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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비 오는 날, 생의 조각들(2017.5)

 2017년이면 내가 학부 4학년을 통과하고 있었을 때구나.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하면서 꿈을 키웠던 시절의 단편. '모리돈부리'라는 덮밥집에서 사케동을 먹으면서 구상했던 기억이 난다. 언어에 대한 감각, 이를테면 콤마를 어디에 찍는 것이 심미적일지에 대한 관점이 지금과 달라 신기하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 올리는 게 적합해 보인다.


 하늘은 남색이고 육지는 따분하다. 미국 중서부의 어느 대형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은 이전부터 셀 수 없이 사온 물건을 또 쥐고 또 담고 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일년 전과 마찬가지로 햄과 감자칩과 사과 알이 사람들의 봉지 속에서 등을 동그랗게 만 채로 웅크렸다. 계산대 앞의 캐시어는 표정도 없이 똑같은 행위를 몇백 번째 반복했다.

 마트 옆의 1층짜리 상가건물도 따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17살의 소년이 일하는 패스트푸드점 하나, 일본인 부부가 3년째 운영 중인 덮밥 집 하나, 얼마 전 문을 닫고 새 임대인을 찾고 있는 카페 하나, 마지막으로 주인이 제 시간에 가게를 연 적이 없는 꽃집 하나가 자리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었다. 네 가게가 동시에 불이 켜진 적은 정말 드물었다. 언제나 이빨이 빠진 것처럼 한 두 개의 점포는 캄캄했고 밤이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어둠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슈퍼마켓은 퇴근 길에 맥없이 군것질거리를 사러 온 손님들로 포화되었으나 상가는 한산했다. 패스트푸드점은 밝은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손님이 없었다. 소년은 저녁에 들어 바닥만 세 번을 쓸었다. 카페는 오늘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Delicious Coffee and Doughnuts'라고 쓰인 네온사인은 필기체의 수려한 곡선이 무안하도록 계속 불이 꺼진 상태였다. 꽃집 주인은 일찍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마지막으로 덮밥 집의 요리사는 탁자를 닦는 부인을 뒤로 하고 잠깐 바깥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요리사는 처마 밑으로 달려갔지만, 다시 입에 문 담배는 그 짧은 사이에 조금 눅눅해져 있었다. 불 하나가 바닥에 던져져 식어갔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딸랑딸랑 하고 나는 종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측은하게 울려 퍼졌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슈퍼마켓의 출구에서 주차장을 앞에 두고 우왕좌왕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차로 뛰어가거나, 실내로 다시 들어가서 우산을 사고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대개 선택지는 이 둘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주차장에 등장한 한 남자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예외였다. 도로 한복판에 있어 인가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대형슈퍼마켓까지 차도 없이 걸어왔으며, 비를 맞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고, 슈퍼마켓이 아니라 상가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베레모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비를 막는 데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지, 얼굴 곳곳에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갈색의 가죽 자켓은 지퍼가 반만 올라가서 안으로 허름한 면티가 훤히 보였다. 옷들은 빗속에서 남자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기이하게도 자켓은 왼쪽 주머니만 두둑해서 그쪽으로 상체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아래로는 베이지색 바지가 다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매끈했으나 짓궂은 날씨에 의해 얼룩져갔다. 몇 년을 신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운동화는 흙탕물로 더러워지는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성큼성큼, 그러나 미묘한 여유를 갖고 움직였다. 남자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양쪽으로 축 늘어진 두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어두운 색의 외투에 진짜 어둠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앞뒤로 흔들리는 흰 손의 모양새가 최면술사의 진자 같았다.

 남자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배를 어루만졌다. 좌우로 두어 번 문지르다가 불룩한 왼쪽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질 것 같자, 재빨리 손을 떼고 자켓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얼마간 더 걷다가 상가 앞에서 멈춘 남자는 네 칸 중 불이 켜진 두 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님의 인기척에 패스트푸드점의 소년은 쓰레받기를 덜렁덜렁 손에 든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덮밥집의 주인도 걸레질에 제동이 걸렸다. 거기에 물을 마시고 돌아온 요리사까지 가세해서 바깥의 남자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세 쌍이나 되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남자는 일본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옆 가게의 소년은 청소도구를 던지고 빈 자리에 앉아버렸다.

