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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소설

한유주, <연대기>

한유주, <연대기>, 문학과 지성사, 2018

 어떤 것이, 누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우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란 서글픈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투명한 인간이 아닌 이상 존재는 존재만으로 쉽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증명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유주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그 당연한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며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실을 애도하려고도 한다. "나는 있다. 내가 있다(<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 157)" 또는 "네가 있다[또는, 있었다](<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 206>)"라고 선언하는 것이 이 소설들의 목표이다. 자신을 지우려고 하는 세계에 맞서 투명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연대기>에서 존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선언된다. <그해 여름 우리는>은 습관적인 자살 충동을 교집합으로 가지고 있는 네 젊은이들의 공동생활을 그린다. 이들은 죽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에서는 타인과의 접촉이--유쾌한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생을 유지시켜준다. <식물의 이름>은 내가 가장 좋게 읽은 작품이었는데,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유일한 존재의 가능성인 두 여자--사실은 동일인물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들)은 아무리 작은 알갱이라 할지라도 사물의 개수를 세는 일에 집착하는데, 개수를 세기 위해서는 개수를 셈 당하는 존재자의 개별성이, 나아가 다른 존재자들과의 차이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고유한 자기동일성을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은 죽음의 공포를 맛보고 있는 이의 영원과도 같은 순간을 묘사한다. 기억, 공포, 공포 속에서조차 기억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그리고 그 의무감이 전제하는 삶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다.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의 주인공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유지함으로써 살아간다. <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는 호명으로써 '너'의 존재를 밝히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집에서 가장 끈질기고 절실하게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라는 존재자의 존재이다. <한탄>과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는 글을 써야 하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어 계속해서 지워내기만 하는 소설가의 내면을 그린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삶을 내맡기는 채 그 어떤 체험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소설의 소재로서만 여기는, 소설가의 자기착취가 생생히 드러나있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한탄>, 162)"는 문장이 사실상 이 책 전체의 파토스를 대변한다. 작가는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자인데, 그가 글을 쓸 수가 없다--이것은 그에게 있어 죽음과 유사한 위기이다.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언제나,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227)" 스스로를 계속해서 착취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서사도, 사상도 아닌 말투다. 가끔씩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이미 말투에는 중독되어있다.

 글 자체와는 무관한 부분일 수 있지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이 완벽하다. 나도 언젠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소설집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이루기가 너무 어려운 꿈인 것 같아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