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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Alex Broadbent, <Philosophy for Graduate Students> 일부 번역

Alex Broadbent, Philosophy for Graduate Students, Routledge, 2016, 모든 강조는 필자.

탁월한 분석철학 입문서.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가적인 감정을 품어 왔다. 한편으로, 결론의 논리적인 설득력과 일의적인 독해 가능성을 지향하는 서술상의 명쾌함이 철학함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모든 철학자가 좋은 철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꼭 '분석적'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저 말이 오늘날 정확히 어떤 지적 경향을 의미하게 되었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첫째,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과 참된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아서, 설령 근거가 빈약하거나 모순이 발견되는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깔끔한 논증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소한 결론을 내놓는 글보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지만 인식 및 실천의 집합으로서 우리네 삶을 전체적으로 되짚어 보게 하고 세계에 대한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글이 철학적으로 더 유의미하다. 파스칼의 말마따나 "모순은 거짓의 표시가 아니며, 모순의 없음도 진리의 표시가 아[닌]" 것이다.* 문제라면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를테면 좋은 문학도 완수할 수 있는 사명이기에, 구체적으로 '좋은 철학'을 정의하는 데 불충분하며, 무엇보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단지 철학적일 뿐인 소설가들까지 철학자의 범주 안에 넣어야 마땅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일의적인 독해 가능성을 반드시 절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서술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애매성 또는 불가해성은 철학적 사유, 특히 해석학적인 이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철학적 주장에 대한 예감은 많은 경우 '지금 이거 무슨 소리지'라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하곤 한다. 한편, 철학자가 주제화하는 사태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일부 분석철학도들이 경악할 만큼--"하이데거 쌉소리에요! 제목이 ⟪존재와 시간⟫인데 '존재'가 정의 안 됨"--불가해한 글을 써내는 일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문제라면 철학자의 주된 작업을 논증으로 보든, 해석으로 보든 사태 및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최대한 일의적인 규정이 일종의 의무라는 직관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 직관에 따르면 서술의 애매성을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미덕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척 이상하다. 뿐만 아니라 사태 자체의 본질이 그것에 대한 철학적 서술을 불가해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불가해한 서술이 허용된다는 생각은 상당히 무책임하게 들린다.

 아무튼 주위의 분석철학도 분들께서 소위 대륙철학의 철학적 의의에 대해 노골적으로 회의적인 언급을 남길 때마다 본능에 가깝게 드는 반발심이 있지만, 그것을 나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표현하기는 아직 어렵다.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분석적인 접근을 철학의 배타적으로 유의미한 방법론으로 생각하지 않되, 그것이 가져다줄 수 있는 기술적인 이점들 및 내용적인 영감을 흡수함으로써 조금 덜 편향된 철학적 이성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과정에서 언젠가 분석적인 접근의 한계를 나 스스로 명쾌하게 이해하게 됨으로써, 내가 최초에 대륙철학에 대해 느꼈던 상대적인 호의를 정당화하는 일이다(물론 무언가의 한계를 알기 위해 그 무언가를 파고드는 행위에는 악의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서, 정확히 이 목표를 표상하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다). 각 챕터 별 핵심 개념들에 대한 요약이 제공되어 있었는데, 독서를 마무리할 겸 한국어로 옮긴다.

*블레즈 파스칼, 현미애 옮김, ⟪팡세⟫, 을유문화사, 2021, p. 97.


Chapter 1: Induction

아프리오리한 지식 vs. 아포스테리오리한 지식. 아프리오리한 지식이란, 그것의 보증(warrant) 혹은 정당화가 추가적인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며 추가적인 경험에 의해 반박되지 않)는 지식이다. 아포스테리오리한 지식이란 그것의 보증 혹은 정당화가 경험으로부터 오는 지식이다. 

논리적 타당성. 주장[논증](argument)은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전제들이 참임이 주어졌을 때, 결론이 거짓이 될 수 있는 가능한 방도가 없는)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타당한 주장은 참된 전제들을 가질 필요도 없고 참된 결론을 가질 필요도 없다. 전제들이 참인 경우, 결론이 참이 되어야 하는(결론이 거짓이 될 수 있는 가능한 방도가 없을 것인) 한에서 여전히 그 주장은 타당한 주장이다. 