 “여기서 가장 비싼 메뉴로 주세요.”

 덮밥집에 들어온 남자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한 말이었다. 그의 베레모와 가죽자켓의 끝자락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기 전까지 나무바닥에 남색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요리사는 저녁의 유일한 손님이 예기치 못한 요구를 해오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어깨를 으쓱, 들었다 내리면서 특이한 손님이겠거니 생각하였다. 주인은 다른 손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일회용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을 갖다 주면서, 음료는 원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벽에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맥주 포스터를 가리켰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어보았다. 왼손으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불룩한 것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은 가만히 있다가도 꾸물거렸고, 맥주를 받았을 때 잠깐 빠졌다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맥주는 유난히 노랬으며 거품의 층이 두꺼웠다. 잔을 입술에 갖다 대고 기울이자 혓바닥에 음료가 달라붙으면서 살짝 짠맛이 났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는 남자의 눈을 감겼다. 왼손이 아직도 부산스럽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머리칼에 남아있던 빗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르다가 턱에서 가슴으로 떨어졌다. 그런 그에게 주인은

 “연어 괜찮아요?”

 라는 질문을 해왔다. 남자는 제대로 듣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번엔 눈을 부릅뜬 채로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주문이 완료되자 남자의 등 뒤로 개방된 주방이 분주해졌다. 요리사는 삼십 분 전에 잘라놓았던 연어 뱃살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연분홍색의 두툼한 생선조각들이 쟁반 위에 늘어져 있었다. 음식 위에 씌워진 랩이 벗겨지면서 질서정연했던 연어들의 위치가 조금씩 틀어졌다. 요리사는 생선이 너무 차갑지는 않은지 손가락으로 한 번씩 찔러보았다. 온도가 적당하자 다음으로는 밥솥을 열었다. 허연 쌀알들이 드러나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는 나무주걱으로 밥을 두어 번 퍼서, 빨간색의 도자 밥그릇이 3분의 2쯤 차도록 담았다. 밥솥은 바로 닫혔지만 그릇에서 여전히 김이 났다. 

 연어뱃살이 한 조각씩 밥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얀 배경 위로 붉은 것들이 쌓여나갔다. 뜨끈한 밥은 생선의 차가운 피부를 만나자 더 이상 증기를 올려 보내지 않았다. 요리사는 중지와 엄지로 김가루를 집어서 그릇에 뿌렸고, 그 동안 주인이 구석의 락앤락더미에서 무순을 서너 줄기 꺼내와 그 위에 얹었다. 마지막으로 와사비가 올라갔다.

 이윽고 연어뱃살덮밥은 주방에서 멀지 않은 남자의 테이블로 옮겨졌다. 여주인이 그릇을 내려놓자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갓 만들어진 요리 앞에서 남자는 왼손을 뺐다. 그는 포크가 필요하냐는 여주인의 질문에 고개를 내저은 뒤, 요리를 쳐다봤다. 새빨간 그릇에 몸통이 마른 밥알들과 냉장고에서 잠시 얼려 있던 생선 몇 점이 있었다. 이것이 이 식당에서 가장 비싼 요리였다. 오른손으로 수저를 들려 하는데 여주인이 다시 돌아와 간장 종지를 갖고 왔다. “같이 드세요” 하는 말이 들렸고 곧 발걸음소리가 멀어졌다.

 남자는 젓가락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숟가락을 쥐었다. 와사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아내와 초밥 집에 갔을 때 매운 맛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와사비를 떼어내 통째로 간장종지에 떨어뜨렸고 더 이상 간장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초록색의 와사비 자국이 띄엄띄엄 김가루 위에 남긴 했지만 그래도 요리는 푸짐해 보였다.

