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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구병모,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arte, 2020. 스포일러가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된 구병모의 중편소설. 지하철역 안에서 꽃과 함께 팔리고 있던 것을 냉큼 집었다. 표지가 찢어지고 노출된 부분 모두에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오랜만에 찜질방에 가는 길이었고, 나무 베개 따위를 베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찜질방에 젊은 사람은 나와 애인뿐이었다. 식당의 불은 꺼져 있었으며, 코로나 이후 폐쇄된 듯한 사우나가 몇 개 되었다. 당연히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조금 쓸쓸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목욕탕 내부 평상에서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밝았고, 어렸을 때부터 줄곧 '때밀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통용되고 있는 것 같은 '세신'이란 단어가 신기했으며,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얼음을 가득 넣어 만들어주신 냉녹차가 시원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은 문신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다. 당해낼 수 없는 악 앞에서 무력한 이들을 문신으로 새겨진 무언가가 지켜준다는 것이 서사의 골자다. '시미'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이 어색해 하면서도 타투 숍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문 모르게 죽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두 이야기 사이의 연결지점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이 유발된다. 저 시체가 곧 문신-수호자에 의해 복수 당하는 악인들의 것임은 소설의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그때까지의 서스펜스와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마지막으로 그 시선을 유치하지 않게 체화하는 문장들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는데, 내가 절대악이나 그와 비슷한 무엇인가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선악의 구도가 명확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권선징악의 테마로부터 별다른 쾌감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윤리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악을 절대악으로 치부하는 데 얽힌 어려움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는 성격장애와 고전적인 악덕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한 발표를 접했는데, 정신질환이 그 자체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아닐 때 그리고 아니어야 할 때 그로 인한 악덕에 대해서는 어떤 도덕적 평가를 내려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결정의 원인이 유전이든 원자 간의 충돌이든 결정론 일반과 대치되는, A와 not A 중 아무거나 고를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행위에 대한 이해와 정당화는 구분되며, 숙명 하에서도 도덕적 책임은 성립한다고 생각하기에 악 자체의 나쁨을 상대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해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절대악이 내게 재미없고 인간학적 성찰을 결여한 소재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절대악이 몇 년 전부터 한국문학의 동네북이 된 50-60대 중년 남성이라면 더더욱 시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