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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방법서설, 정신지도규칙⟫, 문예출판사, 2019

 

"나는 결코 내 정신에서 나온 것들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211)
"그러나 나는 특별한 것을 약속하려 할 만큼 주제넘지도, 대중이 내 계획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상상할 만큼 헛된 생각에 전혀 빠져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내게 걸맞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는 어떤 호의를 누군가로부터 받길 원할 만큼 저급한 영혼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224)
"이것으로 나는 여기서 하나의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이 선언이 나를 세상에서 주요 인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나 또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일자리를 나에게 제공하는 자들보다 그들의 호의로 내 여가를 방해 없이 즐기게 해주는 자들에게 나는 늘 더 큰 고마움을 가질 것이다."(229)

 철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인 데카르트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수필 형식의 글이라 요약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대략의 내용을 스케치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부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인간이 이성이라는 앎의 힘을 동등하게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올바른 방법을 따르기만 한다면 하나의 합치된 그리고 참된 결론에 도달하리라는 낙관주의를 내비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학문에 종사함에 있어 따랐던 여정들을 회고하는데, 무엇보다도 제일철학으로서 다른 모든 학문을 정초해야 할 철학적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부는 학문하는 이의 독립성과 자기책임의 정신을 강조한 뒤 이미 유명한 네 개의 방법들을 천명한다(명증성의 규칙, 분석의 규칙, 종합[조직]의 규칙, 열거[포괄]의 규칙). 3부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준칙들을 요즘 서점들에서 팔리는 자기계발서처럼 재미있게 일러준다. 데카르트는 관습을 존중할 것, 한 번 정한 것은 의심스럽더라도 마치 확고한 것인 양 끝까지 지킬 것, "운보다는 나를 이기려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들을 바꾸려고 늘 애[쓸] 것"(171), 극단적인 의견을 피할 것 등등을 포함하는 이 준칙들을 "내가 가급적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임시 도덕"이라고 부른다(168). 4부는 ⟪성찰⟫에서의 형이상학을, 5부는 데카르트의 자연학적인 기여들을 요약해준다. 마지막으로 6부는 데카르트가 학적 탐구의 '출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대단한 지성을 갖춘 사람이 허영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개인사적인 이유로 은둔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요즘이다. 인정받는 것보다 혼자서라도 향유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을 즐기는 한에서 최대한 공동선에 기여하기를 희망한 데카르트의 글이 이토록 매끄러운 번역의 옷을 입고 찾아와줘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