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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몬 드 보부아르, <위기의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 손장순 옮김, ⟪위기의 여자(La Femme Rompue)⟫, 문예출판사, 2020.

"타인의 연애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거랍니다."(121)


 종속의 위험과 슬픔에 대한 소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마음을 너무 쓰게 되"어, "상대방이 얼굴을 한번 찌푸리거나 하품만 해도 벌써 불안해"지는 유약한 주부 모니크는 남편 모리스와 두 딸 콜레트, 뤼시엔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충실한 그야말로 현모양처다(49). 콜레트는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대신 이른 결혼을 하고, 뤼시엔은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모니크는 40대에 들어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데만 마음을 쏟아도 되는 여유를 누린다. 남편 모리스가 변호사 노엘리와 내연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로는 "살고 있는 아파트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집 안의 물건들도 모두 가짜 같아만 보인다."(52)

 자기의 삶을 익숙하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지탱해오던 맥락들이 파괴된 데 대해 모니크는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나 "만일 내가 투쟁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에 대해서며 왜 투쟁하면 안 되는지를 모르고 있"는 그녀는 모리스를 떠나기는커녕, 그의 우유부단한 이중생활을 용인한다(54-55).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마다 그것이 남편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하면서, 온전히 화를 내지도 못하는 채 그녀는 가부장제 하에서 그저 모리스의 아내로서만 규정되어 있는 자신의 존재를 점차 소모시킨다. 모니크에게는 다른 정체성이라는 것이, "늘 곁에 있는 존재인 동시에 부담주지 않는 존재가 되기" 외의 과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127). 그런데 그 과제에 실패한 지금, 모니크는 절망한다.

 모리스의 인정과 애정이 없이는 자기의 가치를 확신할 수 없는 모니크는 어째서 자신이 노엘리에게 '밀렸는지', 그 원인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과는 정반대로 "딸의 이익을 위해 염려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편리하게 살고 있음이 분명"한 노엘리는 이기적인 데다 천박한 취향을 가진 속물이다(90). 그래서 모니크는 왜 자신보다 열등한 노엘리에게 남편이 매력을 느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모니크는 모리스보다 노엘리를 더 깊이 원망하며, 비난의 화살은 부정한 남편이 아닌 노엘리의 인성을 향한다. 그리고 노엘리를 향하지 않을 때에는 자신을 향한다. "남편은 왜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까?"(116)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숱한 자기비판을 통과하고 고민 상담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내 문제는 아니며 내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깨닫는다(117).

 요컨대 모니크는 계속해서 모리스가 바람이 난 이유를 찾고, 노엘리와 자신이 각각 지닌 장단을 비교하며 심지어는 필상학자에게 성품 의뢰까지 맡기지만, 가정의 파탄은 끝까지 순전히 비합리적인 사건으로 남는다. 모니크의 이성은 그 본질상 비이성적인 것인 진실에 다가가는 데 무능하며, 타인의 이성은 그녀의 것이 아니기에 무의미하다. '일반론'을 말하는 뤼시엔에게 모니크는 외친다. "통계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하게 된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194)

 모니크의 이 외침은 인간이 지닌 자유의 무자비함을 알려온다. 모니크는 친구 이자벨의 조언대로 남편의 욕망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릴 수 있다. 아니면 딸 뤼시엔처럼 기존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새로운 생활세계를 구축하는 도전에 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제3자들의 선택은 그들만의 선택이며, 모니크의 선택과는 완벽하게 독립적이다. 모니크는 부정한 남편의 곁을 지키는 수치심과 과거 전체를 자신에게서 도려내야만 하는 고통 사이에서 무엇을 택하든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심지어는 모리스와 노엘리에게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