 플라스틱 숟가락의 흰색은 쌀밥의 흰색과 달랐다. 숟가락은 살짝 어둡고 퍼런 빛이 돌았지만, 밥알은 빨간 공기 안에 있어서 그런지 불그스름한 데다가 노란 기까지 내보였다. 그 차이에 미묘한 쾌락을 느끼면서 남자가 연어뱃살을 뒤적여보았다. 살덩이들이 까뒤집어지면서 살결의 희끄무레한 줄무늬가 춤을 췄다. 생선 지느러미처럼 유연하고 느릿느릿한 움직임이었다. 남자는 거기서 느릿느릿한 장송곡을 떠올렸다. 송가를 들으면서 움찔거리던 어깨의 곡선을 생각했다. 모두가 그저 부드러운 울상을 짓는 바람에, 실은 한없이 진동해야 할 텐데도 같이 부드러운 척, 가만히 굽어 있던 자신의 어깨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부적절하게 슬픔을 넘겼던 날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장 줄무늬가 가장 굵은 연어를 먹어버렸다. 김가루가 무순 두 개와 어질러진 채 그의 입 속으로 따라갔다.

 여덟 점 중 첫 번째 조각이었다. 그는 왼손을 주머니 안으로 넣었고, 주머니가 다시 불룩해졌다. 아내의 장례식 때 처음으로 송가라는 장르의 노래를 들었었다. 무거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내를 생각하면서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렇게 슬픈 노래도 작곡가가 작곡을 마쳤을 무렵에는 기뻐했으리라고 생각하니 멜로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때 흰 면장갑이 귀에 닿았던 촉감을 잊을 수 없었다. 매끈한 장갑이었는데도 수천 개의 작은 돌기가 나있는 것처럼 귓바퀴가 따가웠다. 송가는 아랑곳 않고 더욱 우렁차게 틀어져 나왔다.

 남자는 곧 두 번째 연어뱃살을 밥과 함께 퍼먹었다. 살짝 느끼한 맛이 입안에 번지면서 입 천장과 치아 안쪽이 맨들맨들해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키스를 해주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붉은 것이 입안에서 이리저리 헤엄을 치는 듯했다. 그렇게 황홀해 하다가도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당장, 두 번째 입을 삼켜버렸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7살 때 학교의 파티에서였다. 미성년자도 마실 수 있는 싸구려 샴페인을 손에 들고 친구들과 떠들어대던 중, 멀리서 원피스를 입은 아내가 걸어왔었다. 늘 머리를 묶은 채로 공부만 하던 소녀였는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입술을 칠한 그녀에게서 갑자기 무구한 광채가 났다. 그녀의 구두가 바닥과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남자에게 주문 같은 것을 걸었다. 견딜 수 없이 싱그러워진 탓에 그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여자는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는지, 남자에게 가벼운 인사만을 남기고 홀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남자는 곧바로 들고 있던 잔을 비우고 샴페인을 몇 번이나 더 받아 마셨고, 핑거푸드도 닥치는 대로 입 안에 구겨 넣어봤지만 여전히 허해서, 파티가 끝나기 전에 여자의 앞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향하던 그 발걸음의 박자, 진중하지만 이따금씩 엇박이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던 리듬…… 남자는 그 길과 관련된 어떤 것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예감하면서 여자에게 춤을 제안했다. 여자는 그에 응하면서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낯설어서 더욱 따뜻하고 또 멀어지고 싶지 않은 열기가 서로의 손을 감쌌다. 둘은 파티가 끝날 무렵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은 부르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미끈할 수 있으며 립스틱은 아무리 진하게 발렸어도 달콤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그녀의 립스틱 색깔도 또렷이 기억났다. 새빨갛지 않고 딱 은은하게 붉은 빛깔이었다. 조명 아래에서 몸을 살랑살랑 움직이면 입술의 섬세한 골 사이사이가 반짝거리다가, 어슴푸레하게 붉다가, 다시 반짝이기를 반복했었다.

