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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인물 스케치: 온마루(2023.5)


 마루는 쾰른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타국의 골목길은 아무리 익숙해지고 싶어도 언제나 낯설기만 한 미로이다. 만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루는 실시간으로 데이팅 어플을 들여다보며 마찬가지로 근처를 배회하는 여자들을 찾고 있다. 딱히 비극적이지도, 희극적이지도 않은 그 모습이 매사에 진지한 마루에게만큼은 희랍의 비극인 양, 동시에 끔찍한 희극인 양 느껴진다. 자신은 냉정하기 그지없어야 할 플라톤의 아들인데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비극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고작 성욕이라는 점이 희극이다. 마루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다. 몇 분 전 추파를 던져봤던 여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녀는 세 블럭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바에 있다. 마루는 그리로 걸음을 재촉한다. 빠르지만 무거운 발걸음이다. 그녀에게 술이라도 산다면 한 달 내로 하루는 굶어야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니, 상관있다. 아니다. 전혀 상관없다. 여러 색조의 붉은 색 벽돌이 기묘하게도 세로로 박힌 외관의 술집이다. 프로필 사진 속에서보다 얼굴이 넙데데한 여자가 마루를 맞는다. 하지만 코가 아주 귀엽게 생겼고, 가슴도 풍만한 편이다. Hallo. 여자가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마루는 미리 그녀에게 자신의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해두었다. 읽기는 잘하지만 말하기가 서툴다는 사족까지 붙여가면서. 여자는 개의치 않아 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내게서 뭘 원하는 걸까, 마루는 생각한다. 그 자신은 그녀에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역시 생각해본다. 마루는 내일 하루를 상비용 라면으로 때울 요량으로 그녀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권유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루는 여자와 키스하지 못했다. 마루가 키스를 하려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 그녀가 살짝이긴 했지만 아주 확실히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마루는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물어볼 용기도, 예의바른 문장을 순발력 있게 만들어낼 언어 능력도 없었다. 두 사람은 바를 나오자마자 헤어진다. 터덜터덜 귀가하면서 마루는 유학길에 올라서도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를 징벌하고픈 욕구와 더불어 마루의 밤이 마리보다 일곱 시간 늦게 저물어간다.


 아침을 맞은 마루는 커피콩을 그라인더에 가득 붓는다. 그러고 나서 그라인더를 무릎 사이에 꽉 끼우고는 다소 우습지만 어쩌면 정숙하고 또 경건해 보일 수도 있는 자세로 손잡이를 돌린다. 마루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하루를 깨어있는 상태로 통과해내질 못한다. 그에게 커피는 깨어있는 의식의 상징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지도교수와 오랜만에 면담을 하는 날이다. 그 누구보다도 충분히 각성되어 있어야 한다. 독일에 온 후로 마루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몇 번 만난 적이 없다. 교수는 독일어와 영어로 온갖 출판물을 내느라, 해외의 학회와 콜로키움을 다니느라, 그리고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틈틈이 챙기느라 지도학생 스무 명 중 하나인 마루를 돌봐주지 않는다. 물론 교수에게도 아끼는 학생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꼼꼼하고 세심한 지도를 제공하는 듯하지만 마루만큼은 교수의 안중 바깥이다. 적어도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루는 오늘 면담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교수가 아끼는 학생들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그는 자신의 유학생활의 성패가 오늘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마루는 커피를 연속으로 몇 모금 들이킨다. 빈속에 카페인이 들어가면서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도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먹을 수는 없다. 괜히 탈이라도 났다가 교수 앞에서 배나 움켜쥐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루는 샤워를 하면서 ‘나는 현명하다’, ‘나의 삶은 성공적이다’, ‘내가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 따위의 말이 계속해서 독일어로 반복되는 명상 영상을 듣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간다.


