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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문학동네, 2021.

산만하고 황홀하다.

 오늘날의 언어는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에, 즉 개별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졌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게 되었다. 이제 어떤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깔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독일어에 서투른 사람이 독일인뿐인 파티에 간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주위의 환경에 대해서도 정확한 단어를 골라 표현할 수가 없다. 반면 음악은 특수한 언어에 구애되지 않는 매체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사이도 연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악이 지시할 수 있는 의미의 범위는 무한하게 넓다. 따라서 음악에 의한 소통은 언어에 의한 소통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실패한다. 결국 가장 보편적인 것은 죽음이다. 죽음만이 언어의 매개 없이도 단일하게 이해된다. 음악은 죽음의 보편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실마리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