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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박문재 옮김, 명상록, 현대지성, 2018.

 ⟪명상록⟫이 철학서인 이유는 이 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위로의 말들이 그 심리적 효용 때문에, 또는 귀납적 추론의 결론으로서 채택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우주론의 연역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존재자들은 전 시간을 지배하는 촘촘한 인과의 사슬로 다 함께 단단히 묶여있다. 사슬의 마디로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이기 이전에 더없이 친숙한 일들이며, 그 일들뿐만 아니라 그 일을 작용시키는 자도 그 작용을 당하는 자도 모두 가장 기본적인 원소들로 해체되어 소멸한다.

 이토록 뻑뻑하고 고리타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우리를 새롭게 흥분시키고 좌절시킨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이 세계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력감이 아닌 안정감을, 절망이 아닌 무한한 희망을 읽어낸다. 세계와 나의 운명을 내 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헛된 것으로 판명되면, 오직 내면을 돌보는 데 집중하는 것만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기돌봄의 자유가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만큼 큰 행운은 없다. 이것을 정신승리라고 모독하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는데, 가능한 유일한 승리가 곧 정신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면을 지배해야 하는 원리들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제시하는 것은 이성, 선의지, 소박함, 겸손함, 공동체의식, 그리고 철학으로부터 가능해지는 자비심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모든 심판을 철학적 이유들로 말미암아 거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적 삶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사랑에 근접해 간다. 또한 충동을 적극적으로 물리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현존에 대한 불굴의 긍정을 통해 니체의 사유와도 손을 맞잡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친숙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날것 그대로 승인하고 무엇보다도 내 목적을 위해 선용할 것. 위해는 판단으로부터 오기에, 위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유해하다는 판단을 중지할 것. 덧없이 들뜨지도, 실망하지도 말 것. 그저 죽을 때까지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것. 어차피 삶의 끝은 멀리에 있지 않다.


 "[...] 왜냐하면 이성은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긴 하지만, 그렇게 할 때 특정한 것들을 선호하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대항하는 그 어떤 장애물들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유용한 것들로 변화시켜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 작은 불길은 그 불길 속으로 던져진 것들에 의해서 꺼져 버릴 수도 있겠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그 불길 속으로 던져진 모든 것들을 그 즉시 동화시키고 태워 버리고서는 더욱더 높이 타오른다."(67)

 "네 마음에 새겨두고서 늘 반추하고 돌아보아야 할 두 개의 원리가 있다. 하나는 외부에 있는 사물들은 외부에 있어서 너의 혼을 지배할 수 없고 너를 흔들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은 언제나 너의 내면에 있는 생각이나 판단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네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라.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의견이다."(70)

 "판단을 하지 말라. 그러면 네가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71)

 "누가 너에게 강요하는 대로, 또는 누가 네게 원하는 대로 어떤 것을 보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72)

 "어떤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면, 그 자체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것들 중에서 법이나 참됨이나 선의나 겸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것들 중에서 어느 것이 찬사를 받는다고 해서 아름다워지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잃겠는가. 에메랄드가 찬사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탁월한 아름다움을 잃겠으며, 황금과 상아와 자주색 옷과 현악기인 리라와 단검과 한 송이 꽃과 어린 관목은 또 어떠한가."(75)

 "실패했을 때에는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고, 네가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네가 무수히 실패하는데도 끝까지 추구하고 있는 그 길을 사랑하라."(94)

 "최고의 복수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109)

 "너의 목표는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낀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너는 너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127)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135)

 "어떤 사람이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러서 화가 날 때마다, 그 즉시 '이 세상에 뻔뻔스러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네 자신에게 자문해 보라.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악당이나 사기꾼이나 다른 그 어떤 악을 행하는 자를 보았을 때에도 동일하게 생각하라."(188)

 "비록 네게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일지라도, 너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들을 찾아서 행하라.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서 추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