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이심지, <오래된 습관>

이심지, ⟪오래된 습관⟫, 2021(독립출판).

 자신이 살아가는 일을 주제로 픽션이 아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또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만 해도 블로그라는 사적인 공간에조차 일기를 자주 쓰지 못한다. 쓰던 중간에 지운 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이미 게시한 일기를 하트 표시를 눌러준 친구들의 마음을 지나쳐버리면서까지 삭제하곤 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따져보면 어떤 두려움이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일상과 머릿속을, 허구로 승화시키거나 적어도 다른 텍스트를 경유하는 일 없이 내보였다가 괜히 내 앎의 얄팍함과 마음의 차가움 따위를 들켜버릴까 봐 두렵다. 자기표현은 객관적으로 가치있는 행위라고 믿으려 하지만, 막상 내 빈곤한 주관성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시작하면 믿음이 숨바꼭질을 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은 용기의 직접적인 표지다. 그렇기 때문에 수필류의 글을 쓰는 사람들, 그것도 재미있게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왔다. 

 ⟪오래된 습관⟫은 나의 그런 감정을 오랜만에 자극한 산문집이다. 한참 독일어와 씨름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태극당 모나카를 먹으며 읽으니 간밤에 기분이 좋았다. 재치있는 표현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생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하며 잠깐씩 멈칫거렸던 것 같다. 이를테면 "맛있는 케이크를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서는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 것이 중요하다"(17), "멋대로 실망하는 일의 폐해를 다시 지적해 무엇하겠냐만, 적당한 오해와 환상은 몸에 좋습니다"(53), "안타깝게도 영화 상영 동안 커피나 담배는 제공해드릴 수 없지만, 이번 전작전을 통해 나른한 가을을 만끽하시기를 기원합니다"(113) 같은(공교롭게도 세 문장 모두 'A긴 하지만, 결국 B이지 않겠어?'의 형식을 공유한다).

 하지만 재치보다 더욱더 내 동경을 사는 것은 쓴 사람의 깊은 속이 내비쳐지는 표현들이다. 언제나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 견지에서 ⟪오래된 습관⟫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위로의 윤리?'였다. 위로의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진정한 위로가 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때도, 위로를 하고 싶어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했던 사람이었을 때도 자주 잊어버린 바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보아야 하는 것은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뿐"(41)이라는 말은 두 상황 모두를 관통하는 조급함의 짐을 덜어주었다.

 감상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뭐야, 나 내 이야기 엄청 하고 싶어하네...