 남자는 당시의 그 빛깔이 눈앞에 놓인 연어의 색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생선조각이 밥과 함께 숟가락 위로 올라갔다. 처음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앞니로 한 번 내려치니 그제야 풍부한 감각이 밀려들어왔다. 이내 어금니로 뱃살을 짓이길 때마다 풍미는 더 진해졌다. 비싼 향수가 공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연어의 자극이 입안을 잠식했다.

 남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사가 끝나고 그녀와 입을 맞추던 중 콧속으로 훅, 들어왔었던 화이트 머스크 향은 지금도, 화장품점이라도 지나면 바로 맡아낼 수 있었다. 아내는 결혼 직후 대학에 진학했으며, 남자는 구두 가게에 취직이 되어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둘은 여자의 학교 근처에서 원베드룸 아파트를 구해 신혼살림을 차렸다. 좁아도 모든 것이 있는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아내의 운동화가 언제나 자신의 구두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둘은 일이 많아서 바쁜 중에도 종종 부엌에서 함께 파이를 구워먹었고, 기념일엔 와인 잔을 기울였다. 언제는 들뜬 나머지 건배를 너무 힘차게 해서 잔이 깨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파이는 인스턴트 팬케이크로 대체되었다. 와인 병은 오랜 시간 베란다 구석에서 차가운 몸을 웅크려야 했다. 남자가 아내의 생일을 잊고, 여자는 결혼기념일을 놓친 해도 있었다. 서로를 꼭 껴안고 있을 때면 따스하고 아늑했던 침대는 점점 좁아져서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바빴다. 아침에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일어나곤 했다. 아내는 1인분의 샐러드를 챙긴 채로 먼저 학교에 갔다. 뒤이어 남자는 빈 식탁에서 씨리얼을 만들어 먹고, 어질러진 여자의 신발들을 무시한 채 출근했다. 그럴 무렵 아들이 찾아왔다. 어느 피곤한 날 피곤한 채로 나눴던, 조금은 미적지근했던 사랑이 훨씬 뜨거운 것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남자는 네 번째 연어뱃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아있는 것 중 가장 도톰해 보이는 조각이었다. 옆으로 기울여보니 남자의 중지손가락 만한 두께였다. 측면에 난 은색의 빗살무늬가 식당의 조명을 받아 자잘하게 반짝거렸다. 남자는 연어를 입에 넣은 후 밥을 한 숟갈 퍼먹었다. 연어의 살이 너무 커서 밥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촉촉한 양감이 혀부터 입천장까지를 거의 꽉 채우다시피 하였다. 어쩌면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남자의 삶은 그와 같이 가득 찬 듯 했었다.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아들의 존재감이 생을 채우던 시기였다. 울음을 그친다든지 하는 데서 오는 사소한 평안도,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든지 하는 데서 오는 엄청난 기쁨도 모두 아이로부터 발원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왼손을 빼서 도자그릇을 쥐었다. 밥의 온기로 인해 그릇은 아직 뜨끈했다.

 아들이 태어난 뒤로 남자는 구두 가게를 그만 두었다. 임신 중에도 유독 힘들어하던 아내가 결국 우울 속을 헤매게 되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울어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하루종일 아이의 곁에 붙어 있었다. 아들은 통통한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면서 내용을 헤아릴 수 없는 요구들을 계속했다. 일상을 찢고 다급함을 불러일으키는 그 소리가 들리면 남자는 우유를 먹여보고 장난감을 흔들어보고 동물 흉내를 내고 아이를 안은 채 거실을 하염없이 돌기도 하면서 울음을 달랬다. 땀을 빼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달래지고 난 다음에 방긋 내보여지는 아이의 웃음이란, 성령의 미소와도 같았다. 다행히 아이가 걸음마를 뗐을 때쯤 아내는 이전만큼, 아니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아침잠이 많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 산책을 나갔고, 식욕도 전보다 왕성해 보였다. 그녀 역시 자식이란 이름의 신성한 치유를 받았음에 분명했다.

