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프란츠 카프카, <소송>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옮김, <소송Der Prozess>, 문학동네, 2010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관여해서 뭔가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함께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공 요제프 K에게 공감할 수 있다. 만일 그토록 마음을 쓰는 동시에, 사실은 해당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아서 자신의 노력이 의미에 투자되고 있는지, 아니면 무의미를 위해 탕진되고 있는지 헷갈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무의미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생을 망가뜨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므로, 나는 이 작품을 비극으로 읽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상대로 무의미하며 제 경우에서처럼 대개 아무 성과도 없는 소송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무의미한데, 어찌 관리들이 완전히 부패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65)"

 

 K는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에 죄명도 알지 못한 채 느닷없이 체포되어 어느 소송 절차에 휘말린다. 체포되긴 했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일상 역시 망가지기 시작한다.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얕봤던 일이 점차 무게감 있는 것으로 다가오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에 의해 짓눌릴 때, 인간은 부조리에 지는 것이다--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법적 제도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배반하는 이상스러운 곳이다. 관리와 판사들은 법리적 판단이 아닌 개인적인 연줄과 뇌물에 의해 움직이고, 소송 절차가 체계화되어있지도 않으며, 그곳에 대해 많은 말이 이루어지지만 실질적으로 알려지는 정보는 없다. 요컨대 K는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부조리한 세계와 온몸으로 싸우게 된다.

 법원이 그려내는 세계의 이와 같은 불투명성은 K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갈구하는 하녀 레니에게, 수상한 화가 틴토렐리에게, 소송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느라 자신의 생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인 블로크에게 의지하는 한편 정식 면허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와는 계약을 해지한다. 이들 앞에서 K는 소송과 법원에 대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그에 대해 말을 하고 뭔가를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K뿐만 아니라 다른 피고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이 우습고도 눈물겨운 몸부림들에 대해 카프카는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슬픈 최선이라는 메시지를 되풀이한다. 연대 역시 불가능하다.

 "[...] 일단 소송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때부터 개선을 위한 제안들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다른 일에 쓰면 훨씬 유용할 시간과 정력을 공연히 이런 일에 허비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주어진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148)"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다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277)"
 "법원에 맞서 공동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소송 건은 개별적으로 조사되며, 법원은 치밀하기 이를 데 없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공동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고, 다만 개별적으로만 때때로 비밀리에 뭔가 뜻을 이루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유대감 같은 건 없습니다.(217)"

 

 그러나 법원의 세계는 신비 또는 허구에 불과한가? 카프카가 이 이상한 법원을 통해 그려내는 세계는 물론 현실과 결코 1대1로 대응되지 않는다. 법원의 세계에는 문 뒤에 계단이 있고, 하급 관리들이 법을 어기면 태형에 처해지고, 모든 판사가 자신의 지위를 과장한 초상화를 주문하며, 뭇 사람들에게 알려져있지만 또 어떤 때에는 마치 선택된 자들에게만 접근이 가능한 비의적인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허구의 세계와 우리네 현실은 그 본질적 속성들에서 일치한다. 바로 조직의 부패, 커다란 체계 앞에 선 개인이 겪는 통제 및 예측 불가능성, 권력과 부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불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뭔가 해볼 수 있다는 희망 및 오만이 바로 그 본질적 속성들이다. 카프카의 소설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것이 철저한 허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해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느꼈던, 환상과 현실 사이의 희미하고도 견고한 연결고리를 <소송>에서 다시 느꼈다.

 K가 겪는 소송은 어쩌면 모든 현실적 인간이 살면서 한 번은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어느 순간에는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떠올려 서술하고 모든 방면에서 검토(157)"한 뒤 자신을 사형시킬 수도 있는 타인 앞에서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게 그 타인은 대중이고, 기독교인에게 그 타인은 신일 것이다. 그렇게 심판의 자리에 호명되고 나면 그 인간은 누구의 도움도 빌릴 수 없고 오롯이 혼자가 된다. 아무도 없는 대성당에서, 단순히 자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익명의 신부가 갑작스럽게 K의 이름을 콕 찍어 불렀듯. "요제프 K!(261)"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실체상 죄인이기 때문에--실제로 죄를 저질러서일 수도, 단지 인간이어서일 수도 있지만("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264)")--"단 한번의 무죄 판결도 없(190)"게 된다. 이유는 없지만 힘은 있는 유죄판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치욕(287)"이다. 만일 그의 죄가 역자인 권혁준님의 해설대로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면 이러한 치욕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필연인데, 필연으로 인해 처벌받는 일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K의 마지막 말이 "개 같군!(287)"이라는 사실에 섬뜩함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의 사형은 우리 모두의 인생과 유관하다.


 Q. 작법상의 신비.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데 왜 재미있는가? 소송의 정체, 결과, K의 앞으로의 노력 등 기대할 것이 많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게 늘 최선은 아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동시에 쓰이고 "중간 부분의 장들을 느슨한 연관 속에 비연속적으로 써나가는 집필 방식(332-333)"이 취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