연역 vs. 귀납. 연역적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다. 귀납적인 주장, 또는 추론이란 논리적으로 타당해지는 데는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주장 또는 추론으로서 모종의 가치(merit)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 또는 추론이다.

귀납의 문제. 귀납의 문제란 비-연역적인 주장들 또는 추론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설명하는 문제, 즉 무엇이 귀납적 주장들 또는 추론들을 [단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단언들을 엮어놓은 것(strings of unconnected assertions)으로부터 구별시켜주는지 설명하는 문제다.

귀납의 새 수수께끼. 귀납의 새 수수께끼란 Nelson Goodman이 제기한 문제로, 우리가 귀납의 원리[귀납추론은 타당하다는 원리]를 승인할 경우 보증되는 추론들은 우리가 어떤 술어들을 사용하는지에 의존한다는 문제다(이상 p. 12).

Chapter 2: Similarity

개별자[특수자](Particular). 다른 사물[존재자]들에 의해 분유되지 않는 사물(A thing that is not partaken of by other things).

보편자(Universal). 상이한 개별자[특수자]들이 분유하고 있는 추상적 사물로, 그 개별자들이 색깔, 모양 등의 특정한 면에서 여전히 동일하면서도(다르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다른 사물들일 수 있는지를 추정컨대 설명해준다(supposedly explaining). [보편자] 실재론자는 보편자들의 현존(existence)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집합. 그것의 정체성[동일성](identity)이 집합의 구성원[원소](member)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수학적 구축물. 그 어떤 [서로 다른] 두 집합도 […] 같은 구성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집합은 그 어떤 구성원도 가질 수 있으며, 또는 아무 구성원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한 집합의 구성원들은 그 집합의 구성원들이라는 데 더해 그 무엇도 공유할 필요가 없다. 아무 구성원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집합은 공집합이라 불린다. 집합은 (공집합을 포함해서) [그 자신이] 집합의 구성원들일 수 있다.

외연(Extension). 한 집합의 외연은 그 집합의 구성원들인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해당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들을 의미하기 위해 [‘]개념의 외연[’]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상 p. 28)

속성들: 잉여적(abundant) vs. 자연적(natural)*. 일반적으로 말할 때, 속성이란 특징 또는 특성이다. 즉, [서로] 구별되는(distinct) 개별자들 간 유사성의 면모다. 특성의 상이한 종류에 상응하여, 속성의 상이한 개념들이 [서로] 구별된다. 잉여적 속성은 집합에 상응한다. 모든 집합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잉여적 속성이 있다. 자연적 속성은 그것들 중 보다 제약된 선택[의 산물]이다. 자연적 속성은 그냥 아무 집합인 것이 아니라(not just any set), 추정컨대, 특권이 있는 집합이다. 이 집합의 구성원들은 추정컨대 객관적으로 유의미한,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야 할 유사성의 면모를 규정한다[정의한다].

*cf. sparse properties = natural properties that 'carve at the joints' of the world.

[속성] 유명론(Nominalism): 순전한[완전한](bare) [속성] vs. 자연적 속성. [보편자] 유명론은 보편자[와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개별자들과 개별자들의 집합만이 있고, 개별자들 사이의 유사성은—곧, 속성은—집합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nothing over and above) 입장이다. 순전한 유명론은 오직 잉여적 속성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속성은 임의의 집합일 뿐이다(T씨)]. 자연적 속성 유명론은 자연적 속성이 존재한다는, 즉, 어떤 집합은 철학적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는[설명이 필요한] 방식으로 중요하거나 특권을 가진다는 입장이다.

종(Kind). 다소 논쟁이 있는 용어로, 때때로 속성과 거의 교환 가능하게 쓰인다. 더 정밀한 사용은 종을 속성들의 유의미한 묶음(bundle)으로 [속성과] 구별해낸다. 그러므로 질량은 속성인 반면, 원자는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원자임[원자로 존재함]이라는 속성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원자가 종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속성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속성-묶음들의 유의미성의 본성에 대한 토론, [곧] 어떤 종들은 자연적인지, 즉 철학적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는 특권적이고 모종의 방식으로 유의미한지에 대한 토론이 존재한다. (이상 p. 29)

Chapter 3: 인과

규칙성(Regularity). 사건 또는 속성 예화(instantiation)의 시퀀스로, 최초의 것이 다른 [이후의] 것들 없이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는 성질]. (그러나 후자는 전자 없이 발생할 수 있다.)