 어느 날 그녀는 건강하게 살이 오른 듯 통통해진 볼을 씰룩이면서, 잠시 학업을 쉴 생각이니 직장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남자는 아내의 제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구직을 하다가, 이전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구두 가게에 새로이 자리를 구했다. 통근을 위해 차가 필요해지는 바람에 여자는 쇼핑의 횟수를 현격하게 줄였고 남자도 취미로 나가던 테니스 모임을 탈퇴했다. 생활은 점점 더 가족을 중심으로 굴러갔다. 운 좋게 싼 값으로 구한 차에 아내와 아들 외엔 승객이 없었다. 삶의 경계는 좁아졌지만, 남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커다랬던 네 번째 연어뱃살도, 씹으면서 잘게 찢어지고 혀 위에서 녹아 작아지다가는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바로 새로운 조각을 찾았다. 이어서 숟가락을 마치 주걱 쓰듯이 그릇바닥까지 깊숙이 꽂고, 밥을 잔뜩 퍼내서,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입 안으로 넣었다. 다시 양감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좀 전에 먹었던 것만큼 포만하지는 않았다.

 취직 후 아들은 아빠와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났다. 새로운 구두 가게는 사장의 수완이 좋아 매출이 나날이 올랐고, 월급도 따라서 두둑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학교를 아예 관둬도 되겠냐고, 공부도 그만하고, 잡무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만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남자는 아무리 지금 수입이 괜찮아도 혼자 버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병원에는 가보았냐는 질문에 아내는 아니다,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안다, 예전과 다르다, 종종 몸을 가눌 수 없고, 가슴은 답답하고, 가슴에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만져지며, 유난히 아플 때가 있다고 했다. 남자는 즉시 아내와 아들을 차에 태워서 의사를 보러 갔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심하게 진전된 것은 아니어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영문 모르는 아들을 안아 올렸다. 아이는 계속 “아빠, '암'이 뭐야?”라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다섯 번째 연어조각은 너무도 빨리 끝나버렸다. 얼른 무언가의 부피로 입을 채워버리고 싶은 마음에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켜버린 것이다. 남자는 허해져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오른손으로 맥주잔을 잡았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다 보니 한 번에 잔의 반을 비워버렸다. 시원한 흐름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뱃속에 들어서고서는 얼음처럼 차졌다. 뱃속만 찬 것이 아니었다. 음식점 자체가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켓에 묻은 빗물은 거의 말랐지만, 외투 안에서 직접 피부에 닿아있는 티셔츠는 여전히 젖은 채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오들오들 떨면서 주머니에 왼손을 넣었다. 주머니 속의 불룩한 것은 딱딱한 고체였다. 조금도 말랑하다거나, 유연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연어와는 반대되는 성질을 지닌 것이었다. 남자는 그릇을 쳐다보았다. 연어뱃살은 세 점 남아 있었고, 그는 밥과 함께 그들 중 하나를 숟가락에 얹었다. 여섯 번째 조각이었다.

 고기로부터 육즙이 배어 나오듯이, 연어로부터도 그것의 정수가 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 침인지, 연어의 체액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입안을 온통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구슬 속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 물기는 조금만 더 짜져도 피의 맛과 비슷해질 것 같았다. 자유연상은 남자에게 가혹했다. 아내와 무관한 것을 먹으면서도 아내의 죽음을 생각하도록 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수술은 성공했고 치료도 순탄했다. 가슴이 예전과 다른 모양이 된 대신에 몸이 튼튼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정신이 문제였다. 자꾸만 자신의 생이 고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겨우 되찾은 건강을 무화시키는 태도였다. 남자는 밤낮으로 고민했다. 아들과 함께 셋이 손을 잡고 공원에 다녀왔고, 날마다 퇴근길에 꽃다발을 사서 아내에게 내밀었다. 어느 날은 큰 맘을 먹고, 사장으로부터 비싼 구두를 추천 받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입꼬리를 올릴 뿐 진심으로 미소 짓지는 않았다. 남자는 그녀가 미소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살아 있는데, 이렇게 눈앞에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음처럼 생을 다 써버렸다고 단언하는가? 그는 아내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무기력할 뿐, 얼마든지 다시 생기로 채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어느 빈 그릇이 비었을 뿐 깨지지는 않은 것처럼.

