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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음산한 땅(2024.8)


 동쪽 나라의 사람들에게 서역 크라메타는 음산한 땅이었다. 아득한 국경 너머로는 여행은커녕 통행도 금지되어있었기에, 누군가는 그곳을 오아시스 하나 없는 사막으로, 누군가는 대륙의 모든 썩은 물이 모여 고이는 늪으로 상상했다. 확실하게 알려진 단 한 가지는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이 넓은 대륙에 고대로부터 줄곧 살아온 원주민이. 기록된 역사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본래 대륙 동녘의 비옥한 땅에 살았으나, 농사를 지을 줄 알면서도 식인 풍습을 즐기고 글자를 몰랐으며 쌀과 함께 흙을 집어먹었다. 어린이마저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있는 야만인 무리를, 바다를 건너온 왕가의 선조들이 몰아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일이었다.

 여전히 문명이 있을 리 만무한, 현재 그들의 삶의 모습과 터전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동쪽 나라의 새 여왕뿐이었다. 대대로 새로이 추대된 왕은 동맹을 맺고 있는 북쪽과 남동쪽의 나라를 방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갓 소녀의 티를 벗어 아직 호기심이 많았던 여왕이 여행단장에게 조르고 졸라 크라메타를 방문한 것이었다. 얼마 전의 혁명으로 왕정이 파괴되고 신생 공화국으로 변신한 북쪽 나라의 소식통에게서 마지막 뉴스가 전해진 지도 한 달이 넘어갔다. 왕국의 백성은 어린 여왕이 야만인의 땅에서 어떤 수난을 통과하고 있는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의 안위와 생사야말로 왕국 내 모든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공통된 화두였다.

 다행히 소식이 끊긴 지 머지않아 여왕은 크라메타에서 돌아왔다. 단, 홀홀단신으로 말이다. 단장을 포함해 그녀의 마부, 하인, 수호기사 등으로 꾸려진 여행단원은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실신한 채의 여왕만이 홀로 여위고 털 색이 얼룩덜룩한 당나귀를 타고 국경에 도달했을 뿐이다. 국경수비대의 보고에 따르면, 당나귀는 여왕을 고향에 되돌려주자마자 힘없이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고 한다. 악마에 씌인 듯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킨 뒤 눈알이 시퍼렇게 까뒤집혀진 채.

 며칠 뒤 겨우 기력을 차리고 다시 왕좌에 앉은 여왕은 자신의 여행과 단원들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다. 웃음기도, 눈물도 없이 그저 결연한 침묵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과, 특히 단장이 속한 원로회의 인사들이 여왕을 미워하게 된 것은 일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왕을 미워할 이유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녀로 알려져있던 여왕이 9개월 뒤 아이를 낳아버렸기 때문이다. 여왕은 역시나 아버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어쨌거나 왕족의 피가 섞인 아이는 놀랍게도 피부색이 노랗다 못해 누리끼리했다. 하얀 피부의 국민들은 경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