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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사물과 공간> 요약 에드문트 후설, 김태희 옮김, , 아카넷, 2018 도입부 "세계는 과학에게 나타나기에 앞서 우선은 자연스러운 파악에게 현시된다. [...] 과학의 세계 파악에게 사물들을 내어주는 것은 단순한 경험, 직접적 지각, 기억 등이며, 과학의 세계 파악은 다만 일상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 사물들을 이론적으로 규정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과학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모든 간접적[매개적] 정당화는 바로 직접적[무매개적] 소여 위에 놓여 있다. 실재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체험들은 지각과 기억이고 (어떤 직접성을 지닌) 예상 및 예상과 비슷한 작용들이다. [...] 이러한 원천에서 나오는 모든 직접적 소여를 착각이라고 선언함은 명백한 무의미(nonsens)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거나 그렇..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에드문트 후설, 박지영 옮김, ⟪현상학의 이념⟫, 필로소픽, 2020 후썰 자신이 현상학의 기획과 목표, 방법론을 개괄한 강의록이다. 그에 따르면 현상학은 일종의 인식비판으로서, 인식의 본질과 서로 다른 인식의 형식들을 탐구함으로써 회의주의를 논파하고 객관적 학문의 가능성, 나아가 존재론(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을 정초하고자 한다. 자연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식의 가능성을 문제 삼지 않고, 인식하는 주관에게 인식 대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여긴다. 이 태도 하에서는 주관이 대상에 대한 명증적 앎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들과 달리, 철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식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인식은 의식의 테두리 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와 어떻게 부합..
찰스 테일러, <헤겔> 1부(pp.13~23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한유주, <연대기> 한유주, , 문학과 지성사, 2018 어떤 것이, 누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우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란 서글픈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투명한 인간이 아닌 이상 존재는 존재만으로 쉽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증명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유주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그 당연한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며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실을 애도하려고도 한다. "나는 있다. 내가 있다(, 157)" 또는 "네가 있다[또는, 있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이 소..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2> 일부 요약(~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 아카넷, 2006 (추후 재검토할 것!) 초월 논리학 제2부 초월적 변증학 서론 I. 초월적 가상에 대하여 "초월적 가상은 우리를 전적으로 범주들의 경험적 사용 너머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순수 지성의 확장이라는 환영으로 희망을 갖게 한다.(A295=B352, 강조는 원저자)" II. 초월적 가상의 자리인 순수 이성에 대하여 A. 이성 일반에 대하여 이성은 인식의 원천은 아니지만 최상의 인식 능력으로, 지성이 창출해낸 선험적 종합명제들인 원리들을 다루는 능력에 해당한다. "보편에서 개념을 통해 특수를 인식(A300=B357)"하는 능력이 곧 이성이다. 예컨대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에서 매개념을 거쳐 결론을 내는 추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성을 규칙들에 의거해 현상들을 통..
미셸 우엘벡, <소립자> 미셸 우엘벡, , 열린 책들, 2003 인류는 자신의 발전의 최정점에 이르러 가장 동물적이 된다는 통찰이 담긴 책이다. 우엘벡은 분자생물학자 미셸과 불문학 교사 브뤼노 형제의 인생사를 통해 "서구 사회의 마지막 신화인 섹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179)"에 대한 전사회적 집착이 낳는 개인의 고립 양상을 기술한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누구든 원하는 방식대로의 섹스가 가능한 클럽이나 자연주의 공동체를 빙자한 섹스 테마파크(적어도 우엘벡의 시선에서는 이렇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가 이 기술을 솔직하다 못해 즉물적으로 만든다. 그 즉물성은 68혁명을 비롯한 여러 투쟁을 통해 얻어진 '성적 해방'과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가 가지는 귀결들에 대한 우엘벡의 비판적인, 정..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전체에 대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다. 을 좋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사랑이라는 폭력적일 수도, 달콤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여성 인물의 내면을 꼼꼼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인상이다. 주인공 희주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이다. 희주의 욕망은 가족의 테두리를 허물지 않는 선 내로 통제된다. 그녀는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며 그 속에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비큐를 먹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곧 그 선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심지어는 강화하는 허락된--고로 통제된--욕망의 예다. 그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집의 골격만 남은 그 터 위에서 희주는 근육질의 인부를 향해 허락받지 않은 자유로..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2014 2018년 여름에 를 우연히 읽은 이후 1년에 1번씩은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찾게 된다. 작년엔 빈을 여행하면서 일부러 을 가져갔고(여행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예술가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찬 책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올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배수아가 옮긴 를 종강하자마자 읽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들은 분위기나 문제의식, 문체 면에서 서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사태의 어둠만을 보는 극단적으로 절망적인 관점이 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실존하는 인물 또는 집단에 대해 어떻게 이런 깡이 있을 수 있지 싶은 수준으로 그 정신적 타락을 비판하고, 문단의 구분도 서사도 없이 사건의 발생 순서를 왔다갔다 하며 당당하게 헤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