 하지만 아내는 언젠가부터 꽃을 선물 받고서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토록 슬픈 정수리를 처음 보았다. 그때, 시야의 가장자리에 아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이 보였다. 아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아내와 자신에게 찾아왔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의 것이었다. 그 힘에 의지한다면 다시 한 번 일어서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기를 낳은 아내는 운동도 하고, 고기를 찾아 먹고, 창문에 새 커튼을 달고, 또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었다. 그녀는 아들로 인하여,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에의 의지를, 생에의 의지를 되찾은 적이 있었다…….

 남자는 아내에게 둘째를 갖자고 말했다.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자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자고 부탁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파랬다.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건가요?”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여자의 파란 얼굴은 이윽고 살구색으로 돌아갔다. 아니, 실은 여느 때보다도 핏기 없이 허얘졌으나, 남자는 거기서 색채라는 생의 표지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가 그렇게 보기로 한 이상 창백한 여자는 건강한 빛깔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날 밤 남자가 내미는 손을 받아들였고 옷이 벗겨질 때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신음하지는 않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런 밤들이 여러 번 있은 뒤로 아내에게 일련의 증상들이 나타났다. 남자는 맘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아내의 손을 꽉 쥐고 그녀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걸음이 자꾸 느려지고 뒤쳐져서 남자가 여러 차례 멈춰선 뒤에야 그를 따라잡곤 했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아내는 무덤덤해했다. 너무 무덤덤해해서 의사가 당황할 정도였다. 옆에서 남자는 호들갑을 떨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고 노력했다. 병원을 다녀온 아내는 아기가 출연하는 흑백의 영화를 보고도 자신의 배를 쓰다듬지 않았다. 그저 몸이 그득하게 불러오는 것을 공허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아기가 태어난다면, 태어나기만 한다면 아내의 태도는 달라지리라고 믿었다. 사랑으로써 태어난 새 생명이 울고, 웃고 하는데 행복해지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달력을 넘기면서 아내의 변화를 기다렸다. 출산예정일은 점점 다가왔다.

 여섯 번째 연어뱃살은 그 물기가 가시자마자 꿀꺽 삼켜져서 사라졌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남자는 왼손을 꿈틀거리더니 쥐고 있던 단단한 물체에서 손가락이 들어가는 구멍을 찾아 그 안으로 검지를 넣었다. 오른손으로는 일곱 번째 연어뱃살을 향해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밥이 얼마 없기에 그냥 그릇에 남아있는 밥을 모두 긁어먹었다. 이제 그릇에는 마지막 한 조각의 연어뱃살이 남아있었다.

 일곱 번째 연어뱃살은 씹히면서 이 사이사이 그리고 혀의 이곳 저곳을 누빌 뿐만 아니라 밥알까지 감싸는 듯 했다. 연어와 함께 먹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밥에서까지 연어 맛이 났다. 선홍색의 보드라운 몸으로 입천장을 두드리면서, 자꾸만 자극을 쏘아 올리다가도 혓바닥의 뒤쪽으로 가라앉는 그 맛이, 쌀밥에도 힘을 미쳐서 밥알을 삼킬 때에도 같은 것이 감각되었다.

 아내는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렸다. 듣기만 했던 그런 일이 정말 가능했던 것이다. 남자는 지독하게 의아해져서 혹시, 아내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서러워도 더 이상 답할 수 없게 된 영역의 질문이었다. 더 큰 충격은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아이 역시 죽은 채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묻는 아들에게 남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더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 왜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회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왼손의 검지 손가락은 구멍 안에서 뾰족하게 솟은 것을 만지작거렸다. 남자는 세상 어느 것보다도 딱딱하면서 부드러운 곡면으로 감싸진 부품을 매만졌다. 어느덧 남자는 마지막 연어뱃살을 숟가락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남은 김가루가 모두 엉겨 붙어 분홍색이 잘 보이지 않는 조각이었다. 그는 그것을 입으로 넣기 전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켰고, 마침내 그릇을 비웠다. 텅 빈 그릇은 명백하게 피 색이었다.