항상적 결합(Constant conjunction). 규칙성을 표현하는 (흄의) 또 다른 용어.

인과에 대한 규칙성/항상적 결합 이론. C가 E의 원인이라는 것은 C-사건들과 E-사건들 사이에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 즉 C-사건들은 E-사건들에 의해 항상 뒤따라진다는 것(또는 [E-사건들과] 항상 결합된다는 것)이다. 규칙성 이론들은 보통 원인과 결과 사이 모종의 시공간적 친밀성(proximity) 또한 요구한다(흄이 인접성(contiguity)이라고 부른 요구사항). 그리고 규칙성 이론들은 보통 여기서 말해진 것처럼 원인이 결과에 선행할 수 있는 시간 순서를 함축한다.

반사실/반사실적 조건문(Counterfactual/counterfactual conditional). 반사실 또는 반사실적 조건문이란 “만일 [실제로는 아닌데] X가 성립한다면, Y가 성립할 것이다(If it were the case that X, then it would be the case that Y)”와 같은 구절로 표현되는 [바로] 그것이다. David Lewis의 철학에서 반사실적 조건문은 세계-내(inter-world) 사실이며, 그저 특정한 언어적 구축물이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가진다. 그 결과 그는 반사실적 조건문이 아닌, 단순히 반사실들을 지시하기를 선호한다(tends to). 가장 발전된 (반드시 가장 그럴듯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 이론인 Lewis의 의미론에서 반사실은 ([서로] 인과적으로 고립된 우주들인) 가능한 세계들 간의 유사성 관계들에 의해 참이 된다. “만일 X가 성립했더라면…”은 X가 성립하는 가장 가까운, 즉, 가장 유사한 세계를 골라낸다. 그 경우 전체 반사실의 진리치는 이 세계에서(만일 하나 이상일 경우, 이 세계들에서) Y가 성립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상 p. 48)

인과에 대한 반사실적 이론. 인과에 대한 반사실적 이론이란 [인과에 대한 규칙성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과를 반사실들을 사용해 분석하고자 시도하려는 인과 이론이다. 가장 발전된 인과에 대한 반사실적 이론은 David Lewis의 것으로, 반사실적 의존성이 인과를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즉 E가 C에 반사실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 성립하면, C는 E의 원인이다.

공통적 원인의 문제(The common cause problem). 하나의 사건이 다른 두 사건들의 원인이 될 경우, 우리는 그 사건들을 공통적 원인의 결과들이라고 부른다. (그것들은 때때로 부수현상(epiphenomena)이라고도 불린다.) 공통적 원인의 결과들은 인과에 대한 이론들에 종종 난점을 제시하는데, 공통적 원인의 결과들을 서로 인과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간주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공통적 원인의 문제다(때때로 부수현상의 문제라고도 불린다). 규칙성 이론에 있어서 문제는 공통적 원인의 결과들이 예외 없는 규칙성의 일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압계[의 숫자]는 언제나 폭풍 전에 떨어지지만, 기압계[의 숫자]가 떨어진 것이 폭풍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반사실 이론에 있어서 문제는 공통적 원인의 결과들이 반사실적 의존성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압계[의 숫자]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폭풍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것은 기압계의 숫자가 떨어진 것을 폭풍의 원인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참이다]. 

선점(Preemption). 설령 그것의 실제적(actual) 원인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결과가 어차피 일어날 것이었을 때 생기는 상황. 우리는 종종 이런 상황을 이를테면 자동안전 장치를 가진(failsafe) 시스템을 만들거나, 안전망을 세우는 경우 등에서 만들기 위해 종종 노력한다. 이런 상황은 Lewis의 인과에 대한 반사실적 분석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반사실적 의존성이 인과를 위해 필연적이지는 않다[필요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사실적 분석은 인과에 대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반사실적 구축물을 고안해야 하거나, 반사실적 의존성이 인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게 된다.