 지도교수의 연구실에서 허브 향기가 난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마루가 빼곡한 책꽂이를 등지고 소파에 앉는다. 지도교수가 인자한 미소를 내보인다. Wie geht es? 영어로 치면 하우 알 유, 에 해당하는 그 질문에 마루는 sehr gut, 그러니까 베리 굿, 이라고 답한다. 마루는 독일에 온 후 단 한 번도 ‘Wie geht es?’라는 질문에 ‘sehr gut’이라고 외에는 답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왜 자신의 일상이 굿-하지 않은지를 독일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굿-과 매우 멀다. 마루는 유학생활이 벌써부터 끔찍하게 느껴진다. 혼자인 것이 몹시 외로우며, 언어는 문자 그대로 장벽이고, 가끔은 책을 펼칠 힘조차 없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 비자를 연장할 일이 미리 걱정되고, 국밥이 먹고 싶고, 타지에서 몸이라도 아플까 봐 항상 근심한다. 지도교수는 아직 시작단계에 있는 마루의 프로옉트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누구의 책과 논문을 읽고 있는지, 하웁트테제는 정했는지, 지금의 연구가 어디서 기존의 연구와 차별화되는지에 대해. 마루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아침에 섭취한 카페인과 니코틴이 뱃속에서 보불전쟁을 벌인다. 마루는 일단 한국어로 생각한 뒤 한 단어, 한 단어 독일어로 번역하고 문법에 맞게 단어를 조합한다. 잘 되지 않으면 일단 한국어로 생각한 뒤 한 단어, 한 단어 영어로 번역하고 문법에 맞게 단어를 조합한 뒤 다시 한 단어, 한 단어 독일어로 번역하고 문법에 맞게 단어를 조합한다. 반드시 써야 하지만 잘 모르겠는 단어가 있으면, 일단 그 뜻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독일어 식으로 바꾸어 발음해본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지도교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는 방금 한 말을 다시 반복해달라고 마루에게 부탁한다. 마루는 임의로 독일어 식으로 바꿔 발음한 영어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반복하면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지도교수는 해당 단어를 독일어에 원래 있는 단어로 바꾸어 대답한다. 마루는 그 독일어 단어를 문헌에서 본 적이 있음을 상기하고, 자신이 교정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지도교수는 다시 인자한 미소를 내보인다. 그는 마루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독일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마루는 끝까지 자신의 실수에 집착한다. 집착해서는 남은 면담 시간을 온전한 정신으로 보내지 못한다. 면담을 마친, 망친 마루는 마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받고자 한다. 안 그래도 몇 없는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해졌다. 마루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긋지긋한 성격을 가진 소꿉친구 유마리, 단 한 명뿐이다. 어쩌면 마루의 유학생활의 성패에 대해서조차 오직 마리만이 궁금해할 수도 있다. 변호사가 될 줄 알았던 똑똑한 아들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선언한 뒤로, 마루의 부모님은 더 이상 그를 응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멋들어지게, 보란 듯이, 모두가 이름을 알 만한 대학에 임용이 되어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부모님께 증명해보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지도 않다. 세상은 철학에 대해 수요를 갖고 있 지 않고, 마루에게는 높은 확률로 빈곤이 예정되어있다. 그리고 백 퍼센트의 확률로 마루는 쓸쓸하다. 다만 마리가 반드시 전화를 받아줄 뿐이다. 여보세요?


 라인 강가의 공원에는 녹지 위로 뜨문뜨문 풍성한 나무들이 서있다. 그 사이를 청자켓에 스카프를 맨 마루가 걷고 있다. 춥지는 않지만 바람이 살짝 분다. 그래도 낮 햇살의 온기가 바람에 섞여 딱 좋은 날씨다. 도서관에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 오전에 논문 한 편을 읽었으니 잠깐 쉬어도 되겠지, 마루는 생각한다. 오랜만에 우울하지도 않다. 물론 마음 쓰이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루는 마리의 문자를 무시한 뒤 가벼운 감기 같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십 분 정도 가벼운 산책을 한 다음 고동색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마루가 마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다녔을 무렵이었다. 둘은 등하굣길이 완벽히 겹쳤기 때문에 언제든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루는 한 번도 마리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친구와도, 부모님과도…… 심심하겠다, 저 애는……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오히려 마리였다. 어느 날, 마루는 같은 반의 아이와 교문을 나서면서 여느 때처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국자에서 볼록한 모양새로 떨어져나온 설탕 반죽을 전부 눌러내 만드는 달고나와 반만 눌러내 만드는 달고나빵 중 어느 쪽의 양이 더 많은지가 그날의 화제. 마루의 주장은 국자의 크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설탕 반죽의 양 또한 일정하며, 따라서 달고나와 달고나빵 사이에는 양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의 초등학생 판본). 반면 친구의 주장은 한눈에 봐도 달고나빵이 훨씬 부풀어있다는 것. 미래에 철학도로 자라날 마루가 최초로 맞닥뜨린 이성과 감각 사이의 충돌이었다. 마루는 친구를 설득하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이 쥔 달고나와 친구가 쥔 달고나빵 사이의 명백한 부피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설득의 내내 의식된 또 한 가지 것은 바로 뒤에서 따라붙은 마리의 시선이었다. 마리는 마루가 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계속 마루의 뒤를 따라걷는 듯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빨간 불을 앞둔 횡단보도 앞에서 사라졌다. 마리의 몸이 마루의 몸과 나란히 맞추어진 그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양이 문제인 거면, 두 개를 사 먹으면 되잖아?”