 바삭바삭함을 잃었어도 여전히 짭조름한 김을 씹으면서, 남자는 제 할아버지의 집에서 잠들어 있을 아들이 떠올랐다.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과 녹녹한 입은 소중했다. 하지만 소중한 이를 안고 있어도 생이 한없이 모자라다고 느낄 수 있는 법이었다. 풍부한 미소를 지으면서 곁에 있는 것을 제치고 결여만이 반짝이는 일이 무척이나, 가능하다. 그럴 때에 삶은 고갈된다. 남자는 밥 없이 연어뱃살을 씹으면서 스스로의 혀를 씹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들이 생각나다가도 연어에서 자꾸만 혀 맛이 나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무자비하게 자신의 혀를 대강 삼켰고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여주인 그리고 요리사와 눈을 마주쳤다.

 “죄송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실 겁니다.”

 남자는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있었던 결혼반지를 꺼내 보였다. 그는 반지를 빈 도자그릇 옆에 올려놓고는, 일본인 부부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가게를 성큼성큼 나갔다.

 빗속에서 남자는 상가를 등지고 몇 발 나아간 뒤에 걸음을 멈췄다. 그는 왼쪽 주머니에서 왼손과 함께 총을 꺼냈다. 이마에 총구를 겨눈 채, 방아쇠를 꾹, 눌렀다. 이제 거기서 손가락만 떼면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모든 게 끝날 것이었다. 그렇게 딱딱한 것이 보드라운 것을 끝장낼 것이었다. 생이, 분홍빛으로 가득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시뻘겋게 문드러지는 시간이, 공간이, 힘이 사라지면…… 기쁨의 기억까지 사라지겠지만, 그보다 거대하고 거나한 절망도 종식될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의 끝엔 아내가 있으리라. 천국에 가서 그녀를 마주할 수 있으리란 의미가 아니었다. 그런 만남의 장이 마련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저 아내와 자신이 동일한 언어를 쓰는, 동일한 세상에 있기만 하면 된다.

 덮밥집의 부부는 반지를 두고 구시렁거리고 있다가, 문밖에서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는 바로 식당을 뛰쳐나왔다. 요리사가 문으로 손을 뻗는 중에 테이블을 건드리는 바람에 빈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종이 딸랑거렸고, 비가 전보다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여러 소리들이 봉화처럼 터졌다.

 요리사가 남자의 손에서 가까스로 떨어뜨린 것은 한 자루의 권총이었다. 화약에 결함이 있었든, 쏜 사람이 망설였든 간에 총은 불발이었다. 사람 손만한 그것은 빗속에서 검푸르게 나뒹굴었고, 그것의 추락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 남자도 더러운 아스팔트 바닥에 뒤통수를 문댔다. 물이 자꾸만 흘러 드는 귓가엔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와 세찬 빗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시야는 흐릿해지고, 후각은 무뎌지며 정신도 혼미해지는 가운데 남자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의 감각, 미각이었다. 채 씹히지 않은 작은 연어 조각이 아직 그의 입안에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 몰캉한 덩이를 혀로 굴리다가 이내 삼켜보았다. 연어는 혀 뒤쪽을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마지막 선물처럼 달짝지근함을 전해왔다. 그 맛은 오늘 집을 나서면서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난 느낌과 비슷했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에게 남은 생의 조각들이 있음을 상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과, 많은 것을 알지만 모르는 체 하여주는 노부모의 생, 그리고 모든 것을 알았던 것 같지만 뱉어내지 못했던 아내……의 생에 대한 기억, 그것을 보존하는 과제가 그에게 남아있었다.

 땅에 닿지 않은 새로운 빗물이 얼굴을 씻어내는 가운데 남자는 아내와의 불통을 잠시간 연장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은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는 진정한 대화라는 생각과 함께, 왼손으로, 볼을 쓸어 올리며 체온이 돌고 있는 자기 얼굴을 감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