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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난다, 2015.

내가 읽는 배수아의 5번째 책. 역서까지 포함한다면 7번째. 나는 그녀의 팬이다.

 

3월의 노벨소비상 수상자는 나다...

 배수아의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이지가 '알타이의 목동처럼'이란 표현을 포함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구매했을 때, 나는 내가 이전엔 단 한 번도 여행기를 사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전형적인 여행기가 아닌 것으로 치자.) 직접 여행을 가기 전 실용적인 정보가 담긴 가이드북은 몇 권 구매했었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이 여행에 가서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별다른 관심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 타인이 내가 동경하는 작가였을 뿐이다. 그 동경을 계기로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좋은 여행기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매우 애매하고 역설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여행기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직접 그 여행지에 가서 걷고, 먹고, 활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동시에, 사실 자신은 그 여행지에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상기시켜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없음이 매우 슬픈 일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여행지가 아닌 이곳으로부터는 손에 쥔 책을 통해서만 겨우 도망칠 수 있다고 경고해야 한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행기를 쓰는 작가는 황홀한 실재와 보잘것없는 부재, 또는 관점에 따라 보잘것없는 실재와 황홀한 부재를 환상적으로 조합하는 마법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배수아의 여행기가 이 두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는 않는다. 배수아는 그녀가 방문한 알타이-투바의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곳에서의 체험을 우리가 마치 그 체험의 주체가 된 것처럼 느낄 수 있게 서술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가 서술하는 체험의 종류 또한 제한되어있다. 그녀는 전통 악기를 연주하지도 않고, 투바어를 공부하려 하지도 않으며, 다른 동행들처럼 양이 도살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가지도 않는다. 유르테(게르) 안에 홀로 쓸쓸히 앉아 중앙의 난롯불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유르테를 나가, 이번에도 홀로 쓸쓸히 스텝 초원을 산책하며 사색하는 내용이 많은 지면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사색에는 역시나 배수아만의 작가적 자의식이 물씬 묻어있기에 '(독자인) 내가 향나무 계곡에 있다'가 아닌 '배수아가 향나무 계곡에 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이로써 첫 번째 조건이 위배된다. 나아가 배수아는 유목민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의 조건들이 도시인의 입장에서 상당히 열악하고, 자신이 머무는 유르테의 환경이 몹시 척박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책을 읽고 있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지금, 여기가 그다지 끔찍하지 않다고, 오히려 안락하며 쾌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로써 두 번째 조건 역시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의 매력은 따라서 '좋은 여행기됨' 또는 '여행지 자체에 대한 이끌림'이 아니라 여행자인 작가의 내면세계의 광활함과 아름다움로부터 비롯한다. 독자인 나는 그녀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시선을 갖추고 싶어진다. 그녀처럼 나도 돌과 쇠, 말머리장식호궁과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기를, 자아를 신비롭고 유쾌하게 상실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미인대회에 집착할 정도로 순수하기를, 야크똥으로 불을 피우는 난로에서 28인분의 채식주의 볶음밥을 만들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정열적이기를 희망한다. 약간의 우유부단함과 그리움의 화신인 마리아든, 주변인에게 무관심한 한스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을, 도시에서든 스텝 초원에서든 고독을 힘겨운 만큼 아름답게 수용하는 마음을 닮기를 희망한다. 도회지로 돌아온 뒤 구멍 뚫린 옷에 대한 만연해있는 거부감을 성찰함으로써 문명의 폭력성을 깨달을 만큼 예리하기를, 애초에 즉흥적으로 짐을 꾸리고 3주간 훌쩍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기를 희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서너 개만 추려 기록한다.

 "언덕에는 신비로운 색채의 납작한 녹색 돌들이 굴러다녔다. 한없이 펼쳐진 그 돌들은 알타이 대지의 비늘 같았다. 나지막하게 보이는 언덕이지만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아주 힘들고 또한 어떤 점에서는 영원히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 숨막히게 드넓고 황량하다는 인상을 제외하고는 특별하게 장엄하거나 경이롭지는 않다. 우리가 그 어느 곳의 그림엽서에서도 볼 수 없을 청회색빛 모노톤으로 가득할 뿐이다."(89)
 "불의 여신은 문헌마다 이루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름으로 등장한다. 수많은 이름을 기지고 모든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한 여인이 불이다."(151)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달려 말의 무릎에까지 이르는 강줄기들을 건넜고, 그 강가에 위치한 외로운 유르테들을 지나쳐갔다. 알타이 대지의 여기저기에는 상처처럼 쩍쩍 갈라진 곳마다 물고기도 살지 않는 맑고 차가운 광물성의 물이 투명한 회색 피처럼 날카로운 바위틈새 수로를 따라 격렬하게 흐르다가 짧은 여름 우기가 가고 가뭄이 닥치면 깊은 근심의 주름을 만들며 말라붙어가는 것이다."(196)

 

P.S. 막상 인용문들을 필사하고 나니 내가 '좋은 여행기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잡았는가 싶다. 이 책은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지만, 여행기로서도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헛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