이행성(Transitivity). [관계] R이 이행적일 경우, 만일 a가 b와 R 관계를 맺고 b가 c와 R 관계를 맺는다면 a가 c와 R 관계를 맺게 되는 [그런] 관계들의 속성. [예컨대] 키가 큼은 이행적이다. 관계는 이행적이거나 그렇지 않다. [어떤 관계가] “때때로 이행적”일 수는 없다. 비-이행적인(non-transitive) 관계들 가운데 일부는 반-이행적인데(intransitive), [반-이행적이라 함은] 만일 a가 b와 R 관계를 맺고 b가 c와 R 관계를 맺는다면 a는 c와 (결코) R 관계를 맺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만짐(touching)은 비-이행적이지만 반-이행적이지는 않다. 만일 a가 b를 만지고 b가 c를 만진다면, a는 c를 만질 수도 있고 만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는 완전히 우연의 문제다. [반면] 같은 크기를 가진 정육면체들 가운데서, 전체 면이 맞닿아 있음(having a whole face touching)이라는 관계는 반-이행적이다. 만일 정육면체 a의 한 면 전체가 정육면체 b의 한 면 전체와 맞닿아 있고, b가 c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a와 c는 (결코) [서로] 맞닿아 있는 하나의 전체 면을 가지지 않는다.

인과 이론들에 대한 이행성 문제. 인과와 관련하여, 인과가 이행적인지에 대한 물음이 있다. [인과라는 말에 대한] 일상적인 사용은 [다음의] 두 방향을 모두 가리킨다. 한편으로, 보통 우리는 주어진 결과의 인과적 역사 속 특정한 사건들을 [전부] 원인들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과적 관계들을 [(]비-이행적인 관계에서는 일반적[전형적]이지 않게도[)] “축적됨(adding up)”으로 간주한다. 만일 a가 b의 원인이고 b가 c의 원인이라면, a를 c의 원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인과적 관계를 매개적인 연결고리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생겨남은] 만짐과 같은 반-이행적 관계들에 대해서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인과에 대한 이론들에 새로운 난점을 더한다. (이상 p. 48-49)

인과적 선별(Causal selection). 인과적 판단을 내릴 때, 주어진 사건의 인과적 역사 속 모든 항목들 가운데서 하나의 작은 부분집합을 골라내는 현상. 다소간 무시되[어 오]기는 했지만, 인과적 선별이 인과의 개념 또는 본성과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있다. 표준적인 견해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적지만 유의미한 소수의 철학자들이 다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상 p. 50)

Chapter 4: 자연 법칙(laws of nature)

법칙들에 대한 규칙성 이론. 법칙들을 규칙성의 언어로 분석하는 이론—자연 법칙은 규칙성들[일 뿐]이며, 그 이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규칙성 이론들: 순진한(naïve) [규칙성 이론] vs 정교한(sophisticated) [규칙성 이론]. 순진한 규칙성 이론은 자연 법칙과 규칙성들 사이에 단순한 동등성이 성립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모든 규칙성들은 법칙들이고 모든 법칙들은 규칙성들이다. 정교한 규칙성 이론은 마찬가지로 법칙은 규칙성 이상이 아니라고 보지만—특정한 종류의 규칙성 [이상이 아니라고 본다는 점에서 순진한 이론과 차별화된다]. 가장 잘 알려진 정교한 규칙성 이론은 Mill–Ramsey–Lewis의 최선의 체계 이론(Best System theory)으로, 그에 따르면 법칙이란 연역적 체계 속에서 보여지는 규칙성 [중] 단순성과 특수한 사실들을 포착해내는 데 있어서의 강점 사이 최선의 균형에 이르게 하는 규칙성이다.

법칙적 필연화(Nomic necessitation). Armstrong에 따르면 일부 보편자들 사이에 성립하며 자연 법칙을 유효하게 하는(gives rise to) [그런] 관계.

지지하는 반사실들(Supporting counterfactuals). 어떤 법칙이 반사실들을 지시한다는 것은 만일 실제로는 법칙의 [적용] 범위 내에 속하지 않는 무언가가 그 범위 내에 속하게 될 경우, 해당 법칙이 자신의 [적용] 범위 내에 속하는 사물들에 부과하는 속성 또한 그 사물에서 예화될 것임을 뜻한다. 예를 들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것이 법칙이고, 법칙이 반사실들을 지지한다는 것이 성립한다면, 이는 만일 특정한 흰 고양이가 까마귀일 경우, 그것은 검을 것임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법칙들이 반사실들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특수한 실제 사실들이 달라진다고 할지라도 그 법칙들은 여전히 법칙일 것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이상 p. 62)

Chapter 5: 의미와 경험

검증주의(Verificationism).* 의미들 간의 동등한 또는 다른 관계들[만]을 단언하는 주장들을 유일한 예외로 하면 모든 의미 있는 주장들(claims)에 대해 검증의 조건들이 진술될 수 있다는 입장. 검증주의에 따르면, 그것의 검증 조건들이 진술될 수 없는 주장은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의미들[자체만]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무의미하다. [다만 그런] 주장은 이를테면 시적이거나, 미적이거나 또는 감정적인 유의미성을 여전히 가질 수도 있다. 검증주의는 이에 근거해 [기존] 철학의 많은 부분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기각한다.

