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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셰익스피어,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우리 옮김, ⟪맥베스⟫, 더클래식, 2019, 모든 강조는 필자.

 


 잠의 모티프가 서사를 관통한다.

 처음에 맥베스는 뛰어난 군인이자 충성심의 화신으로만 비추어진다. 적어도 세 마녀들이 그에게 왕이 될 운명을 계시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이후로 독자는 "별들이여, 빛을 감추어라! / 이 검고 깊은 야망을 보지 마라."고 말하는 맥베스를 만나게 된다(37). 그러나 맥베스는 성왕을 암살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끔찍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주저한다. 즉 그에게는 야심과 더불어 양심이 아직 살아있다. 결국 계획을 단념하기로 생각한 그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다.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의 '비겁함'과 남자답지 못함을 꾸짖는다.

 부인의 책망과 자기 안의 야심을 못 이겨 결국 일을 저지른 맥베스가 말한다.

내 생각엔 누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소. / "더 이상 잠들지 못할 것이다! /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라고. / 그 순진한 잠을. / 엉클어진 근심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을. / 매일의 삶을 마무리시키는 잠을. /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씻어주고, / 상처 입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 대자연이 주는 최고의 음식이자, / 인생의 향연에서 가장 영양이 풍부한 잠을. (65)

저 위대한 냅튠의 모든 바닷물을 쓴데도 / 내 손에 묻은 피가 깨끗이 씻길까? / 아니다, 내 손이 오히려 그 무한한 바닷물을 / 핏빛으로 물들여, 푸른 바다를 붉게 바꿔 놓겠지.(67)

 이에 레이디 맥베스는 "잠든 자와 죽은 자는 / 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맥베스와 달리 잠을 생명의 동력이 아닌 죽음 및 허상과, 즉 비실재 일반과 동일시해버린다(67). 암살의 이전에는 망설임에, 이후에는 후회에 짐어삼켜진 맥베스와 달리 레이디 맥베스는 직선적인 추진력의 육화 그 자체다. 그녀는 잠을 경멸한다. 눈을 감은 채, 불안한 활력으로 가득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문자 그대로 잠재우는 시간을 경멸한다. 잠은 욕망에 따라 실재를 형성하는 모든 활동을 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베스가 그의 이성을 뒤흔드는 환영들을 보기 시작하자 사정은 달라진다. 남편을 위로하는 부인의 말은 "당신께는 만물의 자양분인 잠이 부족해요."이다(118).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장면을 기점으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태도가 180도 변화한다는 점이다. 맥베스는 "이미 피바다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으니, / [...] / 앞뒤 가릴 것 없이 행동해야겠소."라고 말한 뒤 실제로 폭군이 되어버린다(118, cf. "나는 이제 공포의 맛도 거의 잊어버렸다."(187)). 반면 그의 부인은--암살 당시 맥베스에게 얼른 손을 씻어버리라 말했던 그녀가--잠든 상태로 침대를 떠나 강박적으로 손을 비비며 걸어다니는 광기에 휩싸인다. 몽유 상태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온갖 아라비아의 향수를 다 써도 이 작은 손을 다시는 향기롭게 만들지는 못하리라."(172)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러 가요, 자러 가요, 자러 가요(To bed, to bed, to bed)."이다(173).

 ⟪맥베스⟫에서 잠은 손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의 특권이다. 돌이킬 수 없는 악을 행한 적이 없는 자만이 잠으로써 삶의 흐름을 갱신할 수 있는 것이다. 갱신이야말로 죄책감에 짓눌린 인간에게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철학에서든 심리학에서든 흔히 죄책감은 과거와 관련된, 즉 뒤돌아보는(backward-looking) 감정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죄책감의 가장 무시무시한 효력은 사실 미래의 봉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잠을 통과한 자만이 미래를 산다. 하지만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고, 그의 부인은 살아서는 온전히 잠에 들 수 없다. 그렇기에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