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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워크룸프레스, 2021.

"그것은, 속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에도, 가계도를, 갖지 않는다, 여기저기에, 있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물의, 안에, 흙의, 위에, 안에, 밑에, 공중에, 그것은, 늘, 홀로 지냄, 이주민, 외톨이, 그것은, 그러한 사람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이가 없다, 그 정도로, 변덕맞다, 자만, 특이한 버릇, 제멋대로, 그 사람의, 바리케이드 없는, 순응하지 않음, 사회적으로 보아, 무가치, 그것이, 결국, 지독한 냄새가 난다, 말 그대로, 그것은, 흑사병으로 물든다, 모든 것을, 독한, 냄새로, 확실한 비공식, 기록, ⟪황금전설⟫에, 글자 그대로, 꾸미지 않고, 그렇게 쓰여 있다, 그에 더해, 도울 수도 없는, 그, 흐트러진, 몸, 이 존재의, 가 제시된다, 만들 수 없는, 개념은, 만들 수 없다, 이상적 모습은, 만들 수 없다, 이긴 하지만, 화가, 조각가, 시인, 그 밖의 사람들도, 모두, 시도해 봤다, 만들 수 없는..."(37)

연희동 '그리스마스'에서 S언니를 기다리며.

 한 번역자가 카나리아 제도에 잠시 머물면서 안나 두덴의 ⟪알파벳의 상처⟫를 일본어로 옮긴다. 그러나 피부는 가렵고, 빵은 퍽퍽하며 바나나밭이 자꾸만 음침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런 온갖 이유로 번역 작업은 녹록치 않다. 마침내 원고를 어찌저찌 완성했더니, 이야기 속의 기사들이 우체국에 가는 길을 막아설 뿐만 아니라 역자를 날카로운 무기로 공격해댄다. 피 흘리는 역자는 하는 수 없이 섬의 주민들이 가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던 바다 쪽으로 내달려간다.

 번역의 어려움과 관련된 초중반부의 서사와 마지막 (성 게오르크들과의) 긴박한 경주로 이루어진 서사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데다, 분량도 체감상 9:1 정도로 몹시 불균형적이어서 구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한 구성을 정당화해줄 만한 요소도 별로 없다. 그런 이유로 잘 쓰인 소설이라 평하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번역은 어째서 고된가'라는 질문에 흥미로운 답들을 던져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① 외국어로 옮겼을 때, 원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에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뒤 말에 탄 중세 기사의 모습을 떠올려 봤는데 풀이해서 쓴 단어들은 내가 떠올린 그 모습을 순식간에 분해했다."(28)

② 결코 객관적이 될 수 없으며 특정한 인물의 관점을 취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 부당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까 봐 무섭다. 지금 작업하는 소설을 예로 들면, 나는 성 게오르크도 아니고 성 게오르크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마지막에는 하는 수 없이 내가 용을 무찔러야 하지 않나. 아니면 공주가 돼서 "몸에서 나온 녹이다[자업자득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내게서 나온 '녹'에 해당하는 동물을 내가 죽이든가 영웅이 죽이게 해야 하고 죽임의 원인을 제공한 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멈춰 서 있든가. [...] 정말이지 번역은 내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번역을 완성하고 싶지 않다. 완성하고 싶지도 않고 당연히 도중에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질질 끌면서 하는 것 외에는 묘안이 없다."(44-45)

③ 번역의 목적이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아니고, 적어도 작가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실감은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인 것을 다시 던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디를 향해 무엇을 던지고 있는지 잘 모를 뿐이었다."(48)

④ 기계적인 작업이 아닌, 또 다른 창작이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건[원본이 없을 때조차, 원본이 아닌 번역본이라는 사실] 누구나 바로 알 수 있어요. 번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와 같거든요. 뭔가 후두두 돌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 드니까 알 수 있어요."(52)

 저 "돌멩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 또한 언젠가 번역 일을 맡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이 책에 대한 재평가를 유보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