*Ayer's logical positivism.

분석적 vs 종합적 참[진리]. 분석적 진리란 그로써 해당 진리가 진술되는 언어[용어]의 의미에 의해 참이 되는 진리다. 예를 들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는 분석적 참이다.] 종합적 진리란 그런 방식으로 참이 되지 않는 진리다. 예를 들어, “보통, 총각은 결혼한 남자보다 다가올 10년 안에 심혈관 질환이 생길 위험이 더 높다.”

흄의 벽(Hume’s Wall). 전통적인 경험주의적 사고 내에서[, 다음의] 세 구별에서의 편가르기(lining up)에 때때로 붙는 용어. 아프리오리 vs. 아포스테리오리 지식, 필연적 vs 우연적 참[진리], 그리고 분석적 vs. 종합적 참[진리]. 전통적인 논리 실증주의 그리고 경험주의의 입장은 아프리오리한 지식이란 그것이 분석적인 덕분에 알려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어떻게 아프리오리한 지식을 알 수 있는지가 설명되는데, 아프리오리한 지식은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만 주장을 제시하며, 의미들은 우리의 이해력의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meanings are things within our ken). 이 입장은 또한 필연적 진리를 분석적인 것으로 보며, 필연성의 기원을 의미로부터 찾는다(traces necessity to meanings). [이들에게] 필연적 진리를 부정함이 모순적인 것은 관여되어 있는 용어들의 의미 때문이다.*

*cf. Quine's Two Dogmas of Empiricism: (Both Kant and) Frege's definitions of analyticity is unsatisfactory. We cannot define analyticity non-circularly.

내포된[내포적](Intensional) vs 외연적(extensional) 맥락. 내포된 맥락이란 같은 사물을 지시하는 용어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대체하면 진리치가 바뀔 수 있는 언어적 맥락이다. 외연적 맥락이란 [같은 사물을] 함께 지시하는(co-referring) 용어들이 진리치가 바뀌는 일 없이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언어적 맥락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나타내는(ascribe) 문장들은 보통 내포적인데, 왜냐하면 한 기술(description) 하에서는 지시[관계]를 알아도 다른 기술 하에서는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상 p. 75-76)

확증에 대한 전체론(Confirmation holism). 우리의 믿음은 집합적으로[통으로](collectively) 경험의 심판 앞에 선다는 입장, 그리고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수정하게 만들 경우 그 어떤 믿음도 원칙적으로는 수정될 수 있다는 입장. 우리는 다른 것보다 어떤 [종류의 진리]([이를테면] 논리적 참, 무매개적[직접적] 지각적 경험에 대한 믿음)에 더 개입하는데, 이는 그런 진리를 수정하는 데로 이끄는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확증에 대한 전체론은 아프리오리와 논리적 필연성과 같은 개념들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 방식에, 그리고 아프리오리 및 논리적 필연성과 아포스테리오리 및 우연성 사이의 전통적인 구별에 반대한다. 확증에 대한 전체론은 또한 […] 분석적 참과 종합적 참 사이의 구분에도 대항한다.

의미에 대한 회의주의(Meaning skepticism). 고정적[규정적, 결정되어 있는] 의미 사실들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are no determinate meaning facts)는 입장. 언어 행위는 그저 행위의 일종이며, 문장들도 그 어떤 다른 언어적 항목들도 그것들의 “의미”라는 독자적인 존재자와 고정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상 p. 76)

Chapter 6: 지시

한정 기술구. “그(the)”로 시작하고 기술을 통해 어떤 한정된 사물을 골라내는 것처럼 보이는(apparently) 기술구로, “헬싱키에서 가장 큰 개” 또는 “저기 있는 [저] 남자”를 예로 들 수 있다. 기술된 항목[사물]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리고 [기술하고자] 의도된 항목이 [실제로는] 기술에 들어맞지 않을 때 한정 기술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현재 왕”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이는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다”와 같이 (명백히 의미는 있는) 문장들의 진리치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다. (이상 p. 85)

논리적 고유명사. 논리적 고유명사란 어떤 사물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용어다.* 논리적 고유명사는 형식언어의 구축물이며, 어떤 논리적 고유명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 자연언어에서의 고유명사는 논리적으로 고유한 [명사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같은 이름이 다른 사물들에 적용될 수 있고, 같은 사물이 하나 이상의 이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g. indexicals(this, that etc.)

