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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96 (b) '초월론적 유아론의 가상' 번역 E. Husserl (Hrsg. von P. Janssen),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Versuch einer Kritik der logischen Vernunft, Martinus Nijhoff: den Haag, 1974(Hua XVII), s. 248-249, 모든 강조는 필자. 초월론적 현상학이 어째서 유아론이 아닌지 후설이 변호하는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초월론적 현상학은 '나를 위해 주어진(=나에 의해 구성된) 우리를 위한 세계'를 단순히 의식에 대한 해석(Auslegung)을 통해 도달할 뿐이다. 달리 말해, 의식의 구성적 성취를 아프리오리하게 기술하고자 할 뿐, 타인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는 나의 계기에 불과하기에 존재하는 것은 자아뿐이라고 주장하지 않..
장 그롱댕, <현대 해석학의 지평> 요약 장 그롱댕, 최성환 옮김, ⟪현대 해석학의 지평⟫, 동녘, 2019. 짧지만 결코 쉽거나 친절한 책은 아니다. 번역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모든 강조는 내것이다. 서론 우리의 시대는 해석의 보편성이라는 테제, 곧 모든 것이 해석의 문제라는 테제에 친숙하다. 그러나 이것이 자의를 물리치는 진리론과 양립 가능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주의로 귀결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해석학적 견해가 갈라진다(9-10). 가다머와 리쾨르에 의해 수행된 철학적 해석학의 정체를 규명함에 앞서, 그롱댕은 '해석학'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의미를 구분한다. 첫째, "'해석학'은 고전적 의미에서 [...] 텍스트들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기예"이며, "좋은 텍스트 해석학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들, 지침들, 규범들을 제시한다. 이 규칙들..
제임스 조이스,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이강훈 옮김, ⟪죽은 사람들⟫, 열린 책들, 2021.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19, ) 이 책에 실린 조이스의 단편소설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가 되기를 지향하기보다 하나의 인상 또는 감정을 최대한 깊게 파고들면서 단지 핍진하게 전하기를 목표로 삼는 것 같다. 는 사랑에 빠진 소년의 기대가 고조되었다가 돌연 실망에 부딪히는 순간을 조명하고는 끝난다. 소년이 그래서 소녀와 어떻게 되었는지 알리는 것은 작가의 의무가 아니다. 완결되지 않았다는 느낌 역시 결함이 아니다. 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의 애인에 대한 제임스 더피 씨의 양가감정, 그녀의 나약함에 대한 경멸과 그녀를 떠..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 스위밍꿀, 2021. 올해의 작가상을 탔었던 책이고, 왜 수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가 버거웠다. 긴 말을 보태지 않고, 그저 이 책을 읽었던 이틀이 나에게 존재했다는 점만 기록해두고 싶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백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옮김, ⟪백야⟫, 열린 책들, 2021. '서정적인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모순처럼 들린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죽어야 할 것 같고, 음흉해야 할 것 같고, 경기를 일으켜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야⟫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라는 간질거리는 문제를 다루는 러브 스토리다. 그런 동시에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표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진부한 서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앙된 목소리, 과장된 자세, 불안이 반영된 장황한 말들을 통해 신성한 사랑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키스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나스쩬까를 원망하기..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 열린 책들, 1995. 번역이 무척 매끄럽다. "난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아니,] 바로 그러니까. 타락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왕이며 이 세상을 정당화해 주는 사람들이다."(313, '노트와 구상' 중) 카뮈는 자신의 삶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던 이 자전적 소설을 쓰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운명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완결된 의의라는 사탑에 봉인하는 영광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는 불시의 사고사로써 부조리의 철학을 증명했으며, 설령 운명의 일격을 피하는 데 성공해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마 같은 증명에 성공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문학이 헌정될 예정이었던 그의..
20220320 망중한, 슈만 4월 1일까지 논문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해야 한다. 남은 일은 결론과 초록 쓰기, 인용 형식 통일하기, 참고문헌 목록 작성하기 등이다. 새로운 생각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긴장이 풀어졌다. 느슨해진 마음으로 지난 한 주는 망중한을 즐겼다. 한 주 내내 카뮈를 읽었고, (카뮈를 철학자로 생각해주지 않지만 재미있는) 분석철학도 분을 따라 술자리에 나갔다. 오늘은 9년지기 동아리 선배와 경기 필하모닉의 슈만을 듣고 왔다. 3번 교향곡은 활기찼고, 4번 교향곡은 격정적이었다. 4번 교향곡은 1841년 초연 당시 청중 반응이 좋지 않았어서 실망한 슈만에 의해 개정되었다. 보통 콘서트 홀에서는 그렇게 개정된 버전이 연주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서 들은 개정 이전의 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반..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서문 M. Merleau-Ponty, trans. by Colin Smith, Phenomenology of Perception, Routledge & Kegan, 1962. 메를로-퐁티가 얼마나 후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가 처음부터 드러난다. 모든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서문(Preface) 메를로-퐁티는 후설 현상학에 내재한 모순들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현상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사태로 글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학인 동시에 인간의 현사실성(facticity)으로부터만 탐구를 시작하고, 자연적 태도의 상관자로서의 세계에 대한 정립을 중지하는 동시에 "세계가 항상 반성이 시작되기 전에 '언제나 거기' 있"음을 잊지 않는다(vii). 엄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