 “뭐?”

 “결국 더 많이 먹고 싶은 거잖아.”

 마리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고, 마리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마루는 바로 그것들을 이유로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야, 한 개 살 돈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그럼 내가 한 개 더 사줄게.”

 마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용돈 남은 거 많아, 한 개 더 사줄게.”

 뭐하는 애지,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마리가 말했다. 

 “대신 나랑 같이 먹어줘.”

 마리가 어딘가 재수없다는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달고나를 공짜로 얻어먹을 생각에 마루는 들떠버렸다. 둘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하교하는 아이들을 한창 맞은 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별칭 ‘뽑기 아저씨’의 앞에 섰다. 주머니가 아니라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는 마리를 보면서 마루는 얘는 벌써 어른이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좋겠다, 돈 많아서.”

 “쓸 일도, 쓸 시간도 없으니까.”

 “왜 시간이 없는데?”

 “매일 피아노를 연습해야 하거든.”

 “그럼 오늘은 왜 안 하는데?”

 “……”

 마리가 대답하는 대신 울먹이기 시작하자 마루는 당황하고 말았다.

 “야, 갑자기 왜 그래…….”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

 “담임? 우리 담임도 엄청 무섭게 생겼어, 고릴라 같이 생겨가지고서는……”

 “아니, 내 피아노 선생님 말이야. 매일 혼을 내셔. 얼굴을 찡그리고. 그런데 엄마 아빠 앞에서는 활짝 웃는다? 그래서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줘.”

 마리는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자마자 그것을 소매로 바로 닦았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울면 달래주기라도 하지, 마루는 더더욱 어쩔 줄 몰라하다가, 마리의 기분을 전환할 만한 일을 떠올렸다.

 “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마루는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은 뒤 두 손을 맞대고 미친듯이 비비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열이 오르고 습기 같은 것이 차올랐다. 이윽고 회색의 때가 여럿이 짤막하게 일었다. 마루는 그것이 때인줄도 모르고 마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 손으로 지우개똥 만들 줄 안다.”

 “우와, 신기해.”

 마리가 활짝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주던 방울들이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마루는 자신의 재주가 먹혀들어간 것 같아 신이 났다. 그렇게 온기로 가득한 말 한 마디를 자신도 모르는 새 마리에게 건네게 되었다.

 “누가 널 못 믿겠다고 하면 또 만들어줄게.”

 때마침 마루의 곁에 상처 난 새 한 마리가 다가온다. 마루는 철저히 도시에서 자라나 자연물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종을 알 수 없는 그 새는 어딘가에 부딪힌 듯 붉어진 피부를 내놓은 채 뒤뚱거리고 있다. 한 쪽 다리도 저는 듯하다. 마루는 회상을 멈추고는 스카프를 풀어 후후 분 뒤 새의 몸뚱아리에 감아준다. 공원의 관리과에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도 미친다.


 쾰른의 낮, 마루가 힘차게 카페의 문을 당겨 연다. 오늘 아침, 그의 지도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 세미나와 관련해 제출한 논평문이 무척 훌륭해 다른 학생들에게 공유해도 괜찮겠냐는 내용이었다. 마루는 책상에 앉아 무심코 열어본 메일을 읽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침대에 몸을 던져 치마 입은 천사의 무늬를 눈밭에 새기듯 팔다리를 기쁘게 흔들어댔다.  평소 친해지고 싶었던 루카스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어눌한 발음을 놀리던 제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신청해둔 장학금의 서류심사에 합격한 것이다. 면접이 서울에서 이루어져 급하게 귀국해야 한다. 떨어질 경우 사비만 날리는 셈이 되지만, 오늘만큼은 비관적인 생각에 몸담고 싶지 않다. 마루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설탕을 두 조각 챙겨줄 수 있겠냐는 말을 덧붙인 뒤, 무려 2유로짜리 동전을 팁을 넣는 유리병 속으로 떨어뜨린다. 커피를 받고 자리에 가앉은 마루는 놀랍게도 마리를 생각한다. 마루는 여태껏 자신을 응원해준 데 대해 마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나, 한국 가게 됐어. 마리의 메신저 알람은 여전히 마루를 위해 켜져있다. 십 분 내로 답장이 온다. 어디서 지내? 마루가 답한다. 아마 본가에서? 또 싸우기만 하겠지만. 모든 사정을 아는 마리가 제안한다. 정 불편하면 우리집에서 지낼래? 마루는 마리의 호의가 싫지 않고, 호텔을 예약할 돈을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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