러셀의 기술 이론(Russell’s Theory of Descriptions). 러셀의 기술 이론은 한정 기술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러셀의 이론이다. 러셀에 따르면, 한정 기술구 “그…”는 “x가 …인 그런 x가 적어도 그리고 기껏해야(at most) 하나 존재한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에 대한 한정 기술을 처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프랑스의 현재 왕”은 “x가 프랑스의 현재 왕인 그런 x가 적어도 그리고 기껏해야 하나 존재한다”를 뜻한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현재 왕에 대한 주장을 제기하면 해당 주장은 거짓이 된다. 러셀은 그의 이론을 어떤 [종류의] 고유명사(논리적 고유명사가 아닌 언어적 고유명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그는 이 고유명사[e.g. 뭉치, 세모, 아름]가 한정기술구를 뜻한다고(stand for) 주장한다.

뜻(sense) vs 지시체. 용어가 지시하는 사물(지시체)과 용어의 의미의 남는 부분(뜻) 사이 프레게에 의해 이루어진 구분. 두 용어들은 동일한 지시체를 가져도 다른 뜻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본드”와 “007”은 동일한 개인을 지시하는 다른 이름들이다. […] [cf. Connotation vs. denotation]

고정지시[엄밀한 지정](Rigid designation). 어떤 경우들에 이름 혹은 한정기술구는 어떤 사물을 고정지시할 수 있다는 개념(notion). 이는 그것[해당 이름 혹은 한정기술구]가 여러 가능세계들에서 같은 사물을 지시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의 참됨과 무관하게 해당 사물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름의 경우, 발화자가 [해당] 이름과 연관시키는 기술의 참됨, 즉, 문제시되는 사물에 대해 발화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들의 참됨과 무관하게). 이 관념은 한정 기술구들과 관련해 러셀의 이론이 무시하고 있는 난점의 해결책으로서 크립키, 퍼트남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난점이란, 한정 기술구는 때때로 그것이 거짓되게 기술하는 사물을 겉으로만 성공적으로(with apparent success)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cf. Kripke, Naming and Necessity Chapter 1.

의미론적 외재주의(Semantic externalism). 의미는 전적으로 정신적이지 않거나, 적어도 발화자의 내면에서 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not entirely internal to the speaker) 입장. 예를 들어, 한국어 단어 “애벌레”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해당 단어가 골라내온(used to pick out) 사물들의 본성에 의존한다. 혹자는 애벌레들에 대해 매우 적은 지식[만]을 가지거나 애벌레들에 대해 완전히 거짓된 믿음들을 가질 수 있는데, [그래도] 그녀[가 뱉는] 단어 “애벌레”는 여전히 애벌레 전문가가 뱉는 단어와 같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반대로, 두 사람은 동일한 심적 상태(mental state)를 공유하면서도 그들[이 뱉는] 단어들의 의미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 의미론적 외재주의는 취지상(in effect) 이름 [부름] 이상의  고정지시(rigid designation beyond names)의 관념을 종에 대한 용어들과 다른 종의 단어들(동사, 형용사)에도 적용 가능하도록 확장한 것이다. (이상 p. 86-87)

전면적 기술주의(Global descriptivism). 어떤 종류의 것이든 [모든] 용어들은 다른 용어들로부터 의미를 얻는다는 입장, 그리고 그 어떤 사전적인 또는 [언어에] 초재적인 단어-세계 관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이 입장은 고정적[원초적] 지시 사실들(determinate reference facts)을 거부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합의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전면적 기술주의가 거짓됐다는 강력한 증거로 간주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해당 결론을 받아들인다. (이상 p. 87)

Chapter 7: 참(Truth)

참에 대한 존재론적 vs 의미론적 이론. 참에 대한 존재론적 이론은 참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답한다. [곧] 참이란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다. 참에 대한 의미론적 이론은 참-술어(“[…]가 참이다”)가 포함된 구절들을 위한 의미론적 이론을 제공하고자 한다.

