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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열린 책들, 2011.

 1952년, 가난한 중년 부부의 하룻밤. 독일의. 

 흔히 사랑은 명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도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감정으로서 꿈꾸어진다. 그러나 사랑이 가난과 만나면 도리어 절망의 근원이 된다. 프레드 보그너와 캐테 보그너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들은 단칸방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하자 별거를 감행한다.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노동에 지쳐 집에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때리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려 그들이 우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는다. 한편 캐테는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단칸방을 나가 자신을 아이들과 홀로 내버려두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캐테가 외로움, 그리고 옆집에 사는 부유한 가톨릭 신자 프랑케 부인의 경멸을 견디는 사이. 프레드는 전화 교환수이자 수학 과외 교사, 라틴어 과외 교사로 일을 하고, 번 돈을 캐테에게 부치며, 남은 돈은 코냑과 슬롯머신에 쓴다. 밤에는 어느 열악한 휴게실 같은 곳의 나무 판자 아래서 술기운에 의지해 잠을 잔다. 이따금 부인과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엉엉 운다. 두 사람은 겨우 2주에 한 번씩 호텔이나 카페에서 만난다. 중간중간 캐테는 옆 방의 남녀가 섹스를 하는 소리를 아이들이 듣지 않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지금은 지독히 우울한 일요일 오후의 몇 분, 무한히 긴 몇 분이다. 기진맥진한 숨소리와 담뱃불 붙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나서 시작되는 침묵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반죽을 식탁 위에 내리치고, 가능한 한 많은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리고 다시 그것을 두드린다. 나는 사랑을 나눌 공간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백만의 남녀들을 생각해본다(89, 강조는 필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런 프레드와 캐테가 오랜만에 단둘이 외출을 하고, 네덜란드식 여관에서 사랑을 나누기는커녕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잠을 잔 뒤, 성인이 되기 직전의 소녀가 일을 도맡는 간이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지는 이야기다. 가게들은 폐허더미를 등진 채 고개만 겨우 내밀고 있으며, 성직자들은 타락했고, 신의 음성보다도 광고가 훨씬 자주 들려오는 패전국의 수도가 그 배경이다. 그래도, 프레드는 캐테와 허름한 호텔에서라도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구둣방 주인에게, 과외 학생 집의 하녀에게, 오랜만에 연락한 동창생에게 돈을 빌리고자 먼지 날리는 도시를 쏘다닌다. 그는 다행히 신부 한 명에게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하고 먼저 여관에 도착해서 캐테를 기다린다. 캐테도 프레드와의 만남을 고대했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자신의 다섯 가족에게는 단칸방 하나만을 내줬으면서 여러 개의 응접실을 가졌으며, 아이들이 자기 화장실을 쓰면 더럽게 생각해 주변을 검사하는--그로 인해 캐테에게 '물방울 공포증'을 안겨준--프랑케 부인에게 진홍색 립스틱을 외상으로 구매한다. 

 요컨대 그들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가난을 돌파할 수 없다. 캐테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도 줄곧 어느 직장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남편 프레드가 무능하다고 믿고, 자신과 아이들을 망각한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술을 마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삶을 살까 봐,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당장 감당하고 있는 삶 자체를 너무나 두려워한다. 게다가 그녀는 또 한 명의 아이를 임신하고 말았다.

 "나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더듬다 문득 얼굴을 만지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눈물로 젖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어 얼굴에서 손을 떼고 이불 속에서 그녀의 작고 단단한 손을 찾아 꽉 쥐었다. 그녀가 자기 손을 쥐도록 놔둬서 기뻤다. "빌어먹을," 그녀가 어둠속에서 말했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해요."(184, 강조는 필자)"

 "하지만 당신은 애들을 잊고 있어요. 아이들은 확실히 있고, 살아 있어요. 사실 난 애들 때문에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 네, 당신이 부러워요. 당신은 임신하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이 그냥 도망쳐 버려도 난 이해할 수 있어요. 당신은 몇 시간이고 묘지를 산책하고, 화주를 마실 돈이 없으면 울적한 기분에 취하겠지요. 당신은 슬픔에 취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우리랑 함께 있지 않으려는 거예요."(196)

 

 한편 프레드는 하룻밤 사이 끊임없이 캐테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애정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초췌하며 피로에 절어있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온 이후,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과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나머지 가장 희망적인 감정조차 절망적인 얼굴로밖에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캐테에게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을 용기조차 상실했다. 다만 캐테에게 키스해달라고 부탁한 뒤 이렇게 말한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는 게 더 행복한 거야.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끔찍한 일이야."(202)

 

 캐테는 결국 자신이 프레드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프레드 역시, 자신이 캐테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이별 통보를 차분히 받아들인다. 그의 차분함은 냉정하기 그지없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뜨거운 성질의 것이어서, 나는 그래도 모닝 커피는 함께 마셔주지 않겠냐고 부탁하는 프레드의 얼굴을 상상하다 거의 울고 싶어졌다. 캐테는 처음엔 아침식사를 거부하지만 결국 프레드와 나란히 간이식당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모두 간이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금발 소녀를 진심으로 동경한다. 나는 두 사람이 소녀의 '결혼하지 않음'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과 달리 소녀에겐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두 사람이 어째서 헤어져야 하는지, 캐테가 네 번째 아이--죽은 첫 아이들을 포함하면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와중에 어째서 프레드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별을 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실제로 완벽하게 헤어졌는지도 모호하게 처리되어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마음들이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묘사되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캐테와 프레드의 체념 어린 대화는 둘의 이별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증오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흑인 영가에서 따온 제목이다. 프레드는 화주를, 캐테는 맥주를 계속해서 들이키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지만 절망 가운데서도 삶이라는 짐을 어떻게든 져보려고, 자신의 아이들을 책임져보려고 몸부림친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헐뜯기 바쁜 부유한 성직자들보다도 성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


사족 1. 둘의 이별로 치닫는 11, 12장의 실랑이와 실랑이 사이사이에 의도적으로 삽입되어있는 드로기스트들의 광고음은 이 작품의 절정에 해당한다. 

사족 2.  내가 읽어본 중에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사실주의 소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사실주의 소설들보다도 더 감명 깊게 읽었다. 내가 튀지 않는 행색으로 끊임없이 커피를 마셔대고, 뜨거운 소시지를 망설임 없이 입 안으로 들이미는 독일의 문화를 동경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프레드와 캐테의 시점이 계속해서 뒤바뀌는데도 소설의 통일성이 전혀 해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두 사람 모두를 이해하게 되어 둘의 이별이 상징하는 수많은 바들이 너무나 씁쓸하고 성공적으로 부각되었다. 오랫동안 이 소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사족 3. 여담이지만, 정말이지 우연의 일치로 홍성광 번역가님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모르고 있었는데 예전에 구매한 ⟪도덕의 계보⟫도 이 분의 번역본이었다. (철학서 번역은 소설 번역과 달리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하다.) 어느 분야에서든 번역에 열정을 쏟으시는 분들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고된 작업인데도 인정받기가 힘들고, 비판 받지나 않으면 본전이니까. 어느 분야에서든 독자들은 신랄하니까. 진부한 마무리지만 앞으로도 좋은 독일 문학들을 계속해서 번역해주셨으면 좋겠다. 독일 문학들만의 어둠과 빛이 있고, 나는 그 둘을 모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