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나라의 사람들에게 서역 크라메타는 음산한 땅이었다. 아득한 국경 너머로는 여행은커녕 통행도 금지되어있었기에, 누군가는 그곳을 오아시스 하나 없는 사막으로, 누군가는 대륙의 모든 썩은 물이 모여 고이는 늪으로 상상했다. 확실하게 알려진 단 한 가지는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이 넓은 대륙에 고대로부터 줄곧 살아온 원주민이. 기록된 역사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본래 대륙 동녘의 비옥한 땅에 살았으나, 농사를 지을 줄 알면서도 식인 풍습을 즐기고 글자를 몰랐으며 쌀과 함께 흙을 집어먹었다. 어린이마저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있는 야만인 무리를, 바다를 건너온 왕가의 선조들이 몰아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일이었다.
여전히 문명이 있을 리 만무한, 현재 그들의 삶의 모습과 터전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동쪽 나라의 새 여왕뿐이었다. 대대로 새로이 추대된 왕은 동맹을 맺고 있는 북쪽과 남동쪽의 나라를 방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갓 소녀의 티를 벗어 아직 호기심이 많았던 여왕이 여행단장에게 조르고 졸라 크라메타를 방문한 것이었다. 얼마 전의 혁명으로 왕정이 파괴되고 신생 공화국으로 변신한 북쪽 나라의 소식통에게서 마지막 뉴스가 전해진 지도 한 달이 넘어갔다. 왕국의 백성은 어린 여왕이 야만인의 땅에서 어떤 수난을 통과하고 있는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의 안위와 생사야말로 왕국 내 모든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공통된 화두였다.
다행히 소식이 끊긴 지 머지않아 여왕은 크라메타에서 돌아왔다. 단, 홀홀단신으로 말이다. 단장을 포함해 그녀의 마부, 하인, 수호기사 등으로 꾸려진 여행단원은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실신한 채의 여왕만이 홀로 여위고 털 색이 얼룩덜룩한 당나귀를 타고 국경에 도달했을 뿐이다. 국경수비대의 보고에 따르면, 당나귀는 여왕을 고향에 되돌려주자마자 힘없이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고 한다. 악마에 씌인 듯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킨 뒤 눈알이 시퍼렇게 까뒤집혀진 채.
며칠 뒤 겨우 기력을 차리고 다시 왕좌에 앉은 여왕은 자신의 여행과 단원들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다. 웃음기도, 눈물도 없이 그저 결연한 침묵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과, 특히 단장이 속한 원로회의 인사들이 여왕을 미워하게 된 것은 일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왕을 미워할 이유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녀로 알려져있던 여왕이 9개월 뒤 아이를 낳아버렸기 때문이다. 여왕은 역시나 아버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어쨌거나 왕족의 피가 섞인 아이는 놀랍게도 피부색이 노랗다 못해 누리끼리했다. 하얀 피부의 국민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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