진리치. 진리치란 진리 담지자의 참됨 또는 거짓됨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참이다”와 “거짓이다”라는 두 진리치 외에 진리치가 더 있다고 주장한다.)

진리 담지자(Truth-bearer). 문장, 명제 또는 진술과 같이 참값을 담지하는 것. (진리-담지자 또한 거짓이 될 수 있다—그것은 양 진리치 모두 담지할 수 있다.)

진리 확정자(Truth-maker). 사실이나 사태(state of affairs)와 같이 진리 담지자를 참이나 거짓으로 만드는 것.

진리에 대한 대응론(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진리는 진리 담지자와 진리 확정자 사이의 대응[상응]이라는 입장. 그러므로 한 문장은 그것이 사실에 상응할 때 참이다.

진리에 대한 정합론(Coherence theory of truth). 진리는 한 진리 담지자와 다른 진리 담지자들 사이의 정합성[일관성]이라는 입장. 그러므로 한 문장은 그것이 다른 참인 문장들과 정합적일 때 참이다.

실용주의. 진리는 실용성(usefulness)이라는 입장. […]

축소주의(Deflationism). 참-술어에 대한 의미론적 이론(타르스키의 것과 같은)이 제공되기만 하면 참에 대해 더 말해질 것이 없다는 입장. 이는 철학자들로 하여금 “‘눈은 하얗다’는 눈이 하얀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참이다”와 같은 주장들을 강조하게 만든다. 축소주의는 이보다 참에 대해 무언가가 더 말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눈이 하얗다는 것이 참이다’는 (‘눈이 실제 세계에서 하얗다’ 따위가 아니라) ‘눈이 하얗’와 같다는 입장(T씨).

메타언어 vs 대상언어(object language). 메타언어란 대상언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언어이다. 메타언어는 대상언어의 모든 원소들을 지시하기 위한 용어들을 포함한다. 대상언어를 지시하기 위한 메타언어는 보통 인용 부호와 같은 장치에 의존한다. (이상 p. 102)

상대주의.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상대주의란 그것에 대한 주장들의 참됨이 다른 무언가에 상대적이라는 입장으로, 이 다른 무언가는 우연적이고 다른 것일 수 있었다는 (드물게 진술되는) 가정과 결합되어 있다. 진리에 대한 어떤 이론들은 모든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의 일반적인 형태로 이끈다. 특히, 진리에 대한 정합론은 진리를 문장 또는 믿음들의 전체 시스템에 상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나 이상의 정합적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 한 시스템에서의 진리가 다른 시스템에서는 거짓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이상 p. 103)

Chapter 8: 마음(Mind)

일원론 vs. 이원론. 일원론은 오직 한 종류의 존재자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고 이원론은 두 종류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실체 이원론 vs. 속성 이원론. 실체 이원론이란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mental and physical)이라는 두 종류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속성 이원론이란 오직 한 종류의 실체만이 존재하며(그러므로 영혼, 심령체 등은 없다) 그렇지만 이 실체는 두 종류의 속성, 즉 정신적인 속성과 물리적인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감각질(Qualia). […] 경험의 내적(intrinsic) 속성들. 경험의 “느낌” 혹은 “그것을 경험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what it’s like)”[를 뜻하며], 그것의 위치, 누가 그 경험을 가지는지 등의 외적인 속성들에 반대된다.

물리적인 것의 인과적 폐쇄성. 모든 물리적 결과는 물리적 원인[만]을 가진다는 주장. 비물리적인 무언가로 인해 야기되는 물리적인 것은 없다. (이상 p. 115)

부수현상. 인과적으로 야기되지만[원인을 가지지만] 결과는 없는[인과력이 없는] 사건들. 속성 이원론자들은 때때로 감각질은 물리적 원인을 가지지만 물리적 결과는 가지지 않는 부수현상이라는 입장에 동조한다. 그들은 물리적인 것의 인과적 폐쇄성으로 인해 해당 입장을 가지도록 내몰린다.

물리주의. 모든 것이 물리적이라는 입장. 모든 사실은 서투르고 장황해질지라도(albeit clumsily and at great length) 원칙적으로 물리학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때때로 표현된다.

행동주의. 심적 상태들은 겉으로 드러나는(overt) 행위에로의 성향들이라는 입장.

