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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미완 - 사과로부터의 푸른 빛(2022.2)

 앙리 르 시다네르의 그림들은 견고해 보이는 우리네 세계가 실은 언제나 미세하고 부드럽게 진동하고 있으며,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색깔의 빛을 입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세계에 대해 고정불변하게 타당할 인식을 찾고자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아름다움까지 훼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식은 일종의 반달리즘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처음에는 인식의 효용에 대한 강박적인 기대와 그것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인물이 메시지를 육화하지 못하고 단지 예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상이 조금이라도 배어있는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실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I 오빠가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해, 마음에 들었던 앞부분만 댕강 잘라냈다. 고맙고 미안해.

Henri Le Sidaner, Le dejeuner(circa 1910 and 1920)


 약수역의 재래시장 뒷골목에는 오랜 시간 거리를 지켜온 봉제 공장들 사이에 기적처럼 세련된 카페가 자리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그곳에서는 성인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미술사 서적 낭독 모임이 열렸다. 우리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미술 전문 잡지나 논문, 너무 두껍지 않은 책 또는 두꺼운 책의 한두 챕터를 골라와서 함께 읽었다. 참여자마다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에 자주 시공을 초월했다. 사진에 미친 회사원이 하나 있었고, 청동으로 된 조각을 숭배하는 더 미친 회사원도 있었으며, 초상화만 파는 독문과 대학원생도 있었다.

 그런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과 관심에는 탐색적이라는 딱딱한 말로밖에 포착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어려있었다. 우리는 마치 사교 무도회에 나온 19세기 영국의 신사 숙녀들처럼 언제나 말쑥하게 차려입었으며,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과 바깥으로 빠져나와서는 향수를 다시 뿌리거나 화장을 고쳤다. 그렇게 저마다 세워놓은 치장의 칸막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에 대해 노출하기보다 상대에 대해 더 알기를 원했다. 작품에 대한 해석 이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만 사람들은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갔고, 반면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추임새만 넣었던 경청자들은 단체 카톡방에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같은 도취감에 젖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많은 지인들이 우리 모임의 화려한 외양만을 보고 가입을 희망했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이 인식의 전쟁에 익숙해진, 무엇보다 그것을 즐기게 된 사람들은 소수였다. 묘한 신경전을 견디지 못한 바보들은 길어야 한 달이면 핑계를 대면서 카페를 뛰쳐나가곤 했다.

 나는 언제나 이 불가해한 유희의 승리자였다. 나는 마치 관조의 행위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는 척 오로지 작품을 경유해서만 말을 꺼냈으며, 그렇게 말을 꺼낼 때조차 늘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약수역의 재래시장 뒷골목에서 나는 인식의 여왕이었고, 누구도 나를 그 왕좌로부터 끌어내릴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달 전, 모임에 새로 합류한 기자 형석에게서 애매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형석의 냄새는 지독한 풀내 같기도 했고, 향그러운 숲의 향기 같기도 했다. 다 시든 장미의 메마른 냄새 같기도 했고, 젖은 신문지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 같기도 했다. 물론 그의 냄새 자체가 애매한 건 아니었다. 그의 냄새는 단순하고 단일했다. 그것은 하나의, 분열되지 않은, 자신만으로 온전한 사태였다. 다만 그것에 대한 내 판단이 오락가락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향기로 분류할지 악취로 분류할지 고민해야 했다. 내가 언제나 모임에서 일부러 그의 옆자리를 탐한 것은, 그리고 뒤풀이가 끝난 뒤에 둘이서만 칵테일을 마시자고 제안한 것은, 한 번은 심지어 모임이 없는 주말에 양념이 맵게 들어간 국수 따위를 먹자고 느닷없이 불러낸 것은 오로지 한 개의 판단을 위함이었다.

 형석은 사적으로 만나자는 나의 끈질긴 요구와, 이따금 아무런 맥락 없이 서로의 몸이 갑자기 가까워지곤 하는 일, 예를 들어 내가 술에 취한 척 상체를 기울여 그의 목에 코를 가까이 댔던 것을 구애의 행위로 해석했다. 머지않아 형석은 자연히 받아들여질 줄 알고 내게 사랑을 고백해왔다. 나는 차마 거기에 대고 ‘난 단지 네 냄새를 좋음과 나쁨의 상자 중 하나에 가둔 다음 자물쇠를 걸어놓고 싶었을 뿐인데’라고는 답할 수 없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나는 냄새만큼이나 애매한 눈빛으로 말이다.

 일방적인 진정성만으로 시작된 관계는 빠른 이별로 치달았다. 내가 그 짧은 사이에 형석의 냄새에 대해 뭔가 알게 됐느냐, 하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의 향수와 옷과 맨 피부, 그러니까 냄새라는 것이 기원할 수 있는 모든 후보들은 소름 끼치도록 동일한 냄새를 풍겼다. 아무래도 향수란 향을 풍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향수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으리라 싶다가도, 그렇다면 어째서 샤워를 한 직후에도 같은 냄새가 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체취가 강한 사람이라 옷을 뚫고 나에게까지 전해졌으리라 싶다가도, 그렇다면 어째서 두꺼운 옷의 표면에까지 같은 냄새가 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국의 섬유유연제, 그러니까 한국인에게는 곧바로 좋은 냄새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는 모호한 냄새를 내는 미지의 외국산 제품을 오랜 시간 써왔나 의심해보다 그쪽도 영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의 화장실 선반에서 반쯤 사용한 ‘다우니’를 발견했다.) 나는 단순히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했다. 나는 상대에게 전혀 이해되지 못할 어조로, 그러니까 상대에겐 터무니없이 갑작스러웠을 화 끓는 목소리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리고는 형석의 냄새라는 사건이 나의 세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얼른 잊어버리려고 헛되이 결심했다.


 최근에 '리코리쉬 피자'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인물들을 만들 수가 있지 싶어 감탄했었다. 그 정도로 통통 튀는 인물들이 어떻게 특정한 계획의 산물일 수가 있나. 나 또한 사상가를 만들기 이전에 사람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먼저 사람을 만들어야 그녀가 사상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힘들어도 계속 쓰자. 누구에게나 하나의 성역쯤은 허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