo'는 "본래 기독교 ⟪신약성서⟫에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가 가시관을 쓴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라고 한다(191). 이로써 독자들은 어째서 니체가 이 책을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라는 이항대립으로 끝맺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189, 강조는 원저자). 그는 오랜 세월 유럽인의..
자크 데리다, <용서하다> 요약 자크 데리다, 배지선 옮김, ⟪용서하다(pardonner)⟫, 이숲, 2019 홀로코스트를 결코 속죄할 수 없는 사태, 따라서 용서할 수 없는 사태로 규정하는 장 켈레비치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용서의 본질을 파고드는 강의록이다. 개인적으로 데리다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아티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먼저 Lawlor가 작성한 데리다에 관한 SEP 아티클을 인용 및 요약해 그의 사상 일반의 윤곽을 그려본 뒤, 그 토대 위에서 용서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을 요약하고자 한다. I. 데리다 사상의 윤곽 Lawlor, Leonard, "Jacques Derrida",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요약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 연암서가, 2020 ⟪도덕의 계보학⟫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도덕 또는 선악의 기원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주제이자 발생의 문제다. 니체는 이 문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정사실화되는 선 즉 이타심, 동정, 희생, 인내, 겸허, 용서 등등의 가치 자체를 의문시한다. 결론적으로 니체는 선악의 기원을 ①고귀함, 능동성 및 긍지와 ②비천함, 반동성 및 원한 사이의 대립--그리고 전자에 대한 후자의 정신적인 복수--에서 찾는다. 나아가 진리를 (힘에의) 의지와 소망, 심지어는 취향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대범한 시도를..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요약 및 논평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공간에 대한 푸코의 짤막한 사유들을 조각조각 모아놓은 책이다. 작년 9월 나는 절망에 빠져있었고, 절실한 마음으로 서촌에 나가 보안서점에서 구매했는데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이제 와서야 펼쳐봤다. (한참 니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느낀 탓도 있다.) 이 책에는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인 몸', 그리고 '헤테로토피아'의 정제된 판본 격인 '다른 공간들' 등이 실려있다. '유토피아적인 몸'은 우리의 몸은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장소이며, 그곳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모든 유토피아적인 공상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몸이 세상의 중심으로서 그 자체가 유토피아라는 안티테제, 그러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 아카넷, 2018 파죽지세의 작가, 성실한 역자, 깔끔한 내지 디자인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완벽한 철학서. ⟪비극의 탄생⟫의 창의적이지만 장황한 성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감동적이지만 암호와 같은 성질, ⟪우상의 황혼⟫의 가독성 좋지만 산만한 성질, ⟪이 사람을 보라⟫의 재미있지만 난잡한 성질이 ⟪선악의 저편⟫에는 없다. ⟪선악의 저편⟫은 내가 읽어본 니체의 저작 가운데서 가장 명료한 논지와 서술을 갖춘 책이다. 그의 핵심적인 사상들이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비록 1886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저술되었기는 하지만 니체 이전의 철학사에 익숙하기만 하다면 니체 입문서로 제격인..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비판적 단상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음,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음,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창작과 비평, 2019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모든 고해성사가 그러하듯 글이 조금 장황해질 것 같다. 나는 시스젠더 이성애자로서 평생을 살아왔다. 내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한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어린시절과 사춘기를 통과했다. 꾸밈노동에 대해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모두가 맨얼굴로 활보하는 기숙사 학교에서 아이라인을 그리고 등교하곤 했고, 한 번도 화장 경험이 없는 여자아이들 중 화장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각종 도구의 종류와 사용법을 '설파'하는 데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형적인 성별 표현의 규범을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원하고 승인한 것으로 ..
김홍중, <은둔기계> 김홍중, ⟪은둔기계⟫, 문학동네, 2020 이후로 오랜만에 정말 좋은 단상집을 읽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방 깊은 곳에 두었다가 은둔지에서 꺼내 읽고 싶은 책이고, 또 다른 은둔-기계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남들의 우상에 현혹돼 은둔을 생명력의 부재로 의심하게 되는 날, 스스로를 꾸짖기 위해 재차 펼쳐봐야 할 책이기도 하다. 야구와 축구, 여행, (나에게 사실 굉장히 소중한) 영화 그리고 인류세 등 특정한 주제에 대한 단상들도 무척 좋았지만 이 책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 '은둔', '파상력', '자기-비움', '페이션시', '헐벗음' 장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남기고자 한다. 김홍중(2020)이 개념화하는 '은둔'은 사실 완전한 고립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은둔'은 또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