[물리주의의 일종으로서] 기능주의. 심적[정신적] 상태는 행동과의, 그리고 다른 정신적 상태와의 관계에서 그것의 기능적(인과적) 역할에 의해 정의된다는 입장.

수반. 어떤 속성은 그 기저에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수반하는 속성에 아무 변화도 있을 수 없고 그 역은 참이 아닐 때 수반-기저에 수반한다(A property supervenes on a supervenience-base when there can be no difference in the supervening property without some difference in the base, but the converse is not true). 이 [개념적] 구축물의 의의는 동일성과 비슷하지만 동일성은 아닌 약화된(watered-down) 관계를 고안하는 것이다. 두 개의 첼로를 위한 비발디의 협주곡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되고, 녹음되고, 재생될 수 있다. 두 연주는 (원칙상) 청각적으로 동일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실현하는 수단은 [이를테면] 다른 첼리스트, 다른 악기, 심지어는 고음질 사운드 시스템[과 같이] 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두 연주들 사이에 청각적 차이가 있다면, 그것들을 실현하는 수단에 있어서 차이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수반에서도 다소간 이러하다. 동일한 심적 상태는 원칙상 문어에게도 강아지에게도 존재할 수 있지만 꽤 다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심적 상태들이 다르다면, 같은 방식으로 실현될 수 없다. (이상 p. 116)

Chapter 9: 지식

정당화하는(Justificatory) vs. 기술적인 기획. 지식을 정당화하는 기획은 우리의 지식을 정당화하고, 우리가 평소에 안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을 실제로 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한편 지식에 대한] 기술적인 기획은 지식이 무엇인지를 논하는(지식을 기술하는) 기획으로, 전통적으로는 한 행위자가 어떤 것을 안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들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상 p. 132-133)

회의주의. [회의주의란] 의심[이다]. 인식론에서는 “회의주의”만 놓고 보면 보통 무매개적 경험 너머의 외부 세계의 현존에 대한 데카르트[의 회의]와 연관된 종류의 회의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회의주의는 상이한 형식과 목표물을 가질 수 있다. […] [cf. 귀납에 대한 회의주의]

회의주의 시나리오. 만일 성립할 경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 부분이 거짓이 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는 못하는 그런 시나리오. [cf. 꿈의 가설, 통속의 뇌 시나리오 등]

[…] 

무어적 사실(Moorean fact).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 의심의 이유들을 [추리의 과정과 관련해서든, 전제와 관련해서든] 사실 자체보다도 더 못 미더운 것으로 만드는 그런 사실. 이 용어는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무어의 주장으로부터 파생된다. […]

게티어 사례.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 있지만 지식은 없는 사례. 게티어 사례를 만들기 위한 게티어의 레시피는 거짓되지만 정당화되어 있기는 한 믿음으로부터 참된 무언가를 연역하는 믿음 주체(believer)에 의존한다. [그러나 거짓된 보조 가설을 통해서만 게티어 사례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

인식적 내재주의 vs. 인식적 외재주의. 인식적 내재주의란 지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식의 인식 주체(knower)가 자신의 믿음에 대한 보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인식적] 외재주의란 인식 주체가 그런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때] 인식 주체는 자신이 접근 불가능한[도통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보증되어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외재주의자들은 이를테면 일상적인 시각적 지각의 사례들을 들면서, 우리의 눈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사실만의 덕으로도 우리의 주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이때는 해당 앎의] 정당화를 위한 그 어떤 내성적 실천도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뢰주의(Reliabilism). 외재주의의 일종으로, 지식을 위해 필요하고 충분한 보증이 모종의 신뢰도(reliability)에 있다는 [입장]. […] [cf. 실제적 신뢰도 vs. 반사실적 신뢰도/멈춘 시계] (이상 p. 133-134)

알려진 논리적 함축(entailment) 하에서의 지식의 폐쇄성. 지식이 알려진 논리적 함축 하에서 폐쇄돼있다는 것은 만일 혹자가 p를 알고 p가 q를 함축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q를 안다는 것이다. Nozick은 이러한 종류의 폐쇄성을 부정한다. […]

맥락주의. 지식은 맥락에 의존한다는 입장. 무언가가 알려져 있는지의 여부는 해당 지식이 알려지는 주장이 이루어지는 맥락에